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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22 14:00 수정 : 2008.05.22 14:00

맨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히레가스, 새우후라이, 코돈불루.

[매거진 Esc] 예종석의 맛있는 집|명동 돈가스

일본 개방의 기점이 된 메이지유신은 요리 서구화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일본의 근대화를 위해서는 국민의 왜소한 체구부터 개선해야겠다고 생각한 메이지왕은 7세기 이래 국법으로 지켜왔던 육식금지령을 과감하게 해금하고 고기 먹기를 장려하기 시작했다. 이 조치가 당시의 일본 사회에 얼마나 충격을 주었는지는 육식이 해금된 1872년 2월 메이지왕의 거처에 해금령을 반대하는 측의 자객이 열 명이나 난입하여 네 명이 사살된 사건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이때부터 일본인들은 전통을 잊지 않고 서양문화를 배워서 양자를 조화시킨다는 이른바 화혼양재(和魂洋才)의 정신으로 서양요리를 일본화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 결과 19세기 말에는 도쿄에만 양식집이 1500군데에 이르렀다 한다. 그래서 메이지유신을 요리유신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돈가스는 서양요리를 일본화해서 대중에 보급한 일본 양식의 대표주자이다. 그 이름부터가 일본어로 돼지를 뜻하는 돈과 영어 커틀릿의 일본식 표기인 가스레스의 합성어이다. 지금도 돈가스의 발상지인 도쿄의 우에노에 가면 ‘호라이야’나 ‘후타바’같이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돈가스집들이 고색창연한 가게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명동돈가스는 그런 일본 돈가스 명점 중의 하나인 ‘동키’에서 비법을 배워 왔다. 1970년대에 상당한 규모의 사업을 하면서 일본을 자주 드나들던 윤종근(72) 회장은 우연히 먹어본 동키의 돈가스 맛에 홀딱 반해서, 아예 사업을 정리하고 우여곡절 끝에 현지에 가서 어렵사리 비법을 배운 뒤 83년 명동돈가스를 창업하였다.

윤 회장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오래전 도쿄의 뉴재팬 호텔 화재 때는 화염 속에서 침착하게 침대 시트커버를 찢어 만든 밧줄로 고층에서 탈출하여 화제가 되었던 인물이다. 그는 그 어려운 상황에 아래층의 일본인 신혼부부까지 구출해서 일본 언론의 각광을 받기도 했으며 연전에는 그 미담을 <엔에이치케이>가 은인 찾기 프로그램에 소개해 일본 전역에 의인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예종석의 맛있는 집
그런 그의 철저하고 끈질긴 성격은 돈가스 만들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윤 회장은 돈가스의 맛은 고기의 질과 숙성이 좌우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으며 그 원칙을 줄곧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명동 돈가스는 생체 중량 105㎏ 이상의 국내산 규격돼지만 쓰며 그것도 암퇘지만을 골라 일주일 정도 냉장실에서 숙성시켜 그 맛이 절정에 달했을 때 최상급의 기름에 튀겨 낸다. 돈가스와 같이 담는 양배추도 하루 이상 숙성시켜 단맛이 자연스럽게 생성되었을 때 사용한다. 노릇노릇 바삭 튀긴 돈가스를 한 입 먹은 뒤 양배추 채를 아삭아삭 씹어서 입 안의 기름기를 씻어내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돈가스의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로스(등심)가스와 히레(안심)가스는 9000원이며 생선가스는 8000원, 고기와 치즈를 함께 튀긴 코돈블루는 1만2000원 받는다.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5번 출구 하나은행 후문 앞에 있으며 전화번호는 (02)771-9292이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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