그림 /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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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0대기업 ‘겉과 속’] ③ SK㈜ / 무난함이 미덕이던 남자들 ‘변화 속으로’
한때 대부분 직원들 검정양복만 입어 바꿔치기 일쑤
연봉제 도입뒤 “패자부활전 도입” “속도조절” 주문도
1962년 대한석유공사로 출범한 에스케이㈜는 오랫동안 전통적인 ‘굴뚝산업’에 ‘현금장사를 하는 주유소 회사’였다. 공사가 전신이다 보니 사원들의 모습은 ‘무난하다’거나 ‘안정적이다’, 기업문화에 대해서는 ‘보수적’, ‘남성적’이란 평가가 늘 뒤따랐다. 여기에 ‘끈끈한 인간관계’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 대외 이미지이다.
한 간부는 “한때는 대부분 직원들이 검정 양복에 검정 넥타이만 매고 다녀 술집만 가면 양복을 뒤바꿔 입고 나오기 일쑤였다”고 전한다. 1990년대 말까지도 대졸 여직원 공채는 단 한명도 없었다. 오영석 연료유 트레이딩팀 부장은 “농반 진반으로 에스케이는 인·적성 검사 할 때 튀는 사람들을 다 잘라낸다고 한다. 사업 특성상 모든 조직 구성원들이 함께 끈끈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에스케이㈜는 사실 그룹에서 ‘이방인’이었다. 섬유와 무역을 주력으로 해온 옛 선경그룹에 1980년 인수된 회사다. 이후 20년 이상 그룹의 ‘큰형뻘’로 대표 계열사 노릇을 하다가 7월1일부터는 그룹 지주회사 및 에너지·화학기업으로 나뉘어 탈바꿈하게 된다. 이런 역사로 미뤄보면 에스케이㈜에는 옛것과 새로운 것, 여러 이질적인 문화들이 녹아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에스케이㈜ 사람들은 20년 이상 이어온 공통의 유전자가 있다고 강조한다. 바로 고 최종현 회장이 1979년에 제정한 ‘에스케이엠에스’(SK Management System)를 말한다. 일종의 경영관리 시스템을 명문화한 70쪽 분량의 ‘에스케이엠에스’를, 에스케이에서는 최고경영자부터 신입사원까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줄줄 외어야 한다. 한국노동연구원 부설 뉴패러다임센터 이영호 팀장은 이를 ‘에스케이 헌법’이라 평가한다. 여기에서 파생된 ‘수펙스’(SUPEX)는 ‘인간의 극한치에 가까운 높은 목표’를 정하고 그에 이르는 방법론을 정의한 것이다. 에스케이의 인재상에 늘 ‘패기’가 가장 앞에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팀장은 “대부분 대기업들이 회장이 던지는 ‘화두’로 사업방향과 경영전략을 짰던 것과는 달리, 비교적 젊은 나이에 그룹 회장 자리에 앉았던 최종현 회장은 ‘명문 헌법’으로 기업문화를 일궜다는 점에서 앞서간 경영자였다”고 말했다.
에스케이㈜ 신입사원들이 지난 1월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연탄나르기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에스케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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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말까지 대졸여성 공채도 없던 보수적 직장
포화 상태 국내시장 벗어나 ‘글로벌 경영’ 앞으로
에스케이㈜ 네트워크 운영팀의 나영호 대리는 “회사의 핵심가치와 철학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에스케이엠에스를 외울 수도 없다”며 “일종의 ‘공통언어’를 통해 에스케이인이구나라는 느낌을 가진다”고 말한다. 에스케이의 자유로운 토론문화를 상징하는 ‘캔미팅’도 에스케이엠에스 특징의 하나다. 올 들어 에스케이㈜는 안팎으로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를 맞고 있다. 대표적인 게 본사에 근무하는 3년차 이상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연봉제를 처음 시행한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시행하는 연봉제가 대수냐 하겠지만, 연공서열 위주였던 에스케이로선 ‘충격’에 가까운 일이다. 한 직원은 “철밥통인 줄 알고 들어왔는데 우리 회사가 왜 이러냐는 푸념도 나온다”고 말한다. 에너지·화학산업의 특성상 조직 단위의 협업이 중요하기 때문에 개인들의 성과평가는 아예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있다. 차화엽 인력담당 상무는 “연봉제 도입뒤 ‘패자부활전을 배려해 달라’, ‘속도를 조절해 달라’는 주문들도 나온다”며 “그러나 ‘현실 안주=생존 위협’이라는 인식을 사원들에게 분명히 심어주기 위해 성과주의를 도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에스케이는 아직 ‘내수기업’ 또는 ‘정유회사’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세계시장과 자원개발에서 찾고 있다. 포화상태에 이른 내수시장에 만족했다가는 성장이 멈출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요즘 회사 안에서 에너지 자원 개발이나 트레이딩 부서의 규모나 위상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차이나 인사이더’를 부르짖으며 회사가 중국사업을 계속 확장하는 동안 직원들 사이엔 중국어 학습 열풍도 불고 있다. 본사 승강기 안 모니터에는 항상 ‘중국어 한마디’가 흘러나온다.
에스케이㈜ 신입사원들이 최태원 회장과 함께 신입사원 교육 뒤 사진을 찍고 있다. 에스케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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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 대범함 뒤엔 삼성에 미묘한 경쟁의식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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