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9.19 17:36
수정 : 2010.09.19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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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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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미화원의 씻을 권리’를 언급한 지난번 칼럼이 나간 뒤 민주당 서울시 의원들과 성북구청장·서대문구청장 등 일부 자치단체장들이 간담회를 열어 이 문제의 해결방안을 찾기 위한 논의를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습니다. 관심을 갖고 자료를 요청한 한나라당 시의원도 있었습니다. 새로 구성된 시의회 의원들과 자치단체장들이 이런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일입니다. 시민들의 어려움을 시민운동가와 의원들이 대변하고, 자치단체와 의회가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것은 새로운 협치(거버넌스)의 모범적 사례이자 희망의 싹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들여다보면 미화원의 씻을 권리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자이자 납세자인 우리 모두가 연루된 우리의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시·도의 사정은 조사해보지 못했지만, 서울시 25개 구청은 모두 쓰레기 처리를 민간에 위탁하고 있습니다. 위탁업체의 주수입원은 종량제 쓰레기봉투 판매액입니다. 위탁업체가 미화원들의 급여를 올려주고 작업환경을 개선해주려면 봉투값이 올라 판매액이 늘거나, 위탁업체 자신의 몫을 줄여야 합니다. 그러나 민선 구청장으로선 봉투값을 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유권자들이 내 주머니에서 단돈 몇 푼이라도 더 나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쓰레기 처리가 힘든 단독주택이 많아 다른 구보다 봉투 가격이 비쌌던 은평구의 신임 구청장은 심지어 가격 인하를 공약했고 최근 위탁업체와 합의해 평균 9%씩 값을 내렸습니다.
봉투값을 내린 위탁업체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성북구의 한 위탁업체에서 일하는 임정훈씨의 이야기로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50대인 그의 월급은 170만원입니다. 10년 전 초임이 130만원이었으니, 그 사이 40만원 오른 것입니다. 그런데 성북구의 쓰레기봉투 값은 7년째 그대로입니다. 총수입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위탁업체가 임금인상을 해주기 위해 한 일은 미화원 수와 그들에게 지급되는 비품 따위를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평균 노동시간은 12시간에 이르렀고 많을 땐 17시간씩 일하기도 합니다. 최소한 두 벌씩 지급돼야 할 작업복은 한 벌밖에 지급되지 않습니다. 폐기물처리지침은 쓰레기를 지정된 차량에 보이지 않을 정도만 담으라고 하지만, 차량과 인력이 부족해 일일이 수작업으로 꽉꽉 눌러 채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니 많은 미화원들이 어깨 등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립니다. 봉투값을 내린 은평구의 결정을 본 미화원들이 감원이나 노동조건 악화를 걱정하는 것은 이런 사정 탓입니다.
구청은 납세자이자 소비자인 우리의 비용을 줄여주기 위해서 민간위탁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 결과 미화원들이 공중화장실 수준의 세균을 얼굴에 묻히고도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환경에서 일하게 된 것입니다. 한달 쓰레기봉투값 몇백원을 절약하는 대가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미화원들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공범이 돼버린 셈입니다. 이것이 정말 우리가 선택한 일일까요?
미화원의 씻을 권리를 위해 애쓰는 송파시민연대 등 송파구 시민들은 그렇지 않다고 답합니다. 우리 대다수의 생각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사실 쓰레기처리 같은 공공서비스는 민간위탁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완전 공영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임정훈씨 등 미화원들의 바람은 버스처럼 준공영제라도 해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를 받는 겁니다. 버스 준공영제 시행 후 소비자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교통사고율이 평균 20% 이상 떨어졌다는 2007년 당시 건설교통부 등의 조사 결과를 보면, 준공영제는 검토해볼 만합니다.
온 가족이 모여 평소보다 많은 쓰레기를 배출하는 추석을 맞아, 미화원들의 처지에 관심을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관심은 추수의 기쁨을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며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가꿔온 조상들의 지혜를 현실에서 이어가는 일 아니겠습니까?
권태선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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