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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9.07 21:13 수정 : 2008.09.07 21:13

권태선 논설위원

권태선칼럼

존 매케인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무명의 세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를 러닝 메이트로 지명한 이유를 두고 의논이 분분하다.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후보가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선택하지 않은 데 실망한 여성표를 흡수하려는 전략이라는 해석이 일차적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극렬한 낙태 반대론자이자 총기 보유 옹호자이며 반환경론자이고, 힐러리를 ‘찔찔 짜는 사람’이라고 비판하는, 여성이라는 점 말고는 힐러리와 공통점이 없는 페일린이 힐러리 지지 여성표를 흡수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부시 행정부의 등장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 기독교 우파들을 재결집하기 위한 카드라는 설명이 설득력 있다. 부시의 선거 참모로 지금은 매케인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는 칼 로브는 페일린 덕에 매케인 지지율이 2~3%포인트 올라갈 것으로 전망한다. 주류 언론이나 민주당한테서 페일린이 비판받으면 받을수록 그에게 공감하는 기독교 우파들이 궐기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2004년 부시 대통령을 리버럴과 주류 언론에 조롱당하는 신앙인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성공을 거뒀던 로브식 집토끼 단속 전략을 다시 한번 가동하려는 것이다.

페일린은 기대에 부응했다. 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서, 아이 다섯을 앞세운 그는 고등학교 때 만나 결혼한 남편을 “아직도 내 남자”라 소개해 전통적 가족의 가치를 지지하는 기독교 우파들의 환호를 불러일으켰다. 이제 기독교 우파들은 페일린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투표장에 나올 것이라는 게 공화당의 셈법이다. 로브 전략이 또다시 성공할지가 미국 선거의 새 관전 포인트가 됐다.

그러나 집토끼만 잡으면 공화당 30년 지배도 가능하다고 했던 로브식 전략이 그동안 미국과 세계에 끼친 폐해는 엄청나다. 공화당 주와 민주당 주가 확연히 갈라지고, 빈부 격차는 최고치에 이르렀으며, 이념적 갈등 역시 최고조에 이르는 등 미국 사회는 양분됐다. 세계 역시 대결적 상황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간은 새로운 전쟁터가 됐고, 미국의 무분별한 확장 정책은 러시아의 제국 복귀를 추동하고 있다. 그 결과 공화당에 대한 미국민의 신뢰뿐 아니라 미국에 대한 세계인의 신뢰도 그 어느 때보다 낮아졌다. 집토끼를 잡아 선거에서 승리하더라도 집토끼만 좇아서는 나라나 세계경영에 성공할 수 없음을 부시 정부 8년이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땅에서도 집토끼 사수론이 위력을 떨친다. 한 보수언론 논객의 코치에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이 꽤 감명을 받은 모양이다. 한나라당은 집토끼인 강남 부자들을 위한 대규모 감세안과 부동산 투기까지 허용하는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다. 종교 편향에 분노한, 전례 없는 불교계의 시위에 직면해서도 기독교 편향 발언으로 그 도화선을 제공한 대통령이 제대로 된 사과조차 내놓지 않는 것 역시 집토끼인 국내 보수 기독교인들을 염두에 둔 탓이다. 언론계의 집토끼인 보수신문들을 위해선 신문방송 겸영이란 선물을 예고했다.

그러나 집토끼용 정책을 아무리 퍼부어도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웃나라 총리가 사임의 이유로 내세운 20%대에 불과하다. 대신 겨우 반년 남짓한 기간에 계층·종교·지역·이념 차이 갈등으로 나라 전체가 갈가리 찢길 지경이다. 이것이 정녕 이 대통령이 꿈꾸는 대한민국의 모습인가? 차마 그렇게 믿을 수는 없다. 이 대통령이 진정 이 나라와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대통령이고자 한다면 집토끼론의 현혹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권태선 논설위원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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