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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02 19:28 수정 : 2012.01.02 19:28

김효순 대기자

독재정권의 무자비한 탄압에 맞서 온몸으로 저항했던 ‘민주주의자’ 김근태씨가 오늘 안식의 땅으로 돌아간다. 처음에는 호칭이 낯설게 느껴졌다. 봉건주의자나 사회주의자처럼 널리 쓰이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급작스레 열린 장례 준비모임에서 그의 일생을 규정할 단어 선택을 둘러싸고 논의가 있었다. 민주화운동의 대부, 민주열사, 지사 등 여러 의견이 나왔으나 민주주의자로 정리됐다고 한다. 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란 뜻일 것이다. 근래에 타계한 사회인사 가운데 처음으로 사용되는 사례가 아닌지 싶다. 담백하고 겸손한 성격에 유연하면서도 불굴의 투지로 불의에 맞서온 그의 일생을 되돌아보면 가장 적합한 말을 고른 것 같다.

공기와 물이 만물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지만, 우리가 평소 고마움을 모르고 지나치듯이 민주주의자란 말도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홀대를 했던 것은 아닐까? 부보가 전해진 뒤 유명 정치인들이 앞다퉈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감상을 쏟아내고 빈소를 찾았다. 언론 매체도 이들의 반응을 중심으로 보도했다. 고인과 40년 가까이 동고동락했던 다른 ‘민주주의자들’은 빈소의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고인의 삶과 전혀 인연이 없었을 인사들의 발언이 매체에서 크게 취급되는 것과는 대조를 이뤘다.

하지만 빈소의 모습은 아주 고무적이었다. 장례 일정이 세밑, 새해맞이와 겹치면서 조문객들의 발길이 뜸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일반 시민들의 조문 열기는 내내 식지 않았다. 어린이들을 데리고 빈소를 찾는 이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그 엄혹했던 시절 용감하게 싸웠던 사람들의 기억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리라.

이제 고인을 보내며 몇 가지 상기해볼 것들이 있다. 첫째, 그는 1990년대 중반 정치에 뛰어들어 3선의 국회의원과 장관을 지내기도 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성공했다고 할 수 없다. 고지식하리만치 결백해서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하고 생전에는 대중적 인기를 폭넓게 누리지 못했다. 2008년 총선에서는 뉴라이트 계열의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배를 당했다. 두 사람의 살아온 경력이나 삶의 자세를 비교할 때 나로서는 선거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고인을 당선시킨 것도, 버린 것도 같은 지역구의 유권자들임에는 변함이 없다.

둘째, 과거 독재정권 아래서 가혹한 탄압을 했던 권력기관은 근본적으로 사죄를 하지 않았고 가혹·조작행위와 관련해 처벌을 받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고인은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당한 고문의 실태를 사법사상 처음으로 모두(첫머리)진술권을 활용해 1시간에 걸쳐 생생하게 폭로했다. 당시 홍성우 변호사는 공판 개시에 앞서 고문 얘기를 전해 듣고 고인을 접견하기 위해 서울구치소로 찾아갔으나 12번이나 거절당했다고 회고했다. 검찰이 변호사의 접견권조차 봉쇄한 것이다. 심지어는 고인이 고문 경찰관을 적시해 법원에 낸 탄원서조차 한동안 실종되는 기괴한 일까지 벌어졌다. 그럼에도 최근 검찰이 시국사건 재심에 임하고 있는 자세를 보면 당시를 반성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셋째, 고인의 일생은 옛 민주화운동 인사 가운데 그나마 나은 축에 들어간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운동권들이 한자리씩 해먹었다는 인식이 사회 일각에 있다.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그런 처우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지금도 정신병원에 갇혀 있거나 극빈층에 속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일부의 출세 사례가 생활고에 시달리는 많은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게 하는 구실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넷째, 이왕 민주주의자라는 말이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됐으니 판단의 기준으로 널리 사용됐으면 좋겠다.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 대비하자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지만, 역사의 역류에 대한 근원적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수구세력들이 그토록 미화하려 하는 이승만·박정희에게 민주주의자라는 잣대를 적용해보자. 도저히 그렇다는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역사왜곡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민주주의자의 무한증식을 기대해본다.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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