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③ 왜 무법지대가 됐나
양진호 웹하드·정준영 단톡방 충격에
가해자들은 더 은밀한 곳 찾아
패륜 논란 일베 몰락 이후 텔레그램 대거 이동
검거된 25살 남성 “비밀방 마스터들 또래 혹은 고등학생” 대학생 김재수(가명·25)도 그런 남성들 가운데 하나다. 사실 김재수는 처음엔 엔번방 사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보자마자 불법이라는 생각이 들어 112에 문자메시지로 신고했다. 그런데 돌아온 경찰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하라’는 무심한 답만 돌아왔다. 이후 김재수는 엔번방을 계속 들락거리게 됐다. 어떤 때는 종일 몰두하기도 했다. 익명의 ‘닉네임’ 세계는 편리했다. 그곳에선 아무도 김재수가 김재수인 줄 몰랐다. 엔번방을 하나씩 돌아다니며 아동·청소년 가릴 것 없이 성착취물의 대상이 된 여성들의 모습을 찾아다녔다. “신고해도 경찰이 수사조차 않는데, 사람들도 다 저렇게 하는데, 나도 잠깐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그걸 하는지 현실에선 아무도 모를 테니까요.” ‘잠깐 해봐야겠다’던 김재수는, 한달 뒤 성착취물을 공유하는 텔레그램 방 ‘○○○○’을 개설했다. 관찰자에서 성착취 세계의 주도자로 변한 것이다. 텔레그램 비밀방 ‘마스터’가 된 김재수는 방 운영 규칙부터 정했다. ‘고어 금지, 로리 금지, 도배 금지’를 내걸고 ‘1주일에 #개 이상 성착취물을 올려라’라고 명령했다. 명령을 따르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강제 퇴장시켰다. 현실에선 한번도 누리지 못한 권력이었다. 말을 듣지 않는 이들을 ‘온라인 테러’하도록 종용하기도 했다. 권력을 얻다 보니 다른 방 ‘마스터’들과 교류도 하게 됐다. 신상을 묻는 것을 금기시했지만, 대화를 하다 보면 대체로 20대 초반 또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곳엔 고등학생도 있었다. 이들은 강아지 사진을 공유하는 것처럼 아동·청소년 성착취물과 디지털 성범죄 영상을 공유하며 서로의 하드디스크를 불렸다. 누군가의 신상을 털어 박제하면서 권력감을 키우기도 했다. 방의 규모가 커지자 어떤 이가 개인 메시지를 보내 ‘성착취 사이트 광고를 해주면 돈을 주겠다’는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김재수의 하드디스크에는 4만개가 넘는 성착취물이 쌓여 있었다. 그때쯤 ‘박사’가 등장해 유료방을 개설하는 걸 보게 됐다. “돈을 받고 자료를 팔자.” 김재수는 수십만원씩 받고 성착취물을 거래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지난 10월. 평소와 같은 날이었는데, 김재수는 성착취 세계의 ‘마스터’에서 한순간 현실의 김재수로 돌아왔다. 경찰이 김재수의 집으로 들이닥친 것이다. 가족은 아들이 자신의 방에서 파렴치한 성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렇게 가상세계에서 지배자 행세를 했던 7개월이 끝났다. 그는 경찰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자신이 했던 일이 얼마나 끔찍한 범죄였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그것이 <한겨레>와 만나 텔레그램 성착취 세계에 대해 털어놔야겠다 마음먹게 된 계기가 됐다. 경찰은 김재수의 진술과 증거를 토대로 텔레그램 비밀 채팅방 운영자 수사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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