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1.14 19:12
수정 : 2011.11.14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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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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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일본교직원노조가 독도의 한국령을 주장하고 있다는 일본발 기사가 국내 언론에 보도되곤 한다. 최근에도 도쿄도 일본교직원노조가 내년도 중학교 사회교과서의 내용을 검토해 독도의 일본 이름인 다케시마가 일본 영토라고 말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가 없다는 자료를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료는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일본 정부의 일방적 견해를 학교 현장에서 가르치면 학생들에게 감정적 주장을 심어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런 정보의 출처가 극우 논조의 <산케이신문>이라는 점이다. 이 신문이 교직원노조의 활동에 호감을 갖고 보도했을 리가 없다. ‘반애국적’, ‘반국가적’ 집단이라는 덧칠을 해대기 위해 저인망식으로 훑다가 뭔가 꼬투리라도 잡았다고 생각하면 부각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국내 언론은 산케이의 보도를 거꾸로 받아 중계를 하는 이례적 현상이 펼쳐진다. 전교조에 대해서는 나라를 망치는 교육을 한다며 깎아내리기를 서슴지 않던 보수신문들도 일본교직원노조의 활동은 사설에서까지 다루며 추어올린다.
산케이의 조준사격에 걸려들어 곤욕을 치른 일본 정치인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 인사가 지난 2월 서울에서 있었던 한일기독교의원연맹의 공동성명에 참여했던 도이 류이치 중의원 의원이다. 목사 출신으로 민주당 소속이었던 도이 의원은 공동성명에 독도의 일본 영유권 주장 포기를 촉구하는 항목이 들어가 있는 점을 산케이가 들춰내 문제 삼자 당직을 사퇴했다가 결국 탈당까지 했다.
산케이의 논조를 보면 난징대학살이나 침략전쟁을 벌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학살은 과장 날조된 된 것이며, 일본 제국은 생존 자위를 위해 부득이하게 전쟁에 말려들었다는 것이다. 군대위안부 강제동원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자학사관’ ‘도쿄군사재판사관’을 추종하는 부류라고 딱지를 붙인다. 하지만 산케이의 주장이 일방적으로 통용될 만큼 일본 사회의 수준이 허접스럽지는 않다. 그래서 산케이와 비슷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자학사관’을 가르치는 교과서를 대체하기 위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들었다. 이들은 또 공영방송 <엔에이치케이>가 ‘반일’ 역사다큐물을 만든다며 소송을 제기하고 수신료 납부 거부운동을 벌이며 심지어 엔에이치케이의 해체까지 요구한다.
어느 때부터인지 국내에도 자학사관이란 용어가 등장했다. 주로 뉴라이트 계열의 인사들이 이 말을 애용하며 기존의 역사교과서들을 공격하고 나섰다. 대한민국의 건국과정을 헐뜯는 자학사관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집필자들을 ‘종북주의자’로 몰기도 한다. 현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는 갖은 무리수를 두어가며 교과서 집필기준을 뜯어고치고 있다. 속내가 뻔히 보이는 ‘자유민주주의’를 강요하고 친일파나 독재에 대한 비판은 약화시키도록 유도한다. 명색이 국사 전공 학자인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은 비판이 거세지자 구차한 변명으로 빠져나가려 하고 있다.
묘하게도 일본에서 우익 새 역사교과서 제정을 주도한 세력에는 해당 분야의 전문 연구자가 거의 없다. 이 점에서는 한국의 뉴라이트 진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류 역사학계는 가만히 있는데 비전공자들이 모여 목청을 높이는 꼴이다. 그리고 부끄럽지 않은 역사가 있을 수 있나? 역사를 연구하고 후세들에게 가르치는 이유는 그런 잘못을 상기해서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데에 있다. 반공이란 미명 아래 친일파들을 비호하고 독재체제를 구축한 것, 독립운동가들을 천대한 것,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 시절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보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는 외국 언론의 조롱을 받은 것은 다 우리의 숨길 수 없는 현대사의 한 단면이다.
대한민국이 평가받는 것은 그런 흠결들을 시민의 희생적 투쟁으로 이겨낸 것이다. 4·19 학생혁명, 5·18 광주 민주화투쟁, 6·10 대항쟁이 그 생생한 증거물이다. 흠은 억지 화장으로 가린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는다. 감추는 것이 아니라 극복의 과정을 가르치는 것이 역사교육의 본령이다.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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