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3.27 19:59
수정 : 2011.03.2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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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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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 1주기를 맞은 지난 주말 전국 각지에서 희생자를 추모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다양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전 현충원에서 열린 ‘천안함 용사 1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46명의 승조원들과 구조활동에 나섰다 숨진 한주호 준위의 묘역을 둘러보고 유가족들을 위로했습니다. 이 땅의 모든 국민들의 마음도 희생자들을 기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을 위로하는 대통령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결단코 이 사건을 잊어서도,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해서도 안 된다는 대통령의 말에도 공감했을 터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최근 천안함 관련 발언 가운데 걸리는 대목이 없지 않습니다. 25일 확대비서관회의에서 나온 “당시 북한의 주장대로 진실을 왜곡했던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용기있게 잘못을 고백하는 사람이 없다”는 발언이 그것입니다. 대통령이 언급한 “북한의 주장대로 진실을 왜곡했던 사람들”은 천안함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 내린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을 뜻하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발언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우선 조사결과에 대한 의문제기를 ‘진실의 왜곡’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과문한 탓인지, 지금까지 조사결과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이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단정적으로 규정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한 일이라곤 조사단의 발표 가운데 그들의 과학지식이나 상식에 비춰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의문을 해소할 수 있도록 좀더 객관적인 검증을 해보자고 주장한 것뿐입니다. 사실 그들은 진실을 왜곡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습니다. 자료에 대한 접근이 제한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진실을 규명하는 것도 불가능한 그들이 어떻게 진실을 왜곡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하나는 ‘북한의 주장대로’란 표현입니다. 북한은 그동안 일관되게 천안함 사건은 자신들과 관계없는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1주기인 26일에도 “천안호 사건은 미국의 조종 밑에 동족대결 책동에 한층 더 박차를 가하기 위해 꾸며낸 특대형 모략극, 자작극”이란 주장을 폈습니다. 하지만 사건이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일어났다는 조사단의 발표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해서 이런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북한의 소행일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조사결과만으론 그렇게 단정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그들을 “북한의 주장대로 진실을 왜곡했던 사람들”로 규정하는 것은 그들을 친북세력으로 몰아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견을 표명하거나 정보공개를 요구한 국회의원과 전문가들이 고소를 당하는 등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것이 민주국가 대한민국의 모습일 수는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정부가 내린 결론을 무조건 따르는 일사불란함을 통해서가 아니라 활발한 토론과 검증을 허용하는 공론의 장을 통한 합의과정에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 규명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남과 북의 주장이 판연히 다른데, 정부가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를 남북대화 재개의 선결조건으로 삼고 있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사건의 책임을 극구 부인해온 북한이 현 상태에서 사과를 하리라고 기대하긴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남북관계 개선을 한정없이 미룰 수도 없습니다. 일본의 핵 참사와 리비아 사태는 북한의 불안정이 얼마나 가공할 사태를 가져올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정상회담을 통해서라도 남북관계를 안정시켜야 할 상황입니다. 그러려면 남북의 이견 해소를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남북이 합의할 수 있는 제3국의 권위있는 전문가들을 통한 추가 검증을 받아들이고 북의 사과를 검증 이후로 미루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기왕의 조사결과에 자신이 있다면 못할 까닭이 없습니다.
편집인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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