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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27 20:23 수정 : 2008.07.27 22:15

권태선 논설위원

권태선칼럼

“저희에겐 자유란 존재하지 않습니까?”

“저희는 인간도 아닙니까?”

“저희는 꿈도 없습니까?

사슬에 매인 노예의 절규가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의 아들딸이거나 아우일 한 고등학생의 피맺힌 항변입니다.

그러나 어떡하냐고요? 남보다 한 발짝이라도 앞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라는데 내 아이를 뒤처지게 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요?

핀란드란 나라가 있습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 국제학업성취도 비교조사(피사)에서 1, 2위를 도맡아 합니다. 우리나라 아이들도 3~4위는 하지요. 그런데 차이는 그곳 아이들은 오후 2~3시면 끝나는 공교육만으로 그런 성적을 내는 반면 우리 아이들은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어쩌면 그 이상을 공부해서 그보다 못한 결과를 내는 겁니다. 더 큰 차이는 학업 흥미도 조사에선 핀란드는 상위권, 우리나라는 최하위권이란 점이지요.

핀란드 학교를 현장 조사했던 강영혜 교육개발원 교육제도연구실장은 아이들의 수업 분위기가 참여적인 것도 그랬지만, 혹 딴 짓 하는 아이가 있을 때 친구들이 그 아이를 수업에 끌어들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다고 전합니다. 친구를 경쟁자라기보다 협력 대상으로 본다는 것이지요.

물론 핀란드에서도 경쟁은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그 경쟁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과의 경쟁이라는 점에서 우리와 다릅니다. 핀란드 학교에선 학생의 서열과 점수를 매기지 않습니다. 각자 능력에 맞게 공부하되 어떤 수준에 도달하면 그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더 높은 수준으로 계속 학습해 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고등학교는 학년이 없어 학습 속도가 빠른 친구는 2년 만에, 더딘 친구는 4년 만에도 졸업할 수 있다고 합니다. 특목고니 자사고니 하는 특수학교에 우수 학생들을 모아야만 수월성 교육이 가능한 게 아니라 한 학교 안에서 학습 속도의 차이에 따라 공부할 수 있게 하면 된다는 것이지요.


“천재를 키우는 것보다 뒤처진 아이를 함께 이끌고 가야 한다는 게 교육의 원칙”이라고 밝히는 핀란드 미래위원회 마리아 티우라 위원장은 “핀란드 청소년은 모두가 영재이고 소중한 자원이기 때문에 별도의 영재교육이 없다”고 단언합니다. 형평성과 수월성을 동시에 좇는 이런 교육 덕분에 피사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내는 학생 비율은 가장 높고, 하위 수준 학생은 가장 적은 결과를 내 전체 1위를 차지할 수 있고, 나라 전체의 경쟁력도 언제나 최상위권에 속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비교돼 0.1점 차이로 순위가 바뀌고 그 순위가 절대적이니 아이들은 제대로 된 공부보단 점수 잘 받는 법 배우기에 급급합니다. 학습 속도가 빠른 아이들도 제도의 틀에 눌려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친구는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눌러야만 할 적입니다. 이러니 지난 5월 촛불시위의 불을 댕겼던 10대들이 ‘미친 교육 아웃’을 외친 것이지요. 그러나 핀란드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도 아이들을 학대하지 않고 지금보다 훨씬 더 경쟁력 있게 키울 방법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서울시에선 올해 처음으로 직선 교육감 선거를 합니다. 과도할 정도로 교육 역량이 집결돼 있는 서울시의 교육감은 한국 교육의 모습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우리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삶의 질, 나아가 우리의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저 참담한 절규에 귀를 막은 채 이 선거에 나 몰라라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30일 공감의 한 표를 던지시겠습니까?

권태선 논설위원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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