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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14 13:43 수정 : 2019.12.2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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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기획연재
유기구역: 버려진 개와 사람의 땅 ② 유기의 기원

서울 10개구서 9년간 562마리 포획
그간 10개구 재개발·재건축 238건
이주·철거 이후 단계 사업은 104건
이곳들과 인접 거리에 산이 있을 때
버려진 개들이 번식해 ‘야생화’ 추정

은평뉴타운 세입자·철거민 원정자
버려진 개들 데리고 밖에서 밖으로
재개발로 세 번째 이주 위기 직면
버려진 개와 가난한 사람 몰아내며
거침없이 증식하는 ‘도시의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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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개’는 개발이 들끓는 곳에서 태어났다. 들개와 도시개발의 상관관계를 살폈다. 2011년부터 2019년 7월까지 들개 포획 실적이 있는 서울시 자치단체에서 해당 시기 어떤 개발 이슈가 있었는지 찾아 대조·분석했다. ‘서울시 클린업시스템’에 등록된 2010년 이후의 재개발·재건축 사업들과 맞춰봤다. 들개 발생과 관계있을 것으로 보이는 개발구역의 위치를 한데 모아 찍어보니 ‘도시의 의지’가 읽혔다.

앞으로만 내달리는 도시가 안에 들이지 않는 존재들은 위(▶1회 ‘살아남기 위해’)로 올라가거나 밖으로 밀려나거나 아래(▶3회에서 계속)로 내려갔다. 번영과 발전과 융성에 끼지 못한 그들이 도시가 시선을 거둔 ‘유기구역’에 모여들어 생존을 구했다.

도시의 본능

그 구역은 ‘밖’에 있었다.

160여 마리의 개가 일제히 짖었다. 가지를 꺾은 자의 몸엔 혹이 나게 한다는 전설의 느티나무(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오금동)를 품은 땅이었다. 신령한 나무를 아래에 두고 산에 달라붙은 기슭에서 개들이 소리 높였다. 검은 차양막을 두른 가건물(달봉이네보호소) 안에서 원정자(68)가 개들을 보살폈다. 컨테이너와 섀시를 덧대 지은 허름한 보호소에서 도시 안에 끼어들지 못한 사람과 개들이 서로를 의지해 살았다. 원정자가 지난 15년간 거듭 도시 밖으로 쫓겨나는 동안 그와 함께 쫓겨난 개들이 그의 곁에서 늙어 죽거나 새로 버려진 개들을 식구로 맞아 같이 늙어갔다. 크고, 작고, 높고, 낮게 짖는 소리가 뭉쳐져 노고산(경기도 양주시 광적면과 파주시 법원읍에 걸쳐 있는 높이 401m의 산) 자락에 고인 적막을 몰아냈다. 개들의 소리는 담장 밖 인기척에 보내는 경고라기보다 ‘우리 여기 있다’고 알리는 존재 확인 같았다.

외톨이 ‘들개’ 찡찡이(1회 등장)가 북한산에서 도시를 내려다봤다. 도시도 생물이었다. 도시는 끊임없이 팽창하려 했고, 제약 없이 높아지려 했고, 주저 없이 새것이 되려 했다. ‘도시의 본능’ 앞에서 버려진 개와 내몰린 인간의 출처는 다르지 않았다. 은평뉴타운(2004년 12월 착공) 개발 때 집단 유기된 개들이 북한산 들개의 초기 세대가 됐다. 그 개들이 산에서 번식하고 세대를 분화하며 찡찡이까지 이어지는 동안 은평구 진관내동의 세입자 원정자는 뉴타운 철거민이 돼 밖에서 밖으로 쫓겨 다녔다. 찡찡이가 북한산에서 바라보는 ‘새로운 도시’ 안에 원정자는 속하지 못했다.

개와 사람이 버림받기에 앞서 땅이 먼저 뒤집혔다. ‘찡찡이들’의 발생과 원정자의 이주 경로를 ‘서울시 클린업시스템’(정비사업장 정보공개를 위해 2010년 도입)에 등록된 재개발·재건축 구역들과 맞춰봤다. 2011년부터 2019년 7월까지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10개 자치구에서 들개 562마리를 포획했다. 10개 지역에서 2010년~2019년 추진된 재개발·재건축은 238건(서울시 전체는 623건)이었다. 개와 인간의 유기는 이주·철거 과정에서 벌어졌다. 238건 중 이주·철거 이후 단계의 사업은 104건이었다. 이 104개 사업구역과 멀지 않은 거리에 산이 있을 때 버려진 개들이 숨어들어 야생화할 은신처를 구했을 것이었다.

들개 찡찡이가 북한산 봉우리에서 내려다보는 북서쪽에 은평구가 있었다. 은평구에선 2012년부터 113마리의 들개를 포획했다. 22개 구역에서 이주·철거가 진행됐다. 북한산과 백련산이 위아래에서 사업구역을 감쌌다. 살아남은 개들이 산으로 피신하기 좋은 지형이었다. 녹번1구역과 불광3·4·7구역이 북한산을 등에 업고 재개발됐다. 근래 ‘들개 민원’이 자주 들어오는 백련산 주위에서도 잇따라 아파트가 올라갔다. 응암1·2·3·9·10·11구역 재개발과 응암1·3·4구역 재건축이 산을 깎으며 파고들었다.

아침마다 현관문을 열면 주인 잃은 개들이 집 앞에 매여 있었다. 진관내동 세입자였을 때 원정자는 유기된 개들을 좁은 전셋집에 데려와 같이 살았다. 동네를 떠나는 사람들이 원정자의 집 앞에 두고 간 개들이 20마리쯤 됐다. “상황이 나아지면 데려가겠다”던 사람들 중 다시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도시는 오직 인간을 위한 공간이었지만 모든 인간을 위한 공간은 아니었다. 담이 다닥다닥 붙은 낡은 집에 살던 원정자는 철거민이 돼 뉴타운 반대 싸움을 했다. 철거 직전인 2005년 2월 개들을 데리고 개울 건너 지축(고양시 덕양구)으로 이주했다.

들개 찡찡이가 북한산 봉우리에서 내려다보는 남서쪽에 서대문구가 있었다. 서대문구로 넘어온 북한산과 백련산을 오른쪽에서 인왕산이 밀고 아래쪽에서 안산이 받치며 도망간 개들의 안식처가 됐다. 서대문구에선 2012년부터 123마리가 포획됐다. 지역 내 18개 재개발·재건축구역에서 이주·철거가 단행됐다. 홍제1재건축과 홍제2·3재개발구역은 인왕산과 안산에 둘러싸여 있었다. 홍은1·2·3·6재건축과 홍은12·14재개발구역은 좌우로 백련산과 북한산, 아래로 인왕산과 붙어 있거나 근접했다. 도시가 품지 않은 개들을 품어 안을 산들이 넉넉했다.

서대문구청에선 들개 포획틀(서대문구 11곳 설치)을 관리하는 저소득층 공공근로가 시행됐다. “실업자 또는 정기적인 소득이 없는 일용직 근로자”나 “행정기관 또는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노숙인임이 증명된 자”에게 신청 자격을 주었다. 도시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시에서 밀려난 개들을 포획·관리하는 일이 맡겨졌다.

인간에게 버려져 산으로 올라온 ‘들개’가 북한산의 한 봉우리에서 인간의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사진 권도연 작가

밖에서 밖으로

원정자가 이사한 땅은 고작 개울(창릉천) 맞은편이었다. 지축에서 개울 저편을 넘겨봤을 때 뉴타운 터를 떠나지 못한 주민들이 빈 상여를 메고 곡을 하며 시위했다. 원정자가 지축에서 구한 집은 비닐하우스였다. 식당에서 설거지 일을 마치면 손님들이 남긴 밥을 배낭에 메고 돌아와 허기진 개들을 먹였다. 돌보는 개가 70여 마리로 불어났을 때 지축에도 재개발이 밀려왔다.

찡찡이가 북한산 봉우리에서 내려다보는 남쪽 땅에 종로구가 있었다. 종로구에선 2011년부터 83마리를 포획했고 3개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에서 이주·철거가 이뤄졌다. 무악2구역 재개발과 무악연립2주택 재건축 터가 인왕산에 바짝 다가가 있었다.

도시가 산을 밀어붙였다. 들개 발생과 관계있을 것으로 보이는 개발구역의 위치(그래픽 참조)를 한데 찍으면 ‘도시의 의지’가 읽혔다. 도심을 갈아엎은 재개발·재건축이 서울의 남은 땅을 찾아 몰려와 산을 갉아먹었다. 도시의 힘줄이 칡넝쿨처럼 산을 타고 기어올랐다.

원정자는 지축에서도 정착하지 못했다. 뉴타운을 완성한 도시가 창릉천을 건너 지축으로 달려왔다. 원정자가 퇴거를 거부하자 개장에 명도소송 소장이 붙었다. 그도 이주 보상금을 요구하며 소송을 냈으나 두 소송에서 모두 졌다. 지축 재개발로 버려진 개들이 은평에서처럼 그의 눈앞에서 떼 지어 다녔다. 지축 이주 10년 만에 원정자와 그의 개들은 두 번째로 쫓겨났다.

북한산에서 찡찡이가 내려다보는 남동쪽에 성북구(이주·철거 이후 사업장 17곳)가 있었다. 2013년부터 16마리가 붙잡혔다. 돈암5구역(재개발)과 정릉·길음9구역(재개발)으로부터 200m와 500m 거리에 개운산이 있었다. 2016년 서울시의 집중 포획 때 포획틀 2개가 개운산에 설치됐다.

북한산에서 찡찡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한강 이남에 관악구(이주·철거 이후 4곳)가 있었다. 봉천12-1구역과 12-2재개발구역 아래로 청룡산이 있었다. 이 산이 낙성대공원과 연결됐고 공원은 관악산과 맞붙었다. 2015년 6마리를 시작으로 161마리의 개가 관악산과 산에 안긴 서울대에서 포획됐다. 성동구(이주·철거 이후 13곳)와 강동구(15곳)에선 32마리와 19마리가 잡혔다. 성동구 금호15·17·18·19구역 남쪽으로 달맞이봉이 있었다. 지난해 3월 구청 공무원·소방관·경찰 등 21명이 출동해 어미 1마리와 새끼 3마리를 달맞이봉에서 잡았다. 두 달 뒤 강동구는 길동생태공원에서 꽁치를 넣은 멧돼지 포획틀에 들개 1마리를 가뒀다. 길동신동아3차 재건축구역이 공원과 맞닿아 있었다.

한번 몸집을 불리기 시작한 도시는 지치지 않고 갈아엎을 곳을 찾으며 자기증식했다. 도시가 팽창하자 들개 포획 장소도 확산됐다. 북한산 중심이던 번식지가 백련산·인왕산·안산·관악산 등지로 넓어졌고, 서울에서 수도권으로, 수도권에서 전국(3회 기사)으로 퍼져나갔다.

지축에서 밀려난 원정자와 그의 개들이 도착(2015년)한 땅이 노고산 자락이었다. 노고산에서도 버려진 개들이 떠돌았고 원정자가 산기슭에 사료를 놓아줬다. 도시는 안을 부풀려 밖을 압박했고 밖을 삼키며 안을 넓혔다. 지축과 삼송(경기 고양시)이 개발구역을 넓혀오며 그를 다시 밖으로 몰아붙였다. 보호소 아래 느티나무를 경계선 삼아 재개발(아래쪽)이 진행되고 있었다. 내년 6월 보호소 터 계약도 끝날 예정이었다. 땅주인에게선 이미 이사 통보를 받았다. 160여 마리까지 늘어난 개들과 함께 살 땅을 어디서 구해야 할지 몰라 그는 개들을 볼 때마다 울먹였다.

“똑같아. 집 없이 버려진 너희나 집 없어 쫓겨나는 나나….”

유기된 존재들은 보이지 않았다. 버려진 개들은 산속으로 사라졌고, 내몰린 사람은 도시에서 사라졌다. 그들이 보이지 않는 까닭은 없어져서가 아니라 있을 자리를 빼앗긴 탓이었다.

*3회 ‘개 같은 인생’에선 도시개발을 따라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들개와 그들에게 자신을 투영하며 돌보고 구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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