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1.25 19:24
수정 : 2012.01.25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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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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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란 직업이 위기에 몰려 있다. 박정희 전두환을 쫓아낸 지가 언제인데 지금도 기자들이 공정보도를 요구하며 농성 파업을 한다. 때로는 해고되거나 기소돼 법정에 선다. 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해 수많은 학생 시민들이 치른 엄청난 희생을 생각하면 무슨 환영을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이제는 기자가 ‘남산’ ‘서빙고’로 불리던 곳에 끌려가 구타당하고 무릎 꿇리고 반성문을 쓰도록 강요당하던 만행은 찾아보기 어렵다. 기사를 작성할 때 악명 높았던 정보기관의 기관원들이 밑줄을 쳐가며 읽는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쓰는 기자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언론 자유는 위축되고 언론에 대한 신뢰는 하락하고 있다.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다. 정치권력이 선거캠프에서 활동한 전직 언론인들을 후안무치하게 산하 언론기관의 장으로 임명하고, 해당 언론사의 종사자들이 그것을 막지 못했다. 언론인임을 포기한 사람이 돌아와 언론을 변질·타락시키는 데 앞장섰다. 언론권력을 감시하는 시민단체들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수구언론 사주들의 힘은 더욱 커졌고, 그런 현실이 불편했던 사람들은 회사에서 밀려나거나 이념대결 논리에 빠져 자신의 처지를 적극 합리화했다.
올해는 선거의 해다. 양극화, 청년실업, 복지, 재벌개혁, 남북관계,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위상과 역할 설정 등의 현안과 함께 언론 문제도 총선과 대선의 토론 과정에서 폭넓게 논의돼야 한다. 정치지형의 변화에 따라 언론을 옥죄는 외부 요인들을 부분적으로나마 들어낼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론 종사자 스스로 해결할 것들이 적지 않다. 주로 기본적인 자세와 자질의 문제다. 지금처럼 기성 언론이 사회관계망 서비스의 중계 수준에 머무르는 한 존립 기반은 갈수록 허약해지기 마련이다. 현실에 뿌리를 둔 문제의식을 갖고 항상 깨어 있지 않으면 신뢰를 되찾기 어려울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짧지 않은 기자 생활을 되돌아보면 낯 뜨거운 기억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1980년대 중반 미국에 머물 때 노스캐롤라이나주의 그린즈버러에 들른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인종차별단체인 케이케이케이단의 잔영이 어른거리던 지역이다. 1960년 흑인들의 출입을 거부하던 식당에서 흑인 학생들이 ‘싯인’(연좌농성)을 벌여 파문이 일었던 곳으로 이름이 나기도 했다. 한국에서의 인종차별 현황이 거론됐을 때 나는 자신 있게 그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가 호되게 당했다. 한국인들이 아직 외국인들과 어울려 살아본 경험이 없어서 그런 말을 하는데 때가 되면 한국인이야말로 인종차별주의자임이 드러날 것이라고 반박을 당했다. 우리 사회에서 이주노동자 탄압이나 난민수용 기피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나의 만용이 상기된다.
1990년대 초반 도쿄특파원으로 체류하던 시절 이지메라는 집단 괴롭힘은 일본 사회의 독특한 현상처럼 비쳤다. 섬나라 근성이 체질화돼 한 마을에서 특정인을 대상으로 왕따를 시키던 관습이 학교로 번져 불거진 것으로 본 것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들이 꼬리를 이을 정도로 이지메 현상이 심각했다. 그나마 입시교육, 일류교 합격 지상주의 때문에 우리에게도 악화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쓴 것을 자신의 무지를 가리는 핑계로 삼기도 했다.
가장 부끄러웠던 것은 소설가 쓰노다 후사코와 관련된 것이다. 한국인을 깔보는 ‘혐한론’이 기승을 부리던 1996년 일본 지성인 9명을 연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중의 한 사람이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전말을 일본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다룬 <민비암살>의 저자로, 일제 때 프랑스 소르본대학에 유학을 하기도 했다. 인터뷰를 시작한 직후 갑자기 인터뷰가 중단되는 돌발사태가 벌어졌다. 자신의 저서를 다 읽고 왔느냐는 물음에 그렇지 않다고 답을 하자 말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인터뷰가 끝난 뒤 이 할머니는 자신이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지만, 한국에 조사하러 갈 때는 만날 사람의 저서나 관련 기록을 전부 일어로 번역시켜서 읽는다고 했다. 당시 그의 나이 82살이었다. 누군가 인터뷰를 하러 갈 때면 그가 떠오른다. 기자를 제대로 하려면 너무 힘들다.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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