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④ 에필로그-범죄 막을 대책은
기자 이름이 특별취재팀이 된 이유
기자·가족 신상 유포·협박까지
성착취범 잡아도 고작 집유·벌금
피해자 시선으로 처벌해야
지난 25일 아침, 한 제보자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를 고발하는 기획보도 첫번째 기사가 나간 날입니다. 제보자는 밤사이 또 한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고 했습니다. 텔레그램 성착취 세계의 지배자 ‘박사’가 운영하는 방에 처음 보는 피해자 사진이 올라온 겁니다. 저절로 입술이 깨물어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참혹한 가해를 끊어낼 수 있을까요.
“검거를 해도 초범이면 집행유예, 고작해야 벌금형이 나오니 허무합니다.” 텔레그램 비밀방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은 특별취재팀과 만나 답답함을 호소했습니다. 현행 법체계에서 처벌 수위가 너무 낮아 범죄 억제 효과가 약하다는 하소연입니다. 가해자 중심의 판결 관행을 피해자의 시선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이 ‘악의 고리’는 끊을 수 없습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 기획보도를 맡은 ‘특별취재팀’입니다. 텔레그램 메신저에서 아동·청소년을 포함한 여성들을 성착취하는 영상과 사진 등이 유통되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취재에 들어간 지난 2주 동안, 특별취재팀은 끊임없이 비밀방을 폭파하고 도망가는 성착취 가해자들을 추적해 그들의 비밀방에 잠입했고, 자다가도 깨어나 텔레그램을 확인하는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아침이면 수십 개의 다른 비밀방들에 수천 개의 메시지가 쌓였지요. 수천, 수만 명에 이르는 남성들의 휴대전화와 하드디스크에 성착취물들이 ‘트로피’처럼 쌓여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속이 울렁거렸습니다. 그곳은 인간의 존엄과 여성의 정체성이 착취와 희롱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세계였습니다.
그런데 왜 기자 이름이 아니라 ‘특별취재팀’이라는 바이라인(신문 등에서 기자나 작가 등의 이름을 밝힌 줄)으로 기사를 작성하고, 이 글을 쓰고 있을까요. 특별취재팀의 추적과 보도가 시작된 직후, 박사의 방을 비롯한 비밀방에선 기자의 신상을 털자는 모의가 시작됐습니다. 아이티(IT) 지식을 바탕으로 한 신상털이를 무기 삼아 피해 여성을 협박해온 이들에겐 기자의 신상털이도 몹시 쉬워 보였습니다. 박사는 기자의 신상을 털어오는 이를 ‘10만원 후원’으로 인정해 특별한 방에 입장시켜주겠다고 공지했습니다. 자신이 ‘노예’로 만든 여성에게 명령할 수 있는 권한도 주겠다고 했습니다.
곧 기자의 개인정보가 털렸습니다. 심지어 기자의 가족 신상까지 내걸고 ‘이벤트 : 기레기 ○○○를 잡아라’를 진행했습니다. 기자와 가족의 신상은 곧 수십 개의 비밀방에 유포됐습니다. ‘길 다닐 때 항상 주위를 돌아보게 만들겠다’는 협박 글도 올라왔습니다. 박사나 ‘감시자’ 등이 했던 피해 여성을 옥죄는 수법과 동일합니다. 날마다 경찰서를 오가며 수많은 범죄를 마주하는 기자에게도 이럴진대, 범죄와 마주하는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피해자들에게는 얼마나 더 악랄할까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습니다.
형사들도 대범한 행각에 혀 내둘러
솜방망이 처벌 언제까지 불법촬영물 유포 초범땐 거의 집유
특별취재팀은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습니다. 갈무리한 신상털이와 협박 장면을 본 형사는 혀를 내둘렀습니다. 신변보호 절차와 방식을 설명해주면서 “경찰이 24시간 밀착 경호를 하는 건 아니니 항상 주의하고, 특히 사이버 범죄자의 특성상 택배 같은 것으로 테러를 할 수 있으니 유의하라”는 당부가 이어졌습니다. “돌발적인 공격에 대비해 항상 큰길로 다니라”는 요청도 있었습니다. 그런 시간에도 적게는 1천여 명에서 많게는 3만 명 가까운 관전자들이 들어와 있는 수십 개의 비밀방에서 끊임없이 참혹한 성착취물이 유포됐습니다.
지난 7월부터 비밀방들에 잠입해 가해자들의 행적을 기록하고 제보한 이들은 특별취재팀에 이런 일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애초 돈을 받고 ‘엔(n)번방’ 자료들을 팔던 가해자들은 제보자들이 잠입해왔다는 걸 눈치채고 잠시 돈거래를 멈췄다고 합니다. 대신 가해자들은 성착취물을 ‘관전’하려는 이들에게 엽기적인 미션을 내걸기 시작했습니다. ‘인턴방’으로 초대한 뒤 성착취물이 있는 비밀방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라면 5개 먹기 인증’, ‘신체 일부 인증’ 등과 같은 미션을 이행하라고 지시한 겁니다. 죄의식을 잃은 공모자들만의 공간에서, 범죄는 유희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특별취재팀의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 기획보도가 나간 이후부터 분위기는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제2의 엔번방을 만들자면서 성폭행 모의까지 감행한 한 비밀방 ‘마스터’는 보도 직후 자신의 방 기록을 모두 삭제했습니다. 천여 명 이상이 탈퇴한 사실도 확인됩니다. “절대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공공연히 과시한 박사도 자신이 운영하던 방 일부를 없앴습니다. ‘잠수’를 탄 마스터들도 많았습니다. 박사가 운영하던 방은 사실상 붕괴됐습니다. 특별취재팀은 삭제된 기록들의 갈무리본을 경찰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취재 시작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수사기관과 협의도 계속 이어갈 예정입니다.
문제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현행법 체계상 성범죄의 처벌 수위가 너무 낮아 범죄 억제 효과가 약하다는 하소연입니다. 최근 ‘다크웹’의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 누리집 ‘웰컴투비디오’ 운영자도 다른 나라에 견줘 현저히 약한 형량이 부과돼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샀지요.
국회 ‘미온적 처벌 조항’ 강화하고
정부, 전담기관 설립 등 적극 대처
되풀이되는 ‘범죄 고리’ 끊어야
국회, 정부, 수사기관, 모두 나서야 바뀝니다. 네 가지 갈래로 움직임을 강화해야 합니다. 먼저 국회가 나서서 입법을 강화해야 합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나 정보통신망법 위반,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처벌 조항이 미온적이라는 지적이 연이어 나왔습니다. 무엇보다 새롭게 등장한 텔레그램과 같은 메신저에서 성착취물을 유포하는 행위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최근 판결을 살펴보면, 불법 촬영 성착취 동영상을 범죄로 인지하지 못한 채 유포만 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경우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 혐의만 인정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약한 처벌이 나올 때가 많았습니다. 게다가 초범이면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나기 십상이지요. 그러는 사이 범죄자들은 법망을 빠져나가는 방법을 공유하며 성범죄를 ‘지능화’하고 있습니다.
정부도 나서야 합니다. 하루빨리 ‘디지털 성범죄 예방 전담 기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난해 4월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산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문을 열었지만, 이곳은 피해가 발생한 이후 피해자들의 법적·심리적 지원과 성착취물 삭제 조처 등 사후적 대처를 하는 곳입니다. 앞서서 예방 기능을 할 수 있는 기관이 추가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박사와 같은 이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능력을 지닌 화이트 해커 등을 양성해 성착취물이 유포되는 텔레그램 등 메신저와 다크웹 등을 먼저 찾아가고, 성착취물 유통을 앞장서 적발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수사기관도 국경을 넘나드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수사 공조를 강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서버가 국외에 있다’는 이유로 성착취 가해자들이 활개 치는 현상을 막을 수 있습니다. ‘다크웹 사건’의 국제 수사 공조는 모범 사례입니다. 피해자가 고소하고 가해자가 특정되어야 수사를 시작하는 관행도 바꿔야 합니다. 늘어나는 사이버 성범죄에 맞서려면 사이버 수사 인력을 큰 폭으로 보강해야 합니다.
박사를 비롯한 디지털 성착취 범죄자들은 아직 붙잡히지 않았습니다. 박사나 텔레그램의 관전자들은 ‘특별한 성도착자’가 아닙니다. 사법기관이 성범죄에 무관용의 철퇴를 내리지 않는 한, 국회와 정부가 이런 범죄들을 박멸하기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서지 않는 한, 불법 촬영을 끔찍한 범죄로 여기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자리잡지 않는 한 제2, 제3의 박사는 나올 것입니다. 특별취재팀이 며칠 동안 전한 참혹한 성착취 피해 실태가 그런 대안으로 결실을 보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서 피해 상담과 수사법률지원, 심리치료연계지원 등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전화 : 02) 817-7959 이메일 : hotline@cyber-l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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