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2.01 20:07
수정 : 2009.02.0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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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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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칼럼
지난달 말 초·중등학교 선생님을 포함한 30여분의 한국 교육을 염려하는 사람들과 스웨덴과 핀란드를 다녀왔다. 두 나라 유치원에서부터 초·중등학교를 두루 살펴본 뒤 헬싱키 아난탈로 아트센터에서 핀란드 교육계 인사까지 참여한 뒤풀이가 있었다. 두 나라 참석자들이 번갈아 노래를 부르는 중에 우리 선생님 몇 분이 이런 노래를 합창했다. “우리 오늘 눈물로 한알의 씨앗을 심는다/ 꿈 꿀 수 없는 저들의 가슴에, 저들의 푸른 꿈 다시 돌아오도록/ …” 그러나 선생님들은 노래를 마치지 못한 채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학생 하나하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자신들의 교육에 자부심을 갖는 핀란드 교육 현장과는 너무나 다른 우리의 척박한 현실이 아프게 다가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귀로에 선생님 몇 분과 두 나라 교육이 한국에 주는 의미를 이야기해 봤다. ‘작은 학교 운동’으로 남한산초등학교를 되살려낸 서길원 선생은 이제 우리도 학생들의 학습권을 교육문제의 중심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스웨덴 웁살라대학에서 스웨덴과 핀란드의 교육을 연구한 안승문 전 서울시 교육위원은 “학교가 아닌 학습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정부가 내년부터 도입할 학교 선택제는 우리처럼 지역·계층간 교육격차가 현격한 상태에선 격차만 더 벌릴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스웨덴과 핀란드에서도 학생들은 학교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제 학생평가 프로그램(PISA·피사)에서 거둔 성적을 분석해 보면, 핀란드에선 학교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의 차이에 따른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차이가 적은 반면, 스웨덴은 그렇지 않았다. 두 나라 모두 낙후 학교에 우수교사를 배치하고 재정을 더 쓰는 등, 격차를 줄이고자 노력하는데도 이런 차이가 벌어지는 이유를 안승문씨는 “스웨덴과 달리 핀란드는 개별 학교가 유연한 교과과정과 높은 자율성을 활용해 학생들의 학습 선택권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핀란드에선 학기마다 선생님과 학생, 그리고 학부모가 협의해 개별 학생의 학습속도와 학습내용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의 경우, 통상 3년 과정이지만, 학습속도가 빠른 아이는 2년반 만에, 그리고 늦은 아이는 4년 만에 마쳐도 된다. 실업계를 다니면서 인문계 수업을 들어 대학에 갈 수도 있고, 인문계를 졸업하고 다시 실업학교에 1~2년 더 다녀 취업을 하거나 기술대학에 진학할 수도 있다. 또 각 학교는 미술·음악·체육·정보통신 등 다양한 특성화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고, 바로 이런 프로그램이 학생들의 학교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러니 자립형 사립고나 특수목적고가 없어도 수월성 교육이나 예능 등 특기교육이 가능하고, 늦는 아이는 늦는 아이대로 제대로 실력을 쌓아 학교 문을 나설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스웨덴은 공립학교에 자율성과 유연성을 확대해 주는 대신 체제 밖에 자율학교를 허용함으로써 공립학교의 변화를 자극하려는 전략을 택했다. 우리가 국제중이나 자율형 사립고를 통해 학교간 경쟁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전략과 비슷하다. 그러나 자율학교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학교간 경쟁을 되살린 것은 사실이지만 엘리트학교나 종교학교가 등장하는 등 사회의 분절을 심화시키는 문제를 낳고 있다”는 게 스웨덴 국가교육청의 황선준 재정담당관의 평가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할 길은 자명하다. 교육격차를 벌릴 위험이 농후한 자율형 사립고 방식의 학교 선택제는 대안이 아니다. 현정부가 지향하는 다양화 교육을 구현하기 위해서도 공립학교에 교과과정의 자율성과 유연성을 대폭 허용함으로써 아이들의 학습권을 확보해 주는 핀란드 모델이 더 바람직하다.
권태선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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