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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9.12 17:55 수정 : 2007.09.12 18:09

스스무 요나구니의 비밀의 주방

[매거진 Esc] 스스무 요나구니의 비밀의 주방16 - 마지막
스스무와 함께 했던 넉달, 그가 못다한 이야기들

스스무 요나구니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가회동의 레스토랑 ‘오키친’ 건너편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려 할 때 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가게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야구모자를 쓰고 있었고, 전혀 요리사 같지 않았고, 혹시 가게 청소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마디로 한가해 보였다. 인사를 하고, 차를 한잔 마시고,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뉴욕 요리계에서 있었던 수많은 ‘사건’들을 이야기할 때도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한가해도 되는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혹시 ‘오키친’에 갈 일이 있어 그의 모습을 볼 기회가 생긴다면 ‘한가하다’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움직임은 단호한 듯 느긋하고 게으른 듯 자유롭다. 스스무 요나구니가 전쟁 같은 뉴욕의 주방에서 일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저런 움직임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삶은 몸에 새겨지는 법이다.

“요리사는 시장에 직접 가야 해요”

4개월 동안 이어졌던 스스무 요나구니의 이야기가 이제 끝을 맺는다. 그의 이야기를 녹음하고 정리하고 재구성했던 편집자로서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미처 싣지 못한 이야기도 있었다. 마피아에게 불려 갔던 이야기는 너무 살벌해서 싣지 못했고, 영화〈라따뚜이〉에 대한 이야기는 넘치는 분량 때문에 조금 편집됐고, 그가 참가한 무술대회 에피소드와 농구, 축구, 야구에 대해 나눴던 수많은 이야기는 요리라는 주제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도자기 작가이기도 한 그의 ‘미술 이야기’ 역시 생략됐다. ‘록 마니아’로서 식당에서 (롤링스톤즈의) 믹 재거를 만났던 이야기도 빠졌다. 디브이디의 ‘디렉터스 컷’처럼 ‘에디터스 컷’이 가능했다면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울 뿐이다.

스스무 요나구니를 만나기 전에도 많은 요리사를 만났다. 하지만 스스무 요나구니 같은 요리사는 처음이었다. 그에게는 ‘유머감각’이 있었다. 그 유머감각은 농담과 다르다. 그의 유머감각은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수많은 위기를 이겨낸 후의 경험이 빚어낸 표현 방식이었다. 또 하나 차이점은 아직도 주방에 들어가서 요리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요리사들이 나이가 들면 ‘입으로’ 요리하는 경우가 많다.

김중혁(이하 김) : 그동안 재미있는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스스무 요나구니(이하 스) : 아니에요. 내가 재미있게 잘 놀았어요.

김 : 요즘 ‘오키친2’ 때문에 많이 바쁘시죠? (스스무 요나구니는 최근 이태원에 오키친 2호점인 ‘오케이(OK)2’를 열었다.

스 : 요리사로서 일하는 건 똑같아요. 아침 5시 반에 시장 가요. 요리사는 시장에 직접 가야 해요. 시장을 보고 ‘오키친’에 생선을 배달하고(웃음) 9시에 이태원으로 출근해서 주방장과 같이 리스트를 만들어요. 오늘의 메뉴를 정하고 주방장이랑 생선도 같이 잡아요. 그리고 조금 자요. 피곤해서.(웃음)

김 : 매일 요리하기 피곤하지 않으세요?

스 : 매일 요리하는 사람이 제일 잘해요. 많은 요리사들이 재료의 원가 같은 것에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요리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주방에 들어가요. 그렇지 않으면 감각이 떨어져요.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요리와 직접 하는 요리는 달라요.

연구소와 주방에서 가르치는 재미에 흠뻑

김 : 허브를 직접 키우시는데, 농사는 잘되세요?

스 : 처음에는 너무 재미있었는데 힘들어요.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농사를 해본 적이 없잖아요. 그래도 이제 조금씩 방법을 깨닫고 있어요. 잡초가 나잖아요. 그러면 처음에는 다 뽑았는데, 요즘엔 그냥 놔둬요. 커다란 잡초가 있으면 더 이상 작은 잡초가 생기지 않아요. 바질, 루콜라, 민트 전부 잘돼요. 내가 키우니까 식당에서 원가 생각하지 않고 마음껏 쓸 수 있어서 좋아요. 주말이면 늘 밭에 가는데 밭 옆에서 삼겹살 굽고 맥주 마시는 것도 아주 기분이 좋아요.

김 : 요즘 가장 재미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스 : 연구소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주방에서 학생들과 함께 일하는 게 제일 재미있어요.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재미있는 일인지 깨닫고 있어요. (‘오키친’은 기존 식당과 달리 스스무 요나구니와 부인 오정미씨가 운영하는 연구소의 학생들이 주방을 맡고 있다) 지금 이태원에서 일하고 있는 여자 주방장이 처음에는 참 많이 힘들어했어요. 그만두겠다고 하고, 많이 울기도 했는데 “넘어서야 한다”고 했어요. 지금은 강해요. 영화〈라따뚜이〉에 나오는 여자 요리사 콜레트랑 아주 비슷해요.

김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스 :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가끔 식당에 비싼 와인을 들고 와서 식사를 하는 손님이 있어요. 한번은 나한테도 와인을 조금 줘서 마셔봤는데, 이건 와인이 아니라 식초였어요. 식초가 되기 직전의 와인이었어요. 여러 명이 함께 와인을 마시고 있었는데 아무도 그 맛을 몰랐어요. ‘아, 역시 비싼 와인을 마시니 다르긴 다르다’ 이런 소리를 하고 있어요. 한명이 나하고 눈이 마주쳤는데 그 사람만 와인 맛이 변했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와인은 명성이나 가격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와인값은 음식값의 20% 정도가 적당해요. 와인이 너무 비쌀 필요가 없어요. (‘오키친’의 와인리스트는 싸고 좋은 와인이 많기로 유명하다) 맛을 즐기고 와인과 음식을 즐기세요. 그리고 한국에 외국의 좋은 식당들이 들어오는 건 무조건 환영할 만한 일이에요. 한국에 있는 식당의 입지가 좁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무조건 좋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해야지 한국의 음식 수준이 높아져요. 한국 야구나 농구 같은 경우를 생각해봐요. 외국의 용병을 데리고 들어오는 것과 비슷해요. 아니면 한국 축구에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는 것과 비슷해요. ‘아, 연습은 이렇게 하는구나’, ‘이런 기술을 가지고 있구나’ 배우는 것과 비슷해요. 식당에서 일하던 사람 중에 ‘아, 이 정도라면 나도 나가서 할 수 있겠구나’ 싶으면 자기 식당을 열 수 있잖아요. 그렇게 조금씩 음식 문화가 발전하는 거예요.

음식 기술보다 더 중요한 ‘태도’

스스무 요나구니의 비밀의 주방
‘오키친’에서 밥을 먹으며 스스무 요나구니를 관찰한 적이 있다. 그는 저녁 시간 손님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인사를 했다. 인사라기보다는 한담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고 음식에 대한 얘기를 건네고 와인을 추천하기도 했다. 그때문인지 식당의 분위기는 따뜻했다. 식당의 공기 속으로 음식 향기와 따뜻한 말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바깥에 나와 밥 한 끼를 먹는다는 것은 식당의 공기를 마신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리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기술일지도 모른다. 섬세함일지도 모른다. 음식에 대한 지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스무 요나구니를 만나고 그에게 얘기를 듣는 내내, 요리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을 대하는 태도, 와인을 대하는 태도, 손님을 대하는 태도, 식당을 대하는 태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태도가 완성되지 않으면 한 끼의 맛있는 밥이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일지 모른다. ‘오키친’에서 먹는 한 끼가 그토록 따뜻한 것은 스스무 요나구니라는 요리사가 있기 때문이다.

정리 김중혁 기자 pen@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mh@hani.co.kr



스스무 요나구니의 레시피 / 부드러운 무화과 애피타이저
스스무 요나구니의 레시피

지금이 무화과 철이에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무화과 애피타이저를 하나 알려드릴게요. 부드러운 무화과 1개를 고르세요. 그리고 고르곤졸라 같은 블루 치즈 1∼2 테이블스푼과 발사믹 식초를 준비하세요. 우선 무화과의 아래쪽에다 칼집을 넣고 그 안에다 블루 치즈를 넣으세요. 그리고 180도의 오븐에다 5∼6분 정도 구우세요. 치즈가 약간 녹은 상태가 될 때까지, 무화과가 따뜻하게 될 때까지 구우세요. 그리고 발사믹 식초는 팬에 놓고 졸이세요. 약간 시럽이 될 때까지 졸이세요. 그리고 접시에다 무화과를 놓고 발사믹을 뿌리세요. 발사믹을 접시에 깔고 무화과를 얹어도 상관없어요. 아주 간단하게 만들 수 있어요.

정리 김중혁 기자,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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