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7.09 19:14
수정 : 2012.07.09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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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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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군사정보협정)을 둘러싼 소동과 관련해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 등의 옷을 벗긴 것으로 끝낼 요량인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리 김 전 기획관이 실세였다 해도 그토록 민감한 협정을 윗선의 재가 없이 외교부 담당 국장과만 입을 맞춘 채 처리했다고 믿을 사람이 있을까? 뼛속부터 친미·친일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은 정말 관련이 없을까? 정부의 조사에도 오히려 증폭되는 이런 의혹을 규명하려면 국회가 나서야 한다. 과정은 물론 내용의 문제까지 철저히 밝혀야 한반도가 다시금 강대국의 놀이터가 되는 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의 지난 4년간 행태에 비춰보면 이번 사태는 예고된 재앙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정권은 대통령의 친형을 비롯한 친인척과 측근들이 줄줄이 비리로 쇠고랑을 찰 정도로 도덕성에 둔감한데다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조차 천박하다. 국민을 속이는 일쯤은 여반장으로 여겼을 터다.
하지만 과정의 문제를 낳은 위의 이유보다 더 큰 문제는 시대착오적인 대외정책 기조다. 이 정권은 부시 정권의 네오콘적 대외정책이 미국의 세계적 영향력 약화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고 자멸했음에도, 그 정책을 답습했다. 강경일변도의 대북정책과 진영논리에 바탕한 한-미 동맹 강화 정책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미국 이익의 극대화와 한반도의 불안정화로 나타났다. 북한의 도발 억지와 한반도 평화 유지를 목표로 하는 한-미 동맹을 그 어느 때보다 강화했다는 이 정권 아래서 우리의 안보환경은 북한의 직접포격을 당하는 등 오히려 악화했다. 한-미 동맹이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의 도구로 변질해버린 탓이다.
지난달 14일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담은 그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 회담에서 두 나라는 “한국은 미국이 아시아로의 관심과 기여를 증대하는 것을 환영하며, 미국은 한국이 한반도를 넘어 지역 및 세계 평화와 안보에 대해 역할을 강화시켜 나감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또 인도의 동방정책 전략을 평가하고 인도와의 협력 증진도 모색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한국의 미국 주도 대중 포위망 편입 선언에 다름 아니다.
나아가 미국은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을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전환하려 해왔고, 이명박 정부는 이런 미국의 뜻에 적극 호응했다. 연평도 사건을 핑계로 사상 최초의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을 벌이고, 일본 이지스함의 서해 배치를 찬성했다. 한-일 군사정보협정과 상호군수지원협정을 무리하게 추진한 것도 그것이 한-일 군사동맹화의 기반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미·일의 미사일방어(엠디)체제에 한국이 편입하기 위해서 군사정보협정 체결은 필수였다. 그러나 엠디체제는 남북한 간의 짧은 거리 때문에 북한의 대남공격을 막는 데 별 실익이 없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그렇다면 군사정보협정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자명하지 않은가.
이렇게 우리가 미국의 전략을 추수하는 사이, 일본은 원자력기본법을 개정해 핵무장의 길을 열고, 자국이 공격받지 않아도 선제공격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나섰다. 또 전쟁을 금지한 평화헌법 9조 개정까지 들먹인다. 우리가 나서서 일본의 군국화를 지원해온 꼴이다.
반면 한-중 관계는 악화할 대로 악화했다. 대중국 관계는 경제적 측면은 물론 안보 차원에서도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중국은 우리를 적대 진영의 전위쯤으로 인식하는 지경이다. 지난달 한-중 언론인 모임에 참석한 중국 관영언론의 논설위원은 사석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외정책을 “돈은 중국에서 벌면서 턱밑에 칼을 들이대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군사정보협정은 동북아에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냉전구도를 되살리고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돕는 협정이다. 그러니 과정이 문제지 협정 자체는 필요하다는 주장을 받아들여선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다시는 이런 근시안적 대외정책이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대선후보들에게 시대착오적 진영논리를 버리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증진하며 한반도 주민 전체에 이로운 대외정책을 채택하도록 촉구하고, 그런 정책을 추진할 후보를 가려내는 눈썰미를 키워야 한다.
권태선 편집인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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