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5.17 16:22
수정 : 2007.05.17 16:22
평양 봉화피복공장 우범수 사장
16일 오전 11시 남쪽 경협 대표단을 실은 버스는 평양시 남쪽 낙랑구역 통일거리 끝에 자리한 봉화피복공장 앞에서 멈춰섰다. 1천평 부지의 공장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기다리고 있던 최인철 공장장(지사장)이 반갑게 일행을 맞았다.
3층 입구 봉제라인 앞에서 인민복을 입은 우범수(53)씨가 “사장입니다“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북쪽 안내원 중 하나는 그가 “(해외업체 등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공장에 물품을 생산하도록 지시하는 사람”이라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지만 굳이 따진다면 책임지도원쯤 된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상 공장의 운영자였다.
우 ‘사장’은 남쪽 기업과 인연이 깊다. 1996년 대우가 남포공단에 투자했을 때, 북쪽 파트너인 민족산업총회사에 있었다. “대우와 5년 동안 잘했다.” 당시 남쪽 대우 직원들의 작업복 가운데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게 거의 없었다고 한다. 지금은 주로 남쪽의 조그만한 의류업체인 ‘소이’(SOIE)의 위탁가공으로 ‘메이드 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made in DPRK) 상표를 붙여 옷을 생산하고 있다. 다른 해외업체들의 주문도 받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뿐만 아니라 유럽에까지 수출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옷공장 재봉틀은 모두 일본제였다. 그는 “원래 일본의 위탁가공을 맡아 했지만, 요즘 일본 정부가 못되게 굴어서 그만두고 남쪽과 거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섬유는 인천-남포 직항로를 이용해 들여온다. 3층 제2작업반 라인 입구 쪽 벽면엔 ‘모범 일꾼’의 이름이 걸려 있었다. 노동자들은 1~5급으로 나뉘고, 여기에 공장의 실적에 따라 차등적으로 임금을 지급받는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하니 노동자들의 성과가 빨리 오른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8월 공장을 넓혀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그는 “이사온 지 얼마 안 돼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할 순 없겠지만, 매월 7%씩 성장한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씩 일하지만, 그는 “납기일 맞추기 등 이쪽의 특성상 연장근무를 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도 남쪽 사장과 다를 바 없다. 현재 놀고 있는 1층에도 재봉틀을 들여와, 공장을 빨리 더 키울 생각에 여념이 없다. 평양/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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