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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23 21:50 수정 : 2008.01.27 13:33

실소를 폭소로 반전시키는 ‘딸랑 이거’의 저력, <스타킹>의 서혜진 피디

[매거진 Esc] 도대체 누구야?
실소를 폭소로 반전시키는 ‘딸랑 이거’의 저력, <스타킹>의 서혜진 피디

실소를 폭소로 반전시키는 ‘딸랑 이거’의 저력,
<스타킹>의 서혜진 피디

번쩍거리는 무대 조명이 마냥 신기한 듯 눈을 반짝이는 밤톨 같은 꼬마가 장기자랑을 하러 나왔다. “저는 새끼발가락을 넷째 발가락 위에 올려놓을 수 있어요.” 으~응? 그게 장기라구? 의아할 사이도 없이 성인 손톱만 한 새끼발가락이 톡! 넷째 발가락 위에 올라앉았다. “딸랑, 이게 다예요?” 강호동이 묻자, “눈을 굴리고 코를 벌렁벌렁하면서 새끼발가락을 넷째 발가락 위에 올려놓을 수 있어요.” 그리고 사뭇 진지하게 코를 벌름대면서 발가락을 움직이는 어린이. 그 아이다운 진지함이 거구의 강호동과 구경나온 연예인 패널들, 휴일 오후 방바닥에 배를 깔고 티브이를 보는 시청자를 뒤집어놓는다.

전체 출연 신청의 반 … 전국 돌며 인터뷰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이 광경을 목격한 시청자라면 “저게 뭐야? 딸랑 저게 개인기란 말야?” 할 수 있다. 맞다. 딸랑 그거 하나다. 그래서 이름도 ‘딸랑 이거’. 에스비에스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서 일반인들이 딸랑 하나의 소박한 개인기를 가져나와 자랑하는 코너다.

1월12일치에 출연했던 꼬마의 발가락 묘기처럼 ‘딸랑 이거’에 등장하는 개인기들은 대체로 장기라고 하기도 좀 뭣하고, ‘놀라운’이라고 경탄하기엔 자못 민망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배에 힘만 주면 바로 얼굴이 빨개져서 빨간 얼굴로 ‘발광 비트박스’를 하는 소년, 마음대로 방귀를 뀌는 아저씨, 유난히 발달된 엉덩이 힘으로 나무젓가락 대여섯개를 순식간에 부러뜨리는 ‘괴력’(?)의 청년, 요들송을 부르며 힙합댄스를 추는 소녀, 귀를 접어 귓구멍에 쏙 집어넣는 꼬마 등등. 처음 장기를 선보일 때는 그 사소함에 터졌던 실소가 딸랑 하나로 최선을 다하는 참가자들의 열과 성에 폭소로 발전한다. 두달 전 <스타킹>의 양념으로 시작된 ‘딸랑 이거’는 최근 본 참가자들을 누르고 ‘스타킹’이 되는 기염을 토하며 프로그램의 주메뉴로 떠오르고 있다.

“장기자랑이라니까 많은 분들이 아주 특별한 능력을 가져야 하는 걸로 생각해서 초창기에는 신청률이 저조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도 장기가 될까요?’라며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는 분들이 늘어났죠.” <진실게임> <동안선발대회>등 일반인 출연 프로그램을 주로 해 온 에스비에스 서혜진 피디(38)는 처음 작가가 ‘딸랑 이거’를 제안했을 때 고민을 했다. “일정 시간을 채우기에는 보여줄 장기가 너무 약하고 자칫 성의 없어 보이지 않을까 싶었죠.” 재밌기야 하지만 콧구멍을 엄청나게 넓힌다거나, 입술 사이에 볼펜을 끼우는 재주만으로 5, 6분을 이어간다는 건 불가능한 일 아닌가. 그래서 궁리해낸 게 서너 명의 참가자를 하나로 묶어 하나의 팀을 구성하는 것. ‘딸랑 이거’라는 도발적인(?) 코너명은 예심 인터뷰에 나온 참가자들마다 입을 모은 듯 “딸랑 이거 하난데요”를 연발하면서 저절로 만들어졌다.


‘딸랑 이거’ 최초로 ‘스타킹’에 등극한 11살 ‘엘비스’와(사진 위) 발가락 개인기를 펼친 꼬마.
‘딸랑 이거’가 만들어내는 게 단순한 웃음만은 아니다. 작은 재주, 큰 용기만 가지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는, 낮은 문턱을 올라온 출연자들은 연예인들도 눈 마주치면 움찔한다는 진행자 강호동과 동네 주민처럼 어울리며 편안하게 자신을 보여준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티브이의 콧대가 마을 잔치나 학예회처럼 기분 좋게 꺾이는 풍경이다. 늘 주목받고 박수받던 스타들이 옆으로 비껴나 일반인들에게 열광하고 박수 치는 상황 역전도 ‘딸랑 이거’만이 주는 짜릿한 쾌감이다. “주로 어린이나 10대인 출연자의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응원 온 무대 아래까지 하나가 돼서 녹화를 하다 보면 운동회나 동네 잔치 분위기가 형성된다”고.

요새는 전화나 게시판 신청에서 ‘딸랑 이거’ 출연 신청이 전체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일주일에 100여 건 오는 신청 중에 50건 정도를 작가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인터뷰한다. 이 코너를 처음 제안했던 조명진 작가는 “마음대로 방귀 끼는 분이 신청해놓고 창피하다며 갑자기 연락을 끊어 집까지 찾아가 잠복하며 기다리다가 만나 설득했던 일과, 만삭의 벨리댄스를 자랑하겠다던 임산부가 갑자기 출산일이 당겨져 아깝게 포기했던 일이 기억난다”며 “신청자들을 만날 때마다 생각지도 못했던 장기를 보면서 의도하지 않게 재미의 장르나 방송의 영역이 확장되는 걸 얻어낸 것 같다”고 말했다.

“재주를 절박하게 풀어내는 매력”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연예인들끼리 노는 것만 재밌는 건 아니구나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서 피디는 ‘딸랑 이거’의 강점을 “재주를 절박하게 풀어내는 매력”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방점은 ‘재주’보다 ‘절박’에 찍힌다. 뛰어난 재주보다 “쇼를 만들기 위해 도전하고 노력하는 모습”에 자연스레 높은 점수를 주게 된다고. 그래서 <스타킹> 제작진이 제시하는 출연 자격은 공부를 잘하거나, 돈을 잘버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사소하더라도 나만의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의 에너지가 ‘딸랑 이거’하나만으로도 박수받을 수 있는 21세기의 ‘묘기 대행진’을 만들어나간다.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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