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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31 14:48 수정 : 2008.02.01 13:12

스무 살이 되고 싶은 단단하되 귀여운 소녀, <우생순>의 장보람 역 김민지

[매거진 Esc]도대체 누구야?

스무 살이 되고 싶은 단단하되 귀여운 소녀, <우생순>의 장보람 역 민지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을 보다가 짧은 커트 머리를 한 핸드볼팀의 막내 장보람(18·민지)이 등장했을 때 ‘소녀’라는 단어가 퍼뜩 떠올랐다. 소녀, 소녀라 …. 귀여운 소녀, 섹시한 소녀, 불량한 소녀들이 광고와 드라마와 쇼에 나오고, ‘어머나’를 외치는 소녀들이 뭇 남성의 가슴을 흔들어 놓는 시대와 왜 갑자기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단어가 툭 튀어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까.

엄마가 아는 공익의 사촌의 매니지먼트로…

훤칠한 키에 쌍꺼풀이 없는 민지의 얼굴은 몹시 귀엽지도, 조숙한 여성미를 풍기지도, ‘엄마가 뭘 알아’라고 말하는 듯한 새침한 반항기를 보이지도 않는다. 대신 어른들이 미리 짜놓은 어떤 페이스에도 말려들 것 같지 않은 단단함이 느껴진다.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헤드폰을 목에 건 한보람이 대표팀 연습장으로 처음 걸어올 때, 자신을 다그치는 선배에게 툭 내뱉듯 “요새 누가 맞으면서 운동해요”라고 말했을 때 느껴지는 인상도 이런 단단함이었다.


“배우들하고 진짜 선수들하고 연습도, 촬영도 같이 했는데 다들 제가 진짜 핸드볼 선수인 줄 알더라구요.” 통통한 양 볼에 보조개가 쏙 패면서, 소녀와 세상 사이에 놓여 있는 빗장이 스르르 열리는 기분이다. “실은 오디션 다음날 체력테스트에서 4명 중에 3등을 했거든요. 그래서 캐스팅도 안 될 줄 알았어요.” <우생순>은 민지의 첫 장편 도전작이다. 사실 민지는 이 영화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이 영화의 기획을 기사로 읽은 매니저가 장보람 역이 너무 탐나서 여러 번 프로필 사진을 보냈지만 거절당했다가 ‘한 번만 실제 모습을 봐 달라’는 장문의 편지를 제작사에 보낸 뒤 오디션 기회가 왔다. 그렇게 어렵사리 얻은 기회를 앞두고 “집에서 싸구려 공을 가지고 연습을 하다가 막상 테스트 장에서 너무 좋은 공으로 하려니 계속 실수를 연발했다”니 만약 떨어졌다면 두고두고 속 상할 뻔했다.

스크린 속에서 무표정한 장보람은 평범한 듯하면서도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얼굴이지만, 민지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배우는 아니다. 중3때 데뷔해 올해로 고3에 올라간다. 초등학교 때부터 다닌 발레학원의 선생님과 함께 교육방송 춤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게 인연이 됐다.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피디 선생님이 괜찮을 거 같다고 사진 한번 찍어보라고 해서 고모가 운영하는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어요. 딱히 뭘 하겠다는 건 아니었는데 엄마가 그 사진을 가지고 다니다가 근무지에서 같이 일하던 공익근무요원의 사촌이 매니지먼트를 해서 ….”


민지가 전도유망한 핸드볼 선수로 출연하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그렇게 들어간 소속사에서 민지가 시작한 건 의외로 단편영화였다. 첫 출연작이었던 <엘리스를 위하여>가 청소년 영화제에 출품돼 민지에게 덜컥 연기상을 안겼다. 그렇게 출연한 4편 중 3편이 모두 영화제에서 좋은 결과를 받았다. “처음부터 연예인을 할 생각이 많지 않아서인지, 텔레비전에 나오고 싶다거나 드라마에 출연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단편영화를 찍는 건 진짜 재미있었어요. 앞으로도 이렇게 고생해서 저렇게 성공하고 유명해지고 이런 것보다,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무용을 하며 허리까지 길렀던 머리를 데뷔하면서 성큼 자르고, <우생순>을 찍느라 또 바짝 깎았지만 속 상했다거나 밉게 보일까 걱정했단 말은 안 한다. “특별히 못생기게 나오고 싶지도 않지만 예쁘게 나왔으면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그냥 전 아주 평범한 학생인걸요.” 물론 핸드볼 연습을 위해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오전수업만 하고 조퇴하던 고2의 생활이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맛있는 아이스크림집을 찾아다니다가 요새는 친구들이 보낸 문자의 줄임말이나 인터넷 용어를 가끔 이해 못해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친구들이 보낸 문자 줄임말 몰라 당황도

아직 ‘배우 민지’보다 ‘반포고 김민지’가 더 편하고 익숙하다고 한다. 문소리 “언니”의 <오아시스>를 보면서 ‘연기 잘하는구나’라는 생각보다 ‘연기 아무나 하는 거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배우라는 타이틀이 내 것이라고 느껴지는 때가 되면 정말 배우가 돼 있지 않을까라고 묻는다. 좋아하는 영화 장르는 에스에프와 액션. “울고 그러는 건 싫고 멋진 액션배우를 해보고 싶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빨리 되고 싶은 건 스무 살이다. “이번 영화 준비하면서, 또 촬영 중에 짬짬이 회식도 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저는 학생이잖아요. 언니들한테 “민지도 스무 살 되면 술 한잔 해야지?” 이런 말 들으면서 늘 혼자 일찍 일어났는데, 나만 뭔가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게 제일 아쉬웠어요. 물론 술을 마시고 싶다는 건 아니구요. 아, 정말 그건 아니라니까요. 하하.” 환하게 웃는 그의 볼에 다시 깊은 보조개가 팼다. 단단한 소녀의 문 틈으로 귀여운 아이가 톡 튀어나왔다.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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