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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0.11 17:38 수정 : 2007.10.11 17:38

지구를 위하여 막 키운 고기를 먹자꾸나

[매거진 Esc] 요리사X와 김중혁의 음식잡담
그릴 전문점에서 육식의 역사와 숙성을 이야기하며 마지막 인사를 하다

광진구 자양동의 ‘스타키친’

김: 새로 생긴 건물이네요. 여기에 이렇게 큰 건물이 들어설 줄은 몰랐네. 식당도 꽤 많네요.

X: 오늘은 그릴 음식을 먹어보자.

김: 그러고 보니 그릴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곳은 별로 보질 못한 것 같네요.

X: 그릴 음식은 아주 쉬운 요리이고 고급 요리가 아냐. 숯불 가격이 비쌀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아. 요즘은 중국산 참숯을 많이 쓰는데 한 박스 사면 꽤 오래 쓸 수 있어. 그릴 요리가 왜 쉬운가 하면 온도를 맞추기가 아주 편해. 오버쿠킹 되는 예가 별로 없지. 프라이팬을 쓰면 까딱 잘못하다가 쿠킹 타이밍을 놓치면 덜 익거나 타버리지만 그릴은 그렇지 않아. 물론 단점도 있지. 온도를 예민하게 맞출 수가 없지.

대강 얹었다가 대강 꺼내먹는 그릴 요리


김: 고급 식당은 아니고 대중 식당에 가까운 거겠네요.

X: 그렇지. 서양의 대중 음식점에 가서 고기를 먹을 때면 어떻게 구워줄 것인지 물어보지도 않는 경우가 많아. 주방장이 해주는 대로 먹는 거야. 조금 익혀서 대강 뒤집어보면 미디엄이나 미디엄 레어야. 대강 얹었다가 대강 꺼내서 대강 먹는 거야. 그게 서양의 대중 음식이야.

김: 저는 레어로 먹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릴전문점에선 거의 불가능하겠군요.

X: 레어로 고기를 굽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레어로 굽기 위해서는 냉장고에서 고기를 꺼내고 상온에다 둬야 해. 바로 그릴에 얹으면 차가운 고기가 겉은 타고 속은 익질 않지. 우리나라에선 스테이크가 많이 팔리는 음식이 아니니까 고기를 꺼내두기가 힘든 구석이 있어.

김: 서양에선 고기를 숙성시켜서 먹는다는 얘길 하던데요.

X: 그랬지. 그런데 요즘은 숙성의 의미가 별로 없어. 예전에는 소들이 풀을 뜯어먹고 자랐기 때문에 단백질이 딱딱할 수밖에 없고, 숙성을 시키지 않으면 거의 먹을 수가 없었거든. 그런데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지. 곡물을 먹이고 키우는 비육우라서 지방이 많고 부드러워. 오래 숙성을 시키면 오히려 맛이 없어져. 숙성을 시킨다는 건 단백질을 숙성시킨다는 의미잖아. 지방에는 숙성의 의미가 별로 없지.

김: 그럼 예전에는 어느 정도 숙성을 시켰죠?

X: 고기의 출신 성분이나 상태에 따라 달랐지. 일주일 정도 숙성시켜야 맛있다는 얘기도 많았는데 서양에선 보통 20일 정도는 숙성을 시켰어. 어떤 고기는 영상 4도에서 15일, 8도에서 일주일, 살짝 어는 정도에서 30일, 그런 식으로 각각 다른 거지. 진공포장육이냐 아니냐에 따라 또 다르고.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고기는 유럽산?

광진구 자양동의 ‘스타키친’
X: 우리나라에서 개고기 문화가 망가진 건 대량생산을 하고 난 후부터야. 개에게 이름이 없어지는 순간, 소에게 이름이 없어지는 순간 비윤리적으로 키워질 확률이 더 높아지는 거지. 누렁이, 점박이, 돌순이, 이런 식으로 가축들에게 이름을 붙여 키우면서 어떻게 나쁜 짓을 하겠어. 그런데 대량생산이 시작되면서 이름이 없어졌잖아. 기업이 가축을 키우게 되면 그 속에 있는 사람은 사람이 아닌 거야. 그저 생산 라인의 감독인 거지. 개인이 기르면 소에게 동물성 사료 같은 걸 줄 수도 없어. 원래 소는 동물성 단백질을 먹는 가축이 아닌데 빨리 키우기 위해서 그걸 먹이는 거지.

김: 그래도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소규모로 소를 키우는 농가가 꽤 있으니 다행이네요.

X: 그런 셈이지. 내가 보기에 세계에서 제일 건강한 고기는 유럽산 고기야. 유럽 사람이 더 도덕적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견제가 심해. 공동체를 만들다보니 무관세로 무역을 하게 되고 더 엄격할 수밖에 없어. 성장 호르몬은 금지하고 항생제도 수의사의 처방전이 반드시 있어야 해. 그래서 상대적으로 고기의 품질이 균일하지 않은 반면 더 건강할 수밖에 없지.

김: 유럽 쪽에서도 소고기를 많이 먹나요?

X: 아니지. 그쪽의 주식은 돼지고기와 닭, 거위, 오리, 칠면조 같은 가금류나 생선 같은 거지. 스테이크의 문화는 미국의 문화에 가깝지. 스테이크란 건 고기 자체를 즐기는 건데 그렇게 조달하기에는 고기의 양이 모자라. 유럽의 낙농국에서도 고기보다는 우유 생산에 더 치중했고. 한 사람이 스테이크를 양껏 먹으려면 최소한 400그램은 되어야 하는데 모자라. 그래서 소고기를 먹더라도 푹 쪄서 먹는 방식이 많아.

김: 우리나라와 비슷했네요. 우리도 뼈째 넣어서 푹 삶아서 함께 나눠 먹었잖아요.

X: 설렁탕 한 그릇에 고기가 한 서너 쪽밖에 안 들어가지? 서양에서도 전통적으로 많은 양의 고기를 먹을 수 없었어. 그래서 비스테카 피오렌티나(두꺼운 소고기 스테이크) 같은 게 필요했던 모양이야. 한번 끝장날 정도로 먹어보는 거지. 한 사람에게 거의 1킬로그램을 주잖아. 등심과 안심을 구별해서 자르지도 않아. 그리고 그렇게 먹는 고기는 대체로 역축이었지.

김: 역축이었다면 엄청 질겼겠네요.

X: 그래서 숙성이 필요한 거였지. 비스테카 피오렌티나 같은 경우는 한 30일 정도 숙성을 했어. 문헌에는 그런 구절도 있어. ‘구더기가 나오는 고기를 미디엄 레어로 먹었다’. 치즈처럼 먹은 거지.

김: 사실 숙성한 것과 상한 것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 아니겠어요? 발효와 부패의 차이가 참 모호하지. 김치처럼.

식품의 유통기한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X: 맞아. 개념이 모호하지. 유통기한이 생긴 것도 신기한 일이야. 내 생각엔 식품이 산업의 수단이 되고, 식품을 팔아 떼돈을 버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그 사람들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 바로 유통기한이 아니었을까 싶어.

김: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나저나 이 집 음식 맛에 대해서는 거의 얘기를 안 했네요. 고기 맛 좋은데요?(웃음)

X: 그래, 고기 맛 좋다. 분위기도 좋고, 가격도 괜찮고. 그릴 스테이크 접시 하나에다 밥이랑 김치를 함께 담은 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말야.

김: 젊은 사람들이 자주 찾을 만한 곳이네요. 저녁엔 재즈 공연도 한다니까 분위기가 더 좋을 것 같고요. 맛과 가격과 고기의 질을 생각한다면 호감이 가는 집이에요. 가끔 집에서 고기 먹죠? 오늘 이야기하다 보니 축산업 하시는 분들께 죄송하네요.(웃음)

X: 나는 역설적으로 좋은 고기 아닌 게 좋아. 고급 고기로 만들려고, 정성을 쏟지 않은 고기가 좋아.

김: 막 자란 애들을 좋아하신단 얘기군요?(웃음)

X: 그렇지. 볏짚 먹고 풀떼기 먹고 방목으로 자란 애들. 기왕이면 그런 고기를 먹는 게 지구를 위하는 길이 아닌가 싶어(웃음)

김: 역시 마지막도 까칠한 X다운 멘트네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인사하시죠.

X: 음식은 영혼으로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먹는 음식이 그러기는 쉽지 않죠. 역시 한 그릇의 소박한 가정 음식이 진짜 음식이 아닐까요.

정리 김중혁 객원기자 vonnegut@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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