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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11 16:17 수정 : 2007.07.14 12:16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매거진 Esc] 요리사 X와 김중혁의 음식 잡담
뙤약볕 따가운 날의 냉면과 국수 한 그릇,
면발은 왜 갈수록 가늘어지는 걸까?

■ 을지로3가 을지면옥과 동경우동집

김: 오늘 날이 정말 끝내주게 더운데요? 완전 뙤약볕이네!

X: 냉면 먹는 건가?

김: 냉면 먹기 딱 좋은 날 아녜요? 줄 선 사람이 많겠지만 을지면옥에 가보죠.

X: 난 어젯밤에 배가 고파서 비빔면을 먹었더니 속이 이상하네.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도 비벼야 하는데, 오른손으로만 비볐더니 바로 설사가 나네.(웃음)

냉면집 ‘포마드 홀매니저’의 추억


김: 면 먹고 탈났으니 면으로 해장하세요. 을지면옥 입구의 좁은 골목을 들어설 때마다 마음이 짠해요. (들머리에 북녘 지도가 걸려 있다) 저도 마음이 짠한데 어르신들은 얼마나 가 보고 싶을까.

X: 냉면 하나, 온면 하나, 수육 하나. 온면은 메뉴판에서 지워 놨네. 하긴 이 바쁜 여름철에 온면 시키면 짜증나겠지. 메뉴를 보면 육수를 어떻게 뽑는지 알 수 있어. 돼지고기와 쇠고기로 육수를 뽑는 모양이네. 식당 쪽에서 보면 수육이나 편육은 그냥 남는 거야. 이걸로 국물 다 뽑았으니까 …. 그런 말이 있지. 수육은 더 줘도 육수는 더 못 준다고 ….

김: 이 집은 면수(면을 삶은 물)가 맛있어요. 간장 조금 넣어서 먹으면 뜨끈심심하고 달콤한 게, 국물 맛이 끝내줘요.(웃음)

X: 냉면 먹으러 오면 나는 면수를 한 석 잔 마시는 거 같아. 어떤 사람은 면수에다 소금을 타서 먹기도 하더라. 순수한 맛을 느낀다면서 ….


을지면옥의 냉면 육수는 슴슴하고 구수하다. 그래서인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손님의 대다수다.
김: 어른신들이 좋아할 맛 같아요. 전에 을지면옥 2층(1층은 금연석, 2층은 흡연석이다)에서 냉면을 먹는데, 기분이 이상했어요. 그때가 오후 세 시께였는데, 냉면을 먹다가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는데 온통 할아버지들뿐인 거예요. 평균 나이가 한 예순쯤 되었을라나. 아무튼 기이한 풍경이었어요.

X: 난 냉면집에 올 때마다 어린 시절 기억이 나. 아버지가 시내에서 일하셨기에 가끔 아버지 따라 냉면집에 들어갔는데, 가장 생각나는 건 홀매니저야. 가게엘 딱 들어가면 포마드를 잔뜩 바르고 머리를 ‘이 대 팔’로 넘기고, 와이셔츠를 입은 나이지긋한 홀매니저가 있어. 보통 사장이거나 사장의 조카거나 아무튼 친인척이지. 하얀 와이셔츠 입고 손가락에는 커다란 금반지를 끼고, 그리고 아저씨들 특유의 냄새 있지? 강력한 스킨 냄새, 그런 향이 풀풀 풍겨. 그릇을 나를 때는 꼭 손가락을 은근슬쩍 국물에 담궈. 그리고 ‘뽀이’들은 상고머리를 하고 주방복 같은 반팔 옷에 뻘쭘한 ‘기지’바지를 입고 시중을 들지. 요즘은 그런 풍경도 다 사라졌지. 요즘 어떤 어린 친구들이 그런 데서 일하겠어?

김: ‘하동관’에는 여전히 그런 분위기가 조금 남아 있는 것 같던데요?

X: 서울의 세련된 맛집 풍경이었던 셈이지.

김: 맞아요. 저는 지방에서 자랐으니 그런 풍경을 보질 못했죠. 냉면 나왔네요. 드세요.

면의 굵기와 식성의 관계

X: 여름이라 그런지 면이 별로다.

김: 그러게요. 면 상태가 좀 왔다갔다 하는데요?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면이 질퍽해졌어요. 육수에 얼음도 띄우고 …. 원래 얼음이 있었나? 냉면에 얼음 들어가는 거 별로던데 ….

X: 면은 확실히 평양면옥이 좋아. 그래도 이 집은 육수가 정갈해서 좋았는데 ….

김: 필동면옥하고 스타일이 비슷한 것 같아요.

X: 일본에 갔더니 메밀을 뽑아내는 모든 과정을 손으로 직접 하는 집이 있는데, 냉장고 온도를 메밀 수확철 날씨로 계속 맞춰 놓더라. 메밀을 신선하게 보관하려는 거지. 그때그때 찧어서 쓰면 면이 제일 맛있지. 그 집 사장이 그러더라. 메밀이 70% 들어가는 게 제일 맛있다고 …. 그 집은 메밀을 찧어서 속살만 쓴대. 겉은 메밀떡 만드는 집에다 팔고. 그 색깔이 참 오묘해. 하얀색이긴 한데 노란빛이 돌면서 ….

김: 예전엔 동치밋국에다 말아 먹었겠죠?

X: 그랬겠지. 고기가 어디 있었겠어. 꿩을 많이 잡았으니까 가끔 꿩육수로 해 먹긴 했겠지만.


을지면옥의 냉면 육수는 슴슴하고 구수하다. 그래서인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손님의 대다수다.
김: 북한 냉면 먹어 봤어요?

X: 1992년인가, 중국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에 있던 식당이 북한하고 중국이 합작을 해서 만든 곳이었어. 차림표에 ‘밥상’이라는 게 있는데 그게 백반이었지. 밥상하고 냉면을 먹었는데 냉면이 아주 투박했어. 면이 굵어. 육수는 비슷했어. 돼지고기 닭고기로 육수를 뽑았고 …. 면이 언제부터 이렇게 얇아졌나 모르겠어. 면이 얇아지는 건 혀가 간사해진다는 뜻이야.

김: 하긴 어릴 때 먹었던 자장면이나 우동이나 국수는 지금보다 면이 무척 굵었던 것 같네요. 국숫집에서도 굵은 면, 얇은 면 두 종류로 팔았죠.

X: 면의 굵기와 사람들의 식성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어. 면을 씹을 때 혀에 닿는 표면적과 상관이 있는 거지. 면이 굵으면 양념을 적게 먹을 수밖에 없고, 가벼운 맛보다는 묵직한 맛을 느끼게 돼. 시간이 지날수록 면이 가늘어지는 건 면의 맛보다는 양념 맛으로 먹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야. 파스타에서도 면과 소스의 궁합이 중요해. 면이 가는 스파게티 종류는 올리브기름이 잘 맞아. 굵은 면에는 토마토소스나 크림소스가 어울리지. 올리브기름 소스는 기름이니까, 다른 종류에 비해 훨씬 늦게 식어. 가는 면은 그 안에 가지고 있는 열도 적어서 잘 맞는 거야. 면발이 굵으면 열을 천천히 뺏기는 거고 ….

김: 열을 뺏기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

X: 한마디로 불어터지는 거지.(웃음)

메밀 국물을 앞두고 사랑을 나눠 볼까

김: 을지면옥은 조금 실망이에요. 면이 별로였고, 얼음을 띄워서 육수의 맛도 덜 느껴지고 ….

X: 오다 보니까 ‘동경우동집’이라는 식당이 있던데, 직장인들이 길게 줄을 서 있더라. 거기 가서 메밀국수 먹어 보자.

김: 이 집 싸네요. 3700원에다 양도 많고. 직장인들이 좋아할 만하네요.

X: 이 정도면 훌륭하다. 메밀 찍어 먹는 국물도 터프하고.

김: 일본에 갔더니 메밀을 대나무발 위에다 얹어 주던데, 그것 때문에 훨씬 맛있어 보였어요. 그리고 생와사비하고 강판을 줘요. 와사비를 직접 갈아서 국물에다 넣어 먹는데, 맛이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X: 열탕 소독만 잘한다면 대나무발 위에다 얹어 주는 게 좋지. 두 배쯤은 맛있을 거다.

김: 오늘은 메밀의 날이네요. 빼빼로데이 같은 거 말고 ‘메밀의 날’을 정했으면 좋겠어요. 얼마나 맛있어요? 메밀국수 한 접시를 앞에다 두고 함께 국물에다 담가 먹으면서 사랑을 나누는 거죠!

X: 꿈이 크다!

정리 김중혁 기자 p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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