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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7 20:06 수정 : 2019.12.28 13:01

경북 경주시 월성 원전 1호기 앞 바닷가에 ‘지진해일 대피 안내판’이 서 있다. 경주/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경북 경주시 월성 원전 1호기 앞 바닷가에 ‘지진해일 대피 안내판’이 서 있다. 경주/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올해 나이 37살, 경주 원자력발전소 월성 1호기가 영구정지됩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지난 24일 ‘영구정지’ 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월성 1호기는 이미 폐쇄 절차를 밟고 있는 고리 1호기(42살)를 제외하면 국내에서 제일 고령의 원전입니다. 우리 기술이 부족했던 시절 캐나다가 한국에 지어준 첫 원전인데, 워낙에 예전 모델이라 최신 원전(용량 1400㎿, 설계수명 60년)에 견주면 작은 체급(용량 679㎿, 설계수명 30년)으로 태어났습니다. 자동차로 치면 내구연한과도 같은 설계수명은 2012년 끝났지요. 그러나 2015년 원안위의 ‘수명 10년 연장’ 결정으로 얼마간 더 일을 하다(정확히는 여러 차례의 고장과 논란 속에 재가동과 정지를 반복하다가) 이제 은퇴를 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겨레>에서 원전을 취재해온 최하얀입니다. 오늘은 독자 여러분께 서울행정법원이 2017년 1월 내린 ‘월성 1호기 수명연장 허가 취소’ 판결 이야기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이 판결에 최근 일부 원자력계와 보수언론이 계속 언급하는 ‘월성 1호기 보수비용 7천억원’과 관련한 뒷이야기가 잘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거액(정확한 설비 보수액은 5925억원)을 들여 새것처럼 보수를 한 월성 1호기를 폐쇄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일까요?

설계수명을 다한 원전을 더 쓰려면 법이 정한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우선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이 원전 규제행정을 담당하는 원안위에 수명연장 허가 신청을 하고요. 그 뒤엔 원안위가 한수원이 제출한 ‘주기적 안전성 평가 보고서’ 등 7종의 서류를 심사해 수명연장 여부를 결정합니다. 이때 해당 원전에 ‘국내외의 최신 운전 경험과 연구 결과 등을 반영한 기술’(원자력안전법 시행령 38조 2항 등)이 적용돼 있는지를 판단의 기준으로 합니다. 즉 신규 원전에 버금가게 안전하다는 것이 입증돼야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이 가능합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1986년) 전에 지어진 월성 1호기는 신청 당시 이런 기준에 못 미쳤습니다. 이에 한수원은 안전성 평가를 앞두고 “계속 운전을 허가받으려는 목적에서”(판결문 인용) 원자로 핵심설비인 380여개 압력관 등 여러 대대적인 설비 교체에 나섰습니다. 당시 어떤 설비를 어떻게, 무엇으로 교체하느냐 역시 수명연장 허가 심사 영역에 속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원안위는 이를 위원의 심의·의결이 아닌 과장급 직원의 전결로 처리해버렸습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심의·의결 전 설비 교체가 먼저 이루어지는 것은 위법할 뿐만 아니라 정책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안전성 평가를 전후하여 한수원이 피고(원안위) 직원들과 협의해 설비 교체를 먼저 진행한다면, 한수원에는 계속운전이 허가되리라는 기대를 심어주게 되고 피고 소속 직원들에게는 독립적이고 공정한 심사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돈을 썼다고 다가 아니고, 정해진 절차를 제대로 밟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당시 설비보수가 적절히 이뤄졌더라도 수명연장 결정은 여전히 불법성이 강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수명연장 여부를 결정할 때는 가장 최신의 기술기준이 적용됐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그러나 한수원은 당시 ‘R7’ 등 최신 기술기준을 월성 2~4호기(1997~1999년 준공)에만 적용하고 1호기(1983년 준공)에는 적용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R7’이란 캐나다 원전 규제기관이 월성 1호기 같은 캐나다형 가압중수로 원전을 안전하게 쓰려면 이래야 한다는 요건들을 정리해 1991년 제정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입니다. 서울행정법원은 이와 관련해서도 원안위가 “‘R7’ 등을 적용해 안전성 평가보고서를 심사했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애초 원안위가 법과 규정이 정한 대로 수명연장 여부를 결정했다면 지금까지 논란이 이어질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불법 논란 속에 월성 1호기는 재가동됐습니다. 수천억원을 들여 정비했는데도 설비 고장으로 2016년엔 2차례나 발전 정지했고요. 같은 해 경주 지진 때는 월성 1호기의 최대 지반가속도가 0.0981g로 나타났습니다. 가속도가 클수록 지진으로 땅이 더 많이 흔들렸다는 뜻인데요. 월성 2~4호기가 0.0832g였던 것에 견주면, 1호기는 지진에 훨씬 더 취약한 부지에 있다는 얘기입니다. 2017년엔 원자로 건물 부벽에 콘크리트 결함이 새로 발견됐고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차수막(저장조 손상 시 방사성 물질 외부 유출 차단 방벽)은 5년째 손상돼 있습니다. 이 노후 원전에 지금부터 또다시 상당한 시간과 돈을 들여 재가동하더라도 2년 뒤면 어차피 다시 수명이 끝납니다. 30여년 고생한 월성 1호기, 이제 놓아줘도 되지 않을까요?

최하얀 탐사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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