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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0.03 21:07 수정 : 2010.10.04 09:48

권태선 논설위원

장관의 딸 특혜 채용 논란을 빚은 외교통상부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 요지경 속 같은 특권층 자녀 특채 과정이 드러났습니다. 자격 미달인 사람을 뽑기 위해 면접위원을 자의적으로 선정하는 등 온갖 편법을 동원했고 그렇게 뽑힌 특권층 자녀들이 미국·일본 등 인기 재외공관을 차지했습니다. 이런 그들의 행태에선 우리 사회 주도층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책임감은커녕 게임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일반적 시민의식조차 발견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총리 등 고위공직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거듭 확인되듯이, 우리 사회 기득계층의 공통적인 인식행태라는 점입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교육과학기술부가 전국 초·중·고생들에게 ‘민주시민교육’을 하겠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수 있습니다. 특히나 학생인권조례와 체벌 금지가 화두가 되는 지금 교육 현장에선 학생들의 민주적 책임감과 배려의 정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옆의 친구조차 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경쟁 위주의 교육 탓에 우리 아이들의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과 배려심은 아주 낮습니다.

이를 고려해 교과부가 학생 주도의 학교행사와 동아리 활동을 활성화하고, 학칙 제정과 학교운영위원회의 의사결정 과정에 학생들의 참여를 장려하며 토론·참여형 수업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올바른 일입니다. 하지만 교과부의 안에는 우려스런 대목도 없지 않습니다. 범정부 협의체로 시민교육을 독점하면서 애국주의를 강조하고 학칙 준수 서약 캠페인까지 거론하니 말입니다. 국민교육헌장을 강제로 외워야 했던 권위주의 시절이 연상된다면 지나친 피해의식일까요?

미국·독일·프랑스 등 이른바 선진국도 시민교육을 중시합니다. 그러나 정부가 홀로 좌지우지하진 않습니다. 국가가 독점하면 국가이데올로기 교육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음을 아는 까닭입니다. 그런 점에서 시민교육으로 정평이 난 독일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치즘의 국가주의 폐해를 절감했던 독일은 1952년 연방정치교육원을 만들고 시민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시민들의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적 사고능력을 키워 민주정치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교육원은 연방 내무부 산하에 있지만 철저하게 독립적으로 운영됩니다. 교육의 기본 사안은 내무장관이 임명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학술고문단이 정하며, 교육원 사업의 정치적 중립성 등을 감독할 감독위원회를 둡니다. 위원회는 각 정당이 추천한 연방의원으로 이뤄지며 감독은 보이텔스바흐협약이란 시민교육의 기본원칙을 기준으로 합니다. 교육과정에서 강압과 교조화를 금지하고, 균형적·대립적 논점을 확보해 피교육자가 비판적 검토를 거쳐 스스로 최종적 결론에 이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이는 서로 다른 견해의 존재를 알고, 거기에 비춰 자신의 생각을 비판적으로 검증하면서 타협의 정신을 가꿔나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바탕이 된다는 생각에 터잡은 것입니다. 이런 시민교육 덕에, 독일은 국가주의의 망령을 걷어내고 모범적인 민주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일류 선진국가에 걸맞은 시민 양성이 민주시민교육의 진정한 목표라면 정부가 교육과정과 내용을 모두 통제하겠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합니다. 교과부와 함께 우리 교육을 이끌고 있는 시·도교육청은 물론 시민사회와 민간 전문가까지 망라하는 협치의 틀을 만들고 독일의 보이텔스바흐협약과 같은 기준을 마련해 시민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함께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 과정 자체가 우리 사회 전반의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한 학습의 과정이 될 것입니다. 근현대사 교과서 파동처럼, 정부나 기득계층의 견해와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은 용납하지 않는 편협함을 고집하면서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하겠다고 해서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치유해 나가는 민주시민을 키울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권태선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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