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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지영씨는 아이를 낳은 뒤 직장을 그만둔 경력단절여성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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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슈
<82년생 김지영> 기자 방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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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지영씨는 아이를 낳은 뒤 직장을 그만둔 경력단절여성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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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첫날인 지난 23일, <82년생 김지영>은 박스오피스 1위(13만8968명)를 차지했다. 이틀간 누적 관객수는 29만1155명이고, 영화진흥위원회 예매율 집계(25일 오전)에서도 압도적 1위(45.4%)다. 원작 소설 판매량도 다시 늘어 120만부를 돌파했다. 개봉 전부터 벌어진 ‘별점 테러’가 계속돼 25일 오전 9시 네이버 영화사이트 네티즌 평점(1만8581명 참여)에서 남성은 1.87점, 여성은 9.48점을 나타냈다. 실제 관람객 평점은 9.53점이다. 영화 개봉을 계기로 ‘김지영의 삶’이 던지는 메시지를 짚어보았다.
‘82년생 김지영’이 우리 사회에 ‘등장’한 지 꼭 3년이 됐다. 집에서 “나만 전쟁”을 하느라 보이지 않았던 김지영은 2016년 10월14일 조남주 작가의 소설 주인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1982년에 태어나 가정과 학교, 직장에서 성차별을 겪으며 살았고, 아이를 낳은 뒤 육아를 홀로 맡게 된 경력단절여성 김지영의 이야기는 2년 만에 100만 베스트셀러가 됐고, 페미니즘의 대중화와 젠더 감수성의 기폭제 구실을 했다는 평을 받으며 영화 제작으로 이어졌다. 한편에서는 이 책을 언급한 여성 연예인들이 악플에 시달렸고,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별점 테러’가 시작됐으며, 영화 제작을 막아달라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지난 23일 개봉한 영화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은 그러나 여성과 남성을 대립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과 풍경으로 가득 차 있다. 책과 달리 결말도 희망을 향한다. 김도영 감독은 개봉일 언론 인터뷰에서 “모든 인물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주변을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토요판팀 기자들이 23일 영화를 본 뒤 ‘우리의 이야기’를 나눠봤다.(※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지은(
이·45·여성·기혼·초등생 자녀) 책을 읽었을 때도 완전 내 이야기 같았고, 별로 새로울 게 없는데도 눈물이 줄줄 났다.
신윤동욱(
신·47·남성·비혼)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의 몰입은 아니었다. 여성 차별을 몇개의 이야기로 압축한 느낌이었다. 오히려 영화관 어둠 속에서 주변 관객이 흐느끼는 소리가 기습적으로 느껴졌다. ‘아주 평범한 슬픔’이라고 메모했다.
김정필(
필·42·남성·기혼·유아기 자녀) 살짝 울먹했다. 지영(정유미)씨가 빙의해 어머니한테 말할 때와 남편(공유)이 어쩔 줄 몰라서 울 때. 주변에 전부 여성들이었는데, 우는 소리가 가득했다.
김미향(
향·34·여성·비혼) 살짝 눈물이 고였다. 초반부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고.
필 첫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지영씨가 베란다에서 하늘을 멍하니 보다가 거실에서 딸이 “엄마~”라고 부르자 고개 돌리며 살짝 웃는 모습. 아이가 엄마를 부르면 엄마로 살아야 하는 지영씨에게서 아내의 모습이 떠올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 지영씨가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똥기저귀를 간 뒤 아기띠에 아이 안은 채 소변보러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몰카 있을까봐 두리번거리는 장면이 너무 서글펐다. 엄마와 여성이라는 두 정체성이 동시에 나타나는데 너무 현실적이어서.
신 버스에서 남학생이 따라오자 중년 여성이 내려서 구해주는 장면, 아버지가 ‘못 피하면 못 피하는 사람 탓’이라고 하는 등 여성에게 이중의 굴레를 씌우는 대사들이 기억에 남는다.
향 지영씨의 시가, 남편, 친정의 풍경이 너무 자연스러웠고 억지스러운 설정이 없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좌절감을 느꼈다. 남편은 아내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시가도 ‘평범한 시월드’이고, 친정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흔한 풍경이었기 때문에 지영씨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이 되는 게 더 안타까웠다.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비정상적이고 스트레스적인 일상에서 살아가는지 와닿았다.
경력단절여성들이 마주한 사회적 고립
필 출산 뒤 여성들이 갖게 되는 사회적 관계의 고립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얼마 전 아이가 “엄마 꿈은 뭐야?”라고 물었단다. 아내가 이 말을 전한 뒤 더는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나는 아이한테 내 꿈을 ‘좋은 아빠’라고 했다.
이 아이한테 내 꿈이 ‘좋은 엄마’라고 하기 어려울 것 같다. 어린이집 엄마들이 얘기 나누는 장면에서 서울대 공대 나온 엄마는 수학문제집 푸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고, 한 엄마는 딸한테 책 재미있게 읽어주려고 연기 전공을 했다고 너스레를 떤다. 다들 꿈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좋은 엄마’로 살아야만 하고, 그렇게 살라 하고….
필 남편은 요즘 내 또래 아빠들과 비슷한 모델로 보였다. 그런데 지영씨를 많이 챙기는 듯하지만, 지영씨의 내밀한 아픔까지 온전히 챙기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게 한계라는 생각도 든다.
빵집 알바를 하겠다고 할 때 무작정 하지 말라고 하고.
이 남편 캐릭터가 너무 긍정적으로 그려진 것 같은데.
필 남편이 나쁜 캐릭터면 모든 원인이 그걸로 덮어질까봐 그러지 않았을까.
이 그런 거 같다. 지영씨도 남편에게 ‘다들 한치 건너에서 얘기한다’고 속상해하긴 하지만, 그래도 저만하면 훌륭한 남편 아닌가.(웃음) 빵집 알바 반대할 때도 ‘하고 싶은 일이야?’라고 묻고.
필 그게, 어떤 의미에서는 빵집 알바라도 하고 싶다고 하더라. 혼자 있다 보니 말할 사람이 그립다는 거다. 가스계량 하러 온 검침원마저 반갑더라고….
신 아버지 정도를 빼면 어머니부터 직장 선배는 물론 남편까지, 주요 캐릭터에는 반여성주의 성격이 많이 없다. 그래야 사회적 차별이 도드라져 보이니까. 그러다 보니 지영씨는 왜 저럴까, 공감을 약하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일에 대한 불멸의 의지 같은 것.
이 나는 너무 공감이 되던데. 나도 육아휴직 막판에 회사 가고 싶어서….
필 아이랑 하루 종일 있는 건 당사자 아니면 모른다. 퇴근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아내한테 친구들 만나거나 놀다 오라고 하면, 막상 할 게 없다고 한다.
이 그런 일은 잠깐의 휴식은 될 수 있지만, 지영씨가 말한 ‘출구’는 아니다. 정말 일을 하고 싶으면 일을 해야 하는 거지 다른 걸로 풀 수는 없다. 그런데 애 키우며 일할 데가 없고, 운 좋게 취직했더니 베이비시터 구하기 힘들고, 시어머니는 펄펄 뛰고, 그러다 결국 지영씨는 자책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안 꺾이는 게 대단한 것이지 대개는 꺾이기 쉽다.
향 지영씨의 직장 분위기는 우리나라 회사들이 얼마나 문제적인 일터인지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더 버텼으면 어땠을까 아쉬웠다. 환경의 열악함에 대해 일상에서 싸우고 버텨내는 힘도 기대했었다.
신 화장실 불법촬영 같은 사건도 나오지만, 크게는 ‘직장은 보람의 세계’라고 전제된 면이 개연성을 떨어뜨리고, 지영씨의 고통을 좀 평면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 지영씨는 보람을 막 느끼기 시작한 단계에 그만두게 되어 더 고통스러웠던 게 아닐까. 주변 엄마들과 얘기해보면 경력단절의 위기가 세번 찾아온다고 한다.
필 결혼, 출산, 또?
이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직후, 아이 초등 1학년 때, 고3 때.
여성의 경력단절에 대한 통계청 자료(e-나라지표, 2018년 4월 기준)를 보면, 기혼여성(15~54살) 900만5천명 가운데 비취업여성은 38.4%인 345만7천명이다. 이들 중 결혼과 임신·출산, 육아, 초등자녀 교육, 가족돌봄을 이유로 직장을 그만둔 경력단절여성(184만7천명)이 절반이 넘는다(53.4%). 특히 경력단절여성의 비중은 30대가 73.4%로 가장 많고, 15~29살 61.2%, 40대 48.1%, 50~54살 24.8%다. 경력단절 사유는 결혼이 34.4%로 가장 많지만, 육아(33.5%)와 임신·출산(24.1%)을 합치면 60%에 가깝다.
신 지영씨 어머니야말로 경력단절여성이었다. 공부를 잘했는데 남자 형제들을 위해 일했고, 경력단절에 맞선 여성이다. 자영업자로 자리잡았으니까. 어머니를 경력단절의 맥락에 넣어본 적이 없었는데, 직장을 가기 위한 준비(공부)도 경력의 맥락에 넣으니 그렇게 보였다. 어머니의 여성사를 지영씨가 이어가는 이야기로 보이기도 한다.
이 그래서 외할머니로 빙의해 어머니한테 말하는 지영씨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더는 희생하지 말라고, 지영이가 잘 이겨낼 거라고, 네가 강하게 키우지 않았느냐고. 어머니와 언니, 직장 동료와 팀장, 버스에서 도와준 여성 모두 위로와 응원이 되는 캐릭터다.
신 지영씨가 가장 부드러운 캐릭터인 것 같다. ‘이갈리아의 딸들’ 중 가장 부드러운 여성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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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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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과 위로가 필요한 이유
이 지영씨 직장 상사인 여성 팀장이 인상 깊었다. ‘친정 엄마 찬스’를 써야만 했지만 여하튼 능력을 발휘하고, 직장맘 비하하는 남성 상사한테 대놓고 지혜롭게 저항한다. 무엇보다 후배 여성들한테 멘토 역할을 한다.
향 그 캐릭터가 가장 좋았다. 상사의 헛소리에 불편함을 내색하면서도 일에서 인정받는 모습,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는 모습이 멋있었다.
필 그런데 남성 상사와 긴장 관계를 형성하다가 마지막에 웃긴 제스처를 하며 “회의하시죠”라고 할 때는 안타까웠다.
이 그게 살아남는 법이다. 촌철살인하면서 분위기 안 깨뜨리기. 난이도 엄청나다.
필 그래서 오히려 슬펐다.
이 난 오히려 통쾌했는데.
신 회의에서 저항하다가 타협하는 것 같아 ‘패배’라고 생각했는데 영화에서는 후배들이 ‘승리’로 평가하더라.
이 남동생 캐릭터는 어땠나?
신 언니 은영씨를 중심으로 남동생 안에 스며든 아버지의 가부장제를 바로잡는다. 교정이 빨리 이뤄졌다.(웃음) 이런 면은 역으로 현실감이 있다. 그 세대가 성장하면서도 남존여비, 남아선호가 철저히 지켜졌다면 그게 비현실적이지 않나?
필 나도 누나가 둘인데, 어머니가 남녀 구분 없다고 강조하셔서 설거지부터 청소, 요리 등을 다 했다. 그런데 원래 차별적 혜택을 받은 사람은 자기가 혜택을 받은지 모른다. 그 시절 가부장적 가족 질서에서 아들은 어느 정도 크고 작은 혜택을 받으며 자라지 않았을까. 지영씨를 보면 어릴 때부터 억눌려 살아온 느낌이다.
신 나는 위아래 ‘자매님들’ 사이에서 지영씨 남동생 같은 대접을 받으며 살았는데, 기본적으로는 부모의 물량공세에 영합하고 내면적으로는 죄책감을 가졌다. 오히려 은영씨가 잘못된 가족 내 처우를 바로잡아주는 게 남동생한테는 구원 같다. 남동생은 은영씨가 사회적·정치적 의미에서 키운 거다.
이 남동생이 지영씨한테 만년필 선물할 때 찡했다. 남동생은 적어도 자기가 혜택 받고 자랐다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
신 영화에 대한 별점 테러가 여전하다니, ‘82년생 김지영’이 하나의 상징이 된 것 같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페미니즘 싫어요’라니.
이 소설이 나온 2016년에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이 있었고, 이후 미투 운동, 불법촬영물 등 페미니즘과 관련한 사건이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김지영을 보편적 여성으로 인식하면서 상징이 된 것 같다.
필 시대적·공간적인 각자의 삶의 서사를 그대로 존중하면 될 터인데….
향 남성에게도 힘든 사회다. 책과 달리 영화에서는 불평등한 사회구조 속에서 남편도 함께 고통받는 모습이 현실감 있게 묘사되어 좋았다. 결국 같이 행복하지 못하면 남성도 괴롭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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