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1.03 07:41
수정 : 2020.01.03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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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시에 본사를 둔 스카이워스 본사 전경. 스카이워스는 역시 선전에 본사를 둔 티시엘(TCL)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티브이 생산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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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중국판 실리콘밸리’ 선전
화웨이·텐센트·비야디 품은 도시
전기차·전자화폐 일상적 사용
“안전모 미착용” AI가 경고도
14억 인구 ‘애국소비’로 맷집 키우고
베트남에 공장 세워 미국 제재 우회
“베트남은 추가 공장…아예 옮길 생각 없어”
2만개 매장 유통의 장 화창베이
제조업 집결 둥관시로 ‘생산체인’
“삼성 하청들, 이제 비보에 납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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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시에 본사를 둔 스카이워스 본사 전경. 스카이워스는 역시 선전에 본사를 둔 티시엘(TCL)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티브이 생산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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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 위치한 한 공장. 하얀 모자를 쓴 20대 중국인 근로자들이 전력 공급기 조립을 위해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이곳 파이(PI)전기는 중국 정부가 첫 경제특구로 선전시를 선정한 뒤 본격적인 개방이 이뤄지던 1990년 선전에 자리잡은 기업으로 선전 아이티(IT) 1세대 업체다. 2011년 중국에서 상장한 뒤 지난해 기준 3억2천만달러(약 3722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 파이전기는 근래 두가지 큰 문제에 부닥쳤다. 하나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 제재다. 나머지는 5세대(5G) 및 인공지능(AI) 시대로의 전환이다.
“베트남에 갔다가 그제 선전으로 돌아왔어요. 모레도 다시 가야 해요. 1년 사이 베트남은 크게 변했어요. 벌판이 공장들로 채워지고요. 2020년에는 베트남 인력 구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파이전기 대표 호?푼은 두달 전 베트남 하노이에 ‘세컨드 공장’을 구했다. 파이전기의 제품 4분의 1은 미국에 수출해왔다. 미국의 제재로 하루아침에 수출길이 막혀버리자 미국과 우호적인 국가를 찾아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하노이는 선전에서 비행기로 1시간40분이면 갈 정도로 가깝다. 그렇다고 선전의 공장을 다른 곳으로 완전히 옮길 생각은 없다.
“선전에는 부품 공급과 가공 설비 마련, 우수한 기술 인력 확보 등 산업 생태계가 탄탄하게 형성돼 있습니다. 여기서 일단 재료는 다 만들고요. 미국 규제에 해당되지 않는 단계에 맞춰 마지막 완성품만 베트남에서 만들어 보내면 됩니다. 이번주부터 미국 수출이 다시 시작됐어요.”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이자 ‘중국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선전시는 미국 무역 제재로 인한 수출 ‘직격탄’에 위기를 극복하고자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곳엔 세계 1위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인터넷·게임업체에서 시작해 ‘위챗페이’로 중국인의 일상 금융까지 지배하고 있는 텐센트, 미국 테슬라와 전기자동차 1위를 다투고 있는 비야디(BYD)의 본사가 모두 위치해 있다. 특히 화웨이는 지난해 5월 미국이 수출제한기업 명단에 올리며 미-중 무역전쟁의 시발점이 된 기업이다. 미국발 위기 속 화웨이 등 대기업은 14억 내수 인구의 ‘애국 소비’에 기대며 ‘맷집’을 키우고 있었고 중소기업들은 파이전기처럼 ‘베트남 공장’ 등 글로벌 체인 속에서 대안을 찾고 있었다. 화웨이의 지난해 3분기 중국 시장 스마트폰 점유율은 40%(카운터포인트 리서치)로 역대 최고치였는데 삼성전자가 20%대에서 최근 0%대로 내려온 부분을 고스란히 흡수했다. 인공지능 등 기술 개발에 더욱 속도를 높이는 것은 어느 기업이나 공통적이었다. 화웨이 관계자는 “2019년 1200억위안(약 19조9128억원)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기로 했는데 아직 집계 중이지만 다 집행된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미국의 제재를 두곤 아이티 후발 주자 중국이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을 이루자 ‘견제’하기 위한 조처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한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의 지난해 7월 분석자료를 보면 중국의 아이시티(ICT) 기술은 미국과 불과 1.2년의 격차를 보였다. 2018년 기준으로, 지난해엔 더 좁혀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1.4년으로 중국보다 0.2년 더 뒤처진다. 특히 클라우드 컴퓨팅과 사물인터넷(IoT) 같은 5세대(5G) 핵심 기술에서 중국은 한국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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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공항 앞에 초록색 번호판을 단 전기차 택시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 모두 선전에 본사를 둔 전기차 기업 비야디(BYD)의 차량으로 선전시는 모든 택시를 전기차로 바꾸는 작업을 2019년 완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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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만 인구의 선전시는 도시 자체가 기업과 정부의 ‘테스트베드’다. 선전시는 2019년 시내 택시 전체인 2만여대를 전기차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2017년 대중교통 버스를 모두 전기차로 바꾼 데 이어 택시까지 범위를 넓혔다. 차량은 모두 자국 ‘비야디’ 것이다. 외국인이 선전공항을 나와 처음 마주하는 풍경은 파란색의 비야디 택시가 초록색 번호판을 달고 줄지어 있는 것이다. 가솔린 차량(파란색)과 구분해 전기차에는 초록색 번호판을 다는데,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중국 정부의 보조금에 ‘친환경 스마트도시’를 표방한 선전시의 추가 보조금, 선전의 기업 비야디를 세계 최고 전기차 업체로 키우자는 공감대와 이에 맞춘 기술개발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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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시 거리의 한 기둥에 달려있는 폐쇄회로텔레비전(CCTV)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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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나이 30대 초반의 젊은 도시 선전에선 실물 지폐를 보는 게 드문 일이다. 작은 꼬치집에서도 텐센트의 위챗페이와 알리바바의 알리페이로 돈을 받는다. 선전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18년 18만9568위안(약 3146만원·2만7119달러)으로 중국 평균의 3배 가까이 된다. 거리에선 경찰관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주차 위반은 물론 주행로 정지선을 지키지 않은 차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고개를 들어보면 안면인식이 가능한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주차 규정을 위반하면 시시티브이가 바로 인식해 모바일로 ‘딱지’를 보낸다. ‘5G판 감시사회’라 할 만하다. 사회주의라 가능한 측면이 크다. 벌금은 최대 2천위안(약 33만1천원)까지 가능하다. 선전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이 25위안임을 고려하면 얼마나 큰 돈인지 가늠할 수 있다. 화웨이 본사가 위치한 선전시 룽강구는 특히 ‘스마트시티’의 견본장으로 꼽힌다. 룽강구는 화웨이의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인공지능 기술을 바탕으로 7900만달러(약 919억원)를 들여 1만7748㎡(5369평) 규모의 스마트센터를 만들었다. 공사 현장 근로자가 안전모를 착용했는지, 전봇대 전선이 내려와 있는지 여부를 학습된 인공지능이 식별해 관리 부서에 바로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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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시 유통단지 화창베이의 한 매장. 가정용 로봇 등이 진열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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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화창베이’는 전자제품 및 부품 유통의 장이자 인근 공단 지역과의 연결 통로 구실을 한다. 2만여개 매장에 15만여명이 판매에 종사하고 있는 이곳은 평일인 지난달 19일 저녁에도 바이어들과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요즘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제품은 가정용 로봇들과 고성능 촬영기기들이다. 한평 남짓 매장을 운영하는 중국인 장씨는 미국 ‘고프로’와 유사하게 생긴 4K 해상도(UHD) 액션캠을 내밀며 “1천개를 주문하면 3일 안에 원하는 마크를 찍어 개당 150위안(약 2만4800원)에 만들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곳 임대료는 월 4천위안(약 66만원)에 불과하다고 전하며 인근 둥관시 공장에서 제품을 바로 만들어 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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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시 인근에 공장이 밀집해 있는 공업도시 둥관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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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중국의 차량공유서비스 디디추싱을 이용해 선전에서 70㎞가량을 달려 둥관시를 찾았다. 840만 인구의 제조업 도시 둥관엔 화웨이의 스마트폰 생산 공장과 여의도 절반(180만㎡) 규모의 연구개발 캠퍼스가 자리잡고 있다. 외국 기업들도 중국의 저렴한 인건비와 근처 선전의 연구개발 시스템을 이용하기 위해 둥관에 오이엠(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오디엠(ODM·제조업자 개발 생산) 공장을 다수 두고 있다. 선전의 ‘생산기지’라 할 수 있는 이곳은 과거 완구·섬유에서 전자 부품으로 공장 업종이 많이 전환됐다. 둥관에선 공장지대라는 지리적 장점과 중국에서 발달한 전자상거래를 기반으로 ‘투잡’을 뛰는 이들이 늘고 있다. 평생 둥관에서 산 39살 진씨는 낮에는 전자 관련 일을 하고 퇴근 뒤엔 인근 공장에서 완구를 떼다 알리바바에 판다. 그는 “알리바바 숍을 개설한 지 3년 됐는데 이제는 (낮일) 월급과 수익이 비등하다”고 했다.
미국 제재 뒤 둥관 제조 경기를 알기 위해 시에서 기업관리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찾았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당장 미국, 유럽으로의 수출이 좋지 않으니 대미 생산라인을 줄이고 내수용을 늘리는 식으로 조절 중”이라며 “아직까진 1년 전 오더를 소화하고 있고 최근 중국의 양보로 미국과의 (무역제재 관련) 협상이 조금 풀리는 분위기여서 우려가 크진 않다”고 말했다. 그는 “둥관 공장을 아예 베트남으로 옮긴 건 1%도 되지 않는다”며 “대부분 미국 제재를 피해 수출을 이어가기 위해 여력으로 추가 공장들을 낸 것”이라고 했다. 둥관 인근 후이저우시에는 삼성전자의 마지막 스마트폰 공장이 있었다. 중국 내 점유율 하락 등으로 지난해 9월 이 공장은 문을 닫았다. 둥관의 이 공무원은 “삼성전자가 철수한 뒤 삼성의 하청 부품 공장들이 ‘비보’로 최근 납품선을 바꾸고 있다”고 전했다. 비보는 화웨이, 오포와 함께 중국의 3대 스마트폰 업체로 둥관에 본사를 두고 있다.
선전시의 국내총생산은 지난해 3분기까지 6.6% 성장하는 데 그쳐 2018년 한해 증가율(7.6%)보다 낮았다. 고속 성장을 해온 선전 기업들에 2019년은 어느 때보다 쉽지 않았던 해로 꼽힌다. 선전대학교에서 연구 중인 김진호 단국대 교수(정치외교)는 “중국 경기가 과거보다 하락세인 가운데 미국 제재로 기술 발전을 위한 외부 협력에 여러 제약이 생기면서 선전을 비롯한 아이티 도시들에 어려움이 생긴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중국 정부가 아이티 분야를 통해 혁신 동력을 찾으려 하고 있고 선전은 4차 산업과 제조업, 금융 등이 집결된 곳인 만큼 발전 가능성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선전 1세대’ 파이전기 호 대표는 최근 상황을 어떻게 볼까. “기술 연구 말곤 취미가 없다”는 그는 이제 선전에 회사를 차린 지 30주년을 맞는다. 호 대표는 “기술이 아닌 돈만 볼 때 성공률은 언제나 높지 않았다”며 “선전의 벤처캐피털 거품이 줄어들고 있어 경기가 주춤해 보이지만 사실 지금이 정상”이라고 강조했다. 전력 공급기 사업을 이어오던 그는 2010년부터 공업용 로봇 개발에 ‘꽂혀’ 3억위안(약 498억원)을 투자해왔다고 한다. 두가지 문제 중 미국 제재 위기는 베트남 이전이라는 ‘임기응변’으로 대처했다면 인공지능 시대로의 전환에는 장기 연구로 대비해왔다는 것이다. 그 결실로 2020년 첫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며 그는 “관련 연구를 보면 지금은 노동자와 로봇의 비율이 1천명 대 71대 정도 되는 시대인데 내 목표는 ‘500명 대 로봇 3천대’로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곧 많은 게 달라질 것”이라며 “2020년 중반께 다시 한번 선전 공장을 방문해달라”고 말했다.
선전 둥관/글·사진 송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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