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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7 05:00 수정 : 2019.11.27 08:17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③ 왜 무법지대가 됐나

양진호 웹하드·정준영 단톡방 충격에
가해자들은 더 은밀한 곳 찾아
패륜 논란 일베 몰락 이후 텔레그램 대거 이동

지난 2월이었다. 디시인사이드 야구 갤러리, 수능 갤러리, 일간베스트(일베) 등 남성들이 주로 모이는 커뮤니티가 이른바 ‘엔(n)번방’ 사건 소식으로 들끓었다. 텔레그램에 협박당한 여성들이 자신을 ‘노예’라고 부르며 스스로 성착취물을 만들어 인증하는, 여러 개의 번호가 붙은 방이 생긴 사건이었다. 이 피해 여성들의 전화번호와 학교 등 구체적인 신상 정보가 떠다녔다. 커뮤니티에는 주로 갈무리본이 올라왔고, 텔레그램 엔번방에 가면 전체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우리도 버닝썬처럼 한번 영상 찍어 돌려보자’는, 성폭력을 조장하는 게시글이 우후죽순 올라왔다.

텔레그램 이용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텔레그램이 국내 구글 마켓앱 상위권에 오른 것도 이 무렵이다. 이 현상에는 엔번방 사건 외에도 두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첫번째는 지난해 12월 발생한 ‘양진호 웹하드 사건’이다. 업계 매출 1위 웹하드 업체 ‘위디스크’의 실소유주 양진호가 직원들을 폭행하고 엽기적인 범죄 행각을 저지른 사실들이 공론화된 뒤, 웹하드 업체와 필터링 업체, 불법 자료를 지워주는 디지털 장의업체 등 웹하드 카르텔 전반에 대한 대대적 수사가 벌어졌다. 웹하드 업체들은 수사망을 피해 성착취 영상 업로드를 줄였다. 독버섯 같은 시장은 이 사건 수사에 따라 훅 가라앉았다.

두번째는 지난 3월 발생한 ‘정준영 단톡방 성착취물 공유 사건’이다. 유명 연예인들이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성폭행을 하고 피해 여성의 영상을 함께 본 사건은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확인된 불법촬영 및 유포 피해 여성만 10명이 넘었다. 대화방에선 옮겨 적기 어려울 정도의 성착취성 대화가 오갔다.

두 가지 사건으로, 사회는 성범죄 카르텔의 존재와 유명 연예인들의 성범죄 행각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남성들의 반응은 달랐다. 웹하드에서 성착취물을 소비하고 단톡방을 통해 성착취물을 공유하던 남성 가해자들이 더 은밀한 공간을 찾게 된 것이다. 그것이 국외에 서버가 있고, 신원을 감출 수 있는 텔레그램이었다. “카톡은 서버를 압수수색하면 삭제하더라도 정준영처럼 적발될 수 있으니 안전한 텔레그램으로 가자”는 얘기가 나왔다.

여기에 하나의 계기가 더 추가된다. 정권이 교체되고, 각종 패륜 논란 등으로 시들해진 일베에서 여성들을 대상화하고 성착취 대화를 일삼던 이용자들이 일베를 버리고 텔레그램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2016년 소라넷이 폐쇄된 뒤 지난해 말부터 웹하드를 수사한다고 하니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옮겨붙었죠. 처음에는 텀블러가 그런 역할이었는데, 텀블러도 폐쇄한다고 하니 메신저로 옮겨서 지금은 압도적으로 텔레그램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텔레그램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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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거된 25살 남성 “비밀방 마스터들 또래 혹은 고등학생”

대학생 김재수(가명·25)도 그런 남성들 가운데 하나다. 사실 김재수는 처음엔 엔번방 사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보자마자 불법이라는 생각이 들어 112에 문자메시지로 신고했다. 그런데 돌아온 경찰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하라’는 무심한 답만 돌아왔다. 이후 김재수는 엔번방을 계속 들락거리게 됐다. 어떤 때는 종일 몰두하기도 했다. 익명의 ‘닉네임’ 세계는 편리했다. 그곳에선 아무도 김재수가 김재수인 줄 몰랐다. 엔번방을 하나씩 돌아다니며 아동·청소년 가릴 것 없이 성착취물의 대상이 된 여성들의 모습을 찾아다녔다. “신고해도 경찰이 수사조차 않는데, 사람들도 다 저렇게 하는데, 나도 잠깐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그걸 하는지 현실에선 아무도 모를 테니까요.” ‘잠깐 해봐야겠다’던 김재수는, 한달 뒤 성착취물을 공유하는 텔레그램 방 ‘○○○○’을 개설했다. 관찰자에서 성착취 세계의 주도자로 변한 것이다.

텔레그램 비밀방 ‘마스터’가 된 김재수는 방 운영 규칙부터 정했다. ‘고어 금지, 로리 금지, 도배 금지’를 내걸고 ‘1주일에 #개 이상 성착취물을 올려라’라고 명령했다. 명령을 따르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강제 퇴장시켰다. 현실에선 한번도 누리지 못한 권력이었다. 말을 듣지 않는 이들을 ‘온라인 테러’하도록 종용하기도 했다.

권력을 얻다 보니 다른 방 ‘마스터’들과 교류도 하게 됐다. 신상을 묻는 것을 금기시했지만, 대화를 하다 보면 대체로 20대 초반 또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곳엔 고등학생도 있었다. 이들은 강아지 사진을 공유하는 것처럼 아동·청소년 성착취물과 디지털 성범죄 영상을 공유하며 서로의 하드디스크를 불렸다. 누군가의 신상을 털어 박제하면서 권력감을 키우기도 했다. 방의 규모가 커지자 어떤 이가 개인 메시지를 보내 ‘성착취 사이트 광고를 해주면 돈을 주겠다’는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김재수의 하드디스크에는 4만개가 넘는 성착취물이 쌓여 있었다. 그때쯤 ‘박사’가 등장해 유료방을 개설하는 걸 보게 됐다. “돈을 받고 자료를 팔자.” 김재수는 수십만원씩 받고 성착취물을 거래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지난 10월. 평소와 같은 날이었는데, 김재수는 성착취 세계의 ‘마스터’에서 한순간 현실의 김재수로 돌아왔다. 경찰이 김재수의 집으로 들이닥친 것이다. 가족은 아들이 자신의 방에서 파렴치한 성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렇게 가상세계에서 지배자 행세를 했던 7개월이 끝났다. 그는 경찰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자신이 했던 일이 얼마나 끔찍한 범죄였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그것이 <한겨레>와 만나 텔레그램 성착취 세계에 대해 털어놔야겠다 마음먹게 된 계기가 됐다.

경찰은 김재수의 진술과 증거를 토대로 텔레그램 비밀 채팅방 운영자 수사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서 피해 상담과 수사법률지원, 심리치료연계지원 등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전화 : 02) 817-7959 이메일 : hotline@cyber-lion.com

특별취재팀 hankyoreh1113@proton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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