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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31 14:20 수정 : 2008.02.03 15:52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어떤 쇼보다 압도적인 쇼 보여준 나훈아
셀러브리티들에게 귀한 교훈을 남기다

“이런 카리스마는 없었다.” 지난주 금요일 열린 나훈아 기자회견의 후기는 단 세 단어의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나훈아의 기자회견은 스캔들이 연예인을 죽일 수도 있을 만큼 독하고 잔인해지는 시대에 대처하는 가장 드라마틱한 방법을 보여준 사례다.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이 확인돼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떠오르는 말이 칼날로 순식간에 변하는 세상을 사는 스타와 그들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만나야 할까. <매거진t>의 백은하 편집장(사진 오른쪽)과 차우진 기자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백은하 지난주 한국 사람들의 최고 이슈는 역시 나훈아 기자회견이었다. 세계적으로는 히스 레저의 죽음이 파장을 일으켰고. 그런 뉴스들을 보면서 유명인, 요즘은 스타라는 말 대신 셀러브리티(유명인·celebrity)라는 말을 더 널리 쓰는데, 아무튼 셀러브리티의 삶이 우리에게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차우진 요즘 해외 연예뉴스에서 이혼이나 양육권 분쟁까지 거의 실시간으로 보도하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언제 죽을까’라는 설문으로 라이브폴을 하는 사이트까지 있더라.

왜 아이비는 숨고 울기만 했을까


스타라는 말을 셀러브리티가 대치하게 된 건 우러러보고 흠모하던 인물이 땅바닥으로 내려온 거다. 그들의 직업적 아우라 따위는 중요하지 않게 된 거고. 일개의 유명인 정도가 된 사람들이 이처럼 그들을 땅바닥으로 끌어내린 세상과 어떻게 싸워나가느냐가 중요해졌다. 나훈아 괴소문에서 기자회견까지의 과정은 이런 현실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줬다.

동료들하고 같이 기자회견 중계를 봤는데, 농담 삼아 “그냥 바지를 벗지.” 말할 때 정말로 허리띠를 푸는 데 완전히 허걱했다. 그 나이에, 그 연륜에 그런 행동까지 할 줄은 상상을 못 한 거다. 그가 한 말의 진실 여부를 떠나 어떤 쇼보다도 압도적인 쇼를 보여줬다.

그 일련의 행동들을 보면서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게 돼 버렸다. 일개 셀러브리티가 아니라 스타로서 자신감과 쇼맨십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었던 행동이다. 그러면서 지난해 터졌던 아이비의 스캔들이 비교됐는데, 왜 아이비는 숨고 울기만 했을까. 그건 스타가 아니라 그저 일개 셀러브리티이기 때문이다. 나훈아의 대처법을 보면서 단순히 연륜이나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감 있는 스타로 산 사람과 그저 유명인으로 살다가 잊혀진 사람과의 차이라는 게 느껴졌다.

물론 남녀의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성적인 스캔들이 터졌을 때 대처하는 방식이 잘잘못을 가리는 게 아니라 그냥 울면서 피해자 입장을 웅변하는 게 먹혀 왔으니까. 사실 남자들 역시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식이 많지 않았나. 반면 소문의 칼바람에 직접 반격하는 나훈아의 정면돌파는 신선했고, 저래서 슈퍼스타로 한 세대를 풍미했구나라고 인정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대중들이 가혹해졌고 셀러브리티들에게 요구하는 게 점점 더 많아지는 시대에 통제불능의 대중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에 대한 극약 처방 느낌이랄까? 지난주 히스 레저의 죽음을 두고 퍼져나간 애도의 물결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유니나 정다빈 자살 때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는데, 과연 살아 있을 때 그들을 그만큼 사랑했나, 살아 있을 때는 잔인할 만큼 냉정했던 사람들이 꼭 누가 죽어나가야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식으로 이야기하는 애도의 물결에는 동참하고 싶지 않다. 요즘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쫓아다니며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죽어나가야 정신을 차릴 건가 싶기도 하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몰아간 것


아이돌 스타에서 ‘백인 쓰레기’로 내몰리고 있는 브리트니 스피어스.
대중의 마음에는 이중적인 속성이 있다. 동경하면서 경멸한달까. 그런 게 극단적으로 치닫는 대상이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던 사람들이다. 경멸하면서 안쓰러워하고 동정하면서 비난한다. 셀러브리티도 결국 인간인데 그런 시선을 견디는 건 쉽지 않을 거다. 유명인들의 삶을 강제로 노출시키거나 훔쳐보는 게 단지 사생활 침해냐, 알 권리냐 식으로 볼 게 아니라 그들도 인격을 가진 인간이라는 걸 인정할 필요가 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대표적으로, 대중이 우상으로 만들어놓고 그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갈기갈기 찢어놓는가를 보여주는 한 시대의 아이콘이다. 악성 뉴스의 원천인 파파라치와 최근 터진 스캔들을 보면 ‘너희들이 원하는 게 이런 거야? 더 망가져 줄까?’ 하고 브리트니가 외치는 것 같다. 브리트니를 불안한 정신 상태를 몰아간 건 누굴까? 과연 의지박약의 약해 빠진 정신상태라고 개인의 문제로 몰아가는 게 타당한가.

이전에는 스타와 소비자의 관계가 느슨하고 화목했다. 오점이나 미흡한 점, 의심스러운 게 있어도 넘어가는 게 스타에 대한 사랑이었고, 지금의 셀러브리티는 소비자와 팽팽한 긴장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존재감을 획득한다. 패리스 힐튼의 경우가 그렇듯이. 그래서 그들의 생존방식도 끊임없이 무언가와 싸우면서 얻어진다.

이번 나훈아 기자회견은 제어 없는 소비자들의 공격적인 욕망에 아주 센 브레이크를 걸어줬다. 여전히 소문의 진실은 모르지만 그가 여배우랑 뭔 짓을 했건 우리 삶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다들 최면 풀리듯이 문득 깨달은 거다. 사실 쇼비즈니스는 옛날부터 살벌한 전쟁터였다. 옛날에는 내부의 전쟁이 살벌했다면 지금은 싸움의 대상이 소비자로까지 확대됐다는 게 다르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진 만큼 이 싸움에 대처하는 셀러브리티의 방식도 지금까지와는 달라져야 한다. 이제는 한참 전 이야기인 백지영의 사례만 봐도 나름 정면 돌파를 하고 나서 자유로워졌는데 숨거나 포기하는 건 가장 진부한 방식이다. 아이비의 울음이 그닥 큰 공감이나 반향을 얻지 못했던 이유는 이렇게 변한 시대적 흐름을 잡지 못했던 이유도 크다.

인터넷을 통한 전 국민의 파파라치화


악성루머를 정면돌파한 나훈아. 강창광
대중들은 21세기적으로 영악해졌는데 셀러브리티들은 20세기적으로 헌신적인 게 있다. 아무리 일 대 다수의 싸움이지만 한 사람 정도라도 설득할 수 있는 강력한 뭔가가 필요하다. 여기서 필요한 건 눈물이 아니라 진실이거나 새로운 쇼다. 나훈아는 그 치욕스런 시간들을 다시금 자신이 스타라는 걸 각인하는 기회로 이용한 거고. 이제는 스타 자신이 자신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나훈아 기자회견은 많은 셀러브리티들에게도 생각할 기회를 줬을 거다. 소비자들에게도 마찬가지고. 그 자체로 오래 남을 작품이 된 것 같다.

요즘 스캔들의 공격성을 보면 갈 데까지 갔다는 느낌이다. 한국에는 파파라치가 없는 대신 인터넷을 사용하는 전 국민이 파파라치화 돼 있고. 그렇게 생산되는 루머들을 거름망 없이 기사로 만들어내는 사람들도 스스로를 재정비할 때인 것 같다. 루머를 만들어내는 사람도 소비하는 사람도 그 정도의 양심은 있어야 누군가를 좋아할 만한 자격이 있다.

정리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 최고의 스캔들 대처법

기자회견에서 단상 위에 뛰어올라 허리띠를 푼 나훈아.

“동작 하나하나가 치밀하게 준비된 것처럼 제대로 각이 잡혀 있더라. 땅으로 내려왔던 셀러브리티가 그렇게 다시 하늘에서 빛나는 별로 올라갔다.” (백은하)

“이런 카리스마는 어떤 지도자에게서도,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과연 교주님이라 외칠 만하다.” (차우진)

■ 최악의 스캔들 대처법

전 남자친구의 스캔들 폭로에 활동을 중단한 아이비.

“무대 위에서 씩씩하던 여전사가 자기결정권을 갖지 못한 어린 여자애로 무너진 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이미지의 타격이었다”(차우진)

“누군가의 공격에 완벽하게 무방비로 무너져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이 게임의 룰을 모르는 거다. 차라리 그 상황에 분노를 했다면 그녀는 박수를 받았을 거다.”(백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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