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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17 14:58 수정 : 2007.05.18 11:03

밥맛이야! 이 모락모락 고슬고슬한 밥맛! / 일러스트레이션 부창조

[매거진 Esc] 요리사 X와 김중혁의 음식잡담

맛 없는 건 용서해도 마음 빠진 음식은 용서 못해

뭐든지 껍질이 최고…전기밥솥 탓 식문화 망가져

요리사 X를 처음 만난 것은 3년 전, 그가 운영하던 식당에서였다. 작은 레스토랑이었다. 사나운 동물처럼 번뜩이던 그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요리사의 눈빛이란 저런 것인가 싶었다.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시니컬했고, 입만 열면 독설이었고, 삐뚤어진 사람이었다. 음식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머리 속에 가득한 음식지식을 바탕으로, 모든 요리를 잘근잘근 씹어먹었다. 조금 무서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생각은 조금씩 바뀌었다. 친해질수록 그는 달라 보였다. 그의 마음 밑바닥에는 요리에 대한 사랑이 깔려 있었다. 그는, 사랑이 없는 요리를 싫어했다. 마음이 빠져버린 음식을 용서하지 못했다. 나는 가끔 그와 만나 음식을 먹는다.

서울 인사동 부산식당
생태와 냉이, 고추장과 파스타는 과연 어울린단 말이더냐

김: 부산식당, 제가 좋아하는 곳이에요. 두루치기나 생태탕을 먹으러 들러요. 예전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인사동에 와도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어요.

X: 예전에 그런 노래도 있었지. 장승 하나 뻗쳐 놓고 앗따 번쩍 유리 속의 골동품.


생선이든 고기든 껍질이 맛있지

김: 정태춘이죠. 그런데 이 콩나물은 참 두껍기도 하네. 중국산인가?

X: 콩나물은 중국산 없어. 콩은 중국산이 있어도…. 물류비가 안 나오거든. 왜 중국산 뻥튀기가 없는 줄 알아? 압축해서 가져올 수가 없잖아. 요즘은 뭐든지 빨리빨리 키우니까 가져올 필요도 없지.

김: 어릴 때 먹던 콩나물 맛하고는 다른 것 같아요. 가느다랗고 야들야들한 콩나물 맛이 참 좋았던 기억이 나는데. 국 안에서 흐느적거리는 콩나물들을 보고 있으면 올챙이 같기도 하고, 무슨 동물 같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건 너무 굵다.

X: 생태 껍질 좀 먹어봐. 생선이든 고기든 껍질이 맛있어. 와인도 비슷해. 와인의 맛은 포도 껍질에서 나오는 거잖아. 포도 알갱이는 와인의 양을 많게 해주는 역할만 할 뿐이고, 실제 맛은 껍질에서 다 낸단 말야. 타우린이 껍질에 많대. 타우린이 몸에 좋다는 얘길 많이 하지? 그게 맛에도 관련이 있어. 광학적으로, 미네랄적으로 말이지. 타우린 성분이 많을수록 맛이 좋은 거야.

김: 사실, 부산식당에서 가끔 생태찌개를 먹지만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국물이 너무 걸죽해요. 전 지리로 하는 스타일이 좋은데.

X: 생태찌개에 냉이가 들어 있는데, 이건 생태하고 어울리질 않아. 조개류에는 어울릴지 몰라도…. 냉이 때문에 생태 맛이 가려지잖아. 심하게 말하면 냉이된장국에다 생태를 푼 거야. 이 집 나름의 스타일이긴 하겠지만.

제발 양철냄비 좀 쓰지 말자

김: 저는 일산의 고성생태집을 좋아해요. 고니도 넉넉하게 넣어주고, 국물도 단순하게 맛있고.

X: 서울에 생태찌개 잘한다고 소문난 집이 몇 군데 있지. 속초생태도 있고, 삼각지에 있는 한강집도 있고. 그런데 난 제발 그 양철냄비 좀 쓰지 말았으면 좋겠어. 그거 법으로 금지해야 돼. 금속이 너무 얇아서 끓이면 금속 성분이 다 우러나. 우리가 뭐 철분보충차원에서 먹는 것도 아니고 말야.

김: 여기 두부가 참 맛있어요. 고소하고.

X: 두부도 문제가 참 많아. 편의점에 냉장두부가 등장하면서 두부를 파는 사람이 거의 없어졌잖아. 공장두부가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냉장유통을 거치는데, 그 맛이라는 게 남아 있을 수가 있겠냐고.

김: 하루키 에세이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오잖아요. 매일 아침 따끈한 두부를 사러 나갔는데, 점점 두부가게가 없어진다고. 정말 맛있는 두부는 아무런 양념을 하지 않아도 맛있잖아요. 노란색 국물이 바닥에 스윽, 깔리는, 그런 두부요.

X: 이 집은 밥맛이 일품이네.

김: 손님이 주문할 때마다 밥을 새로 지어주는 거예요. 저는 ‘고슬고슬하다’라는 말이 그렇게 좋아요. 그 단어만 들으면 어디선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느낌이 들잖아요.

X: 그래. 이런 게 밥인데 말야. 요즘은 이런 밥을 식당에서 먹을 수가 없잖아. 전기밥솥 생기면서 우리나라 식문화가 다 망가졌어. 냄비에다 바로 밥을 하면 얼마나 맛있어. 누룽지도 먹을 수 있고.

김: 한국에 식당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예요. 일본에 갔다가 들은 얘긴데, 망하는 식당이 한국의 30퍼센트 정도밖에 안된다고 하더라구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어지간히 잘하지 않고서는 식당 열기가 쉽지 않다고 하더라구요.

X: 일본 얘기하니깐 고로케 먹고 싶다.

김: 맛있죠. 고로케. 일본에 갔을 때 100년 됐다는 고로케 집에 들렀는데 정말 기가 막히게 맛이 좋았어요. 튀긴 후 시간이 좀 지났는데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고.

스테이크는 소금 툭툭 쳐먹는 게 제맛?

X: 고로케가 맛이 없으면 이상한 거야. 양파, 감자 등등 그 맛좋은 걸 다 넣었는데 맛이 없을 수가 있나. 하긴, 그걸 또 맛없게 하는 데가 있어요. 튀기는 게 쉬운 요리는 아니지.

김: 기본에 충실하는 게 제일 힘들죠. 전 퓨전음식은 별로더라고요. 새로운 실험정신이야 환영할 만하지만 기본이 없는 데다 퓨전을 하면 뭘하냐구요. 고추장 파스타 같은 것도 어쩐지 이름만 들어도 이상하고.

X: 고추장은 비빔국수에 든 게 제일 맛있지.

김: 그냥 오리지널에 충실한 파스타가 제일 맛있는데, 왜 거기다 고추장을 넣는지 모르겠어요.

X: 먹는 것처럼 보수적인 게 또 없어.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다 틀린 거라고 생각해. 양식처럼 편견이 심한 음식은 더 그렇지. 스테이크에 소스 없으면, 무슨 스테이크에 소스가 없어, 그러는데, 그러면 환장하는 거야. 스테이크는 그냥 소금 툭툭 쳐서 먹는 게 제일 맛있는데….

김: 다 먹었는데 결론을 내려보세요. 맛이 어땠어요?

X: 밥맛은 정말 좋네. 입안에다 한숟가락 떠넣었을 때 입속에서 느껴지는 밥맛의 기분 있잖아. 호호, 후후, 입김을 불면서 뜨겁고 부드러운 밥알갱이를 삼키는 기분. 밥맛이 좋으니까 별 한 개 추가.

김: 원래는 몇 개였는데요.

X: 별 세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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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을 밝힐 수 없는 요리사 X는 현재 강남의 한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다. 이탈리아, 프랑스, 중국, 일본, 한국의 음식에 일가견이 있으며 와인에도 조예가 깊다. 또, 그는 식당에서 내놓는 음식을 척 보기만 해도 원가를 계산해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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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김중혁 기자 p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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