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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5.18 19:19 수정 : 2010.05.18 19:19

권태선 논설위원





어제로 광주민주화운동이 30돌을 맞았습니다. 한국의 표현의 자유 침해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방한했던 프랑크 라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그제 이한에 앞서 연 기자회견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헌사로 시작했습니다. 광주 망월동 묘역을 방문했을 때 “그렇게 많은 분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했다는 데 큰 감명을 받았다”고 밝힌 그는 그들의 희생이야말로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향상의 밑거름이 됐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5·18 서른돌 아침 전국을 적신 빗줄기가 민주화 영령들의 눈물처럼 여겨지는 것은 어인 까닭일까요? 광주의 영령들이 목숨을 던져 지키려 했던 민주주의는 이명박 정권 들어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2주 가까이 한국의 인권상황을 조사한 라뤼 보고관도 지난 2년 동안 한국의 전반적인 인권, 특히 표현의 자유가 후퇴했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사적인 자리에서 그는 한국이 1970년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개탄까지 했습니다. 한때 인권신장의 모범적 사례로 거론됐던 한국에서 중세를 방불케 하는 금서목록이 다시 등장하고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개인을 상대로 국가가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는 일까지 벌어진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도 했습니다.

연세대 특강 뒤 뒤풀이 자리에서 라뤼 보고관이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왜 이런 선택을 했느냐고요.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까지 던졌던 한국인들이 왜 그 퇴행을 용인하는 쪽을 선택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누군가가 “이명박 대통령이 판 욕망의 정치에 우리 시민들이 넘어간 것 같다”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민주세력에 등을 돌리고 욕망의 정치를 판 이른바 산업화 세력의 손을 들어주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요? 국민들이 물신주의에 빠진 탓만은 아닐 것입니다. 진보정권의 미숙과 그들에 대한 우파언론의 도에 넘친 공격 등도 한몫했겠지요. 하지만 민주화의 성과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과신 역시 무시 못할 요인이 됐습니다. 실제로 지난 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을 선택했던 사람들도, 이 정권이 민주주의의 뿌리마저 흔들 것으론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진보적 지식인이라는 사람들 가운데, 정권교체가 민주주의의 진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정도이니까요.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거침없이 돌아섰습니다. 언론장악을 위해 온갖 무리수를 동원했고,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기소권을 남용하면서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를 억압했습니다. 용산참사에서 보듯 생존을 위한 기층민중의 외침에는 귀를 막고 전교조를 위시한 노동운동에는 적대적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우리 민주주의의 안정적 발전에 긴요한 북한과의 관계를 냉전 당시의 대결상태로 되돌린 것도 이 정권입니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5·18 기념사에서 민주사회의 자유에 걸맞은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했다며 법을 무시한 거리의 정치와 포퓰리즘을 거론합니다. 우리 정부의 공식 초청을 받고 방한한 인권보고관의 사전면담 신청을 대통령에서부터 각부 장관까지 모조리 거부하고도 대화와 토론의 문화가 형성되지 않은 것이 남의 탓인 양 말합니다.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이런 오만한 기념사를 듣게 된 데는 견제와 균형이 불가능한 정치지형을 만들어준 우리의 책임도 없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또 한번 선택의 순간을 맞고 있습니다. 6·2 지방선거는 대한민국이 민주주의의 후퇴를 이대로 방치해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지, 아니면 그 조류를 되돌려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룩한 세계적 모범이라는 명성을 되찾을지, 선택하는 순간입니다. 쿠오바디스, 대한민국? 그 답은 광주 영령들이 지키고자 한 민주주의를 위해 신성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할 유권자들의 몫입니다.

권태선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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