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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21 22:35 수정 : 2009.04.21 22:35

권태선 논설위원

권태선칼럼

그제 아침 여러 신문과 방송에는 눈물을 훔치는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이 보도됐다.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홀트요양원에서 장애인 합창단의 공연 도중 감동에 젖어서 눈물을 흘리는 광경이었다. 대통령이 중증장애를 이겨내고 고운 화음을 만들어낸 합창단의 노력에 눈물로 경의를 표한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눈물에 감동한 장애인들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그제 열린 ‘장애인차별 철폐투쟁 결의대회’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이 대통령의 눈물을 ‘악어의 눈물’이라 비판한 게 그 증거다. 이날 대회에 참석한 일부 장애인들은 사슬로 몸을 묶고 시위를 벌이기까지 했다. 한 달 가까이 장애인 생존권을 요구하며 보건복지가족부(복지부) 앞에서 노숙 농성을 벌였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며 이렇게라도 해야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이란다.

장애인들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토록 절박하게 투쟁해야 할 이유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200여만명으로 추산되는 전체 장애인 가운데 30%에 육박하는 59만여명이 ‘절대 빈곤’ 상태다. 그런데도 장애수당은 중증장애인이라야 월 13만원 정도다. 일자리를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이 대통령은 “올해부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을 2%에서 3%로 늘렸다”며 앞으로 의무고용 제도를 공기업과 민간으로도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부의 목표와 현실은 따로 논다. 2008년 공공부문 장애인 의무고용률은 1.76%에 그쳤다. 대통령실조차 1.7%에 머물고, 외교통상부는 0.65%에 불과했다. 장애인들이 정부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이유다.

장애인들은 특히 현 정부 들어서 장애인 정책이 후퇴하고 있다고 본다. 장애인의 염원이 담긴 장애인차별금지법(장차법)과 장애인교육법을 무력화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탈시설·주거권 보장 등 장애인들의 생존권 보장 요구는 철저히 외면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장애인 정책 관련기구의 축소 움직임이다. 정부는 장차법 시행 이후 관련 진정이 월평균 9건에서 75건으로 8배 이상 폭증했음에도 국가인권위원회 인원을 22%나 줄여버렸다. 장애인의 날 바로 다음날인 어제 국무회의에선 복지부 내 장애인권익증진과와 재활지원과를 장애인권익지원과로 통폐합하는 방안을 의결했다.

또, 철회되기는 했지만 국가경쟁력위원회가 정보통신·의사소통에서의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규정한 장차법 21조 3항을 규제일몰제에 포함시켜 논란을 빚은 것이나, 방송통신위원회가 아이피티브이(IPTV)에 대한 장애인 접근권 요구에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는 것 등 이 정권의 장애인에 대한 무신경한 태도는 끝이 없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를 이 대통령의 발언에서 유추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장애인 합창을 들은 뒤 “여러분을 위로하러 왔는데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며 “성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다음날 장애인의 날 축하 영상메시지에선 “장애인에 대한 시설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편견을 없애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애인인 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은 이런 발언이 장애인을 여전히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보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애를 극복해 세계 장애인의 귀감이 된 헬렌 켈러는 한때는 자신처럼 용감하게 싸우기만 하면 누구나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장애인의 현실을 안 뒤엔 그게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지 깨달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들의 사회·경제적 여건의 개선 없이는 장애 극복은 어렵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눈물이 악어의 눈물로 여겨지지 않으려면 장애인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뜻이다.


권태선 논설위원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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