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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6일 독일 베를린에서 임대료 폭등과 세입자 퇴거에 반대하는 ‘미친 임대료’ 반대 시위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베를린 세입자연합 등 100여개 단체 4만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유럽의 집값, 임대료 폭등에 반대하는 ‘미친 임대료’ 시위는 베를린뿐 아니라 유럽 주요 도시에서 열렸다. 베를린/D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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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기획
베를린 임대료 동결을 만든 사람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저금리
임대회사 투기로 임대료 폭등
‘도이체보넨 몰수 운동’ 등
세입자 단체가 동결안 끌어내
‘미친 임대료’ 반대 시위도
보수정당 동결안 반대해 헌소
“신규주택 지어 해결” 주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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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6일 독일 베를린에서 임대료 폭등과 세입자 퇴거에 반대하는 ‘미친 임대료’ 반대 시위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베를린 세입자연합 등 100여개 단체 4만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유럽의 집값, 임대료 폭등에 반대하는 ‘미친 임대료’ 시위는 베를린뿐 아니라 유럽 주요 도시에서 열렸다. 베를린/D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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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초 독일 베를린의 주택 임대료가 5년간 동결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한국에서도 해마다 임대료가 높아지고, 특히 청년층의 주거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 더욱 눈길을 끌었습니다. 베를린 시정부의 임대료 동결 정책이 나오게 된 배경과 이를 이끌어낸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도이체보넨 몰수 운동’이 없었다면 임대료 동결도 없었을 거예요.”
짧은 빨간 머리에 자전거 헬멧을 들고 나타난 잉그리트 호프만(69·활동명)은 프랑스어 통역사였는데, 은퇴하고는 연금으로 생활해왔다. 빠듯한 형편에 2년 전 아파트 임대료가 332유로에서 한번에 50유로나 오르자 ‘도이체보넨 몰수 운동’에 합세했다. 지난 11월8일 베를린 중심가의 알렉산더광장 근처에서 만난 그녀는 가방에서 “투기와 싸우자” 등 구호가 적힌 ‘도이체보넨 몰수 운동’의 스티커, 배지, 책자를 꺼내 건넸다.
독일 기본법 바탕으로 몰수 주장
“우리는 이 동결안을 환영합니다. 우선 5년간 여유를 갖게 됐어요.”
베를린 시정부가 지난 10월22일 주택 임대료 동결을 담은 ‘베를린시 주택임대료 법안’을 발표했다. 법안 초안이 발표된 지난 6월18일 당시 임대료를 기준으로 앞으로 5년 동안 기존 세입자에게 주택 임대료를 올릴 수 없게 명시한 내용이다. 이 안은 시의회(상원)를 통과하면 내년 1월부터 발효된다. 호프만이 활동하는 ‘도이체보넨 몰수 운동’의 이름은 임대회사에서 유래했다. 베를린에 3천호 이상 주택을 소유한 임대회사가 12개인데, 주택 25만호를 가진 ‘도이체보넨’이 최대 회사다. 이 회사의 주택 몰수를 주장하는 단체가 도이체보넨 몰수 운동이다. 이 단체 등이 주민투표 운동을 끈질기게 이어가 시정부의 동결안을 이끌어냈다.
도이체보넨 몰수 운동은 지난 6월 임대회사 주택 몰수에 찬성하는 시민 7만7천명의 서명을 베를린시 당국에 제출했다. 주민투표에 들어가려면 앞으로 2단계 청원에 필요한 17만명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호프만은 “청원을 넉달 안에 끝내야 해서 매일 서명 받기 바쁘다”고 말했다. 주민투표에서 과반이 찬성하면 정계는 압력을 받게 된다. 이번 임대료 동결안도 ‘도이체보넨 몰수 운동’ 등이 벌인 운동의 결과다. 호프만은 “저금리로 돈을 빌린 국내외 기업들이 베를린 부동산에 투자해 이윤을 올리고 있다”며 “서민의 임대료를 인상해 이윤을 추구하는 건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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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8일 베를린 중심가의 알렉산더광장 근처에서 만난 잉그리트 호프만 ‘도이체보넨 몰수 운동’ 활동가가 “투기와 싸우자” 등 구호가 적힌 스티커, 배지, 책자를 보여주었다. 그는 연금으로 감당이 안 되는 임대료 인상을 요구받으면서 운동에 참여하게 됐다. 한주연 통신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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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재산권이 있는데 ‘몰수 요구’가 실현 가능한 걸까? 도이체보넨 몰수 운동은 독일 기본법 15조 “토지 천연자원 및 생산수단은 사회화를 목적으로, 보상의 종류와 범위를 규정한 법률에 근거해 공유재산화 또는 기타 유형의 공동경제화 할 수 있다”는 조항을 소환한다. 베를린 지방 기본법 28조 ‘누구에게나 보장된 적당한 거주공간에 대한 권리’도 근거로 든다. 이런 조항에 바탕을 두어 임대회사 주택을 몰수해 공유재단으로 만들고, 사회화된 주택에 대해 국가가 보상해 주면 된다는 것이다.
도이체보넨 몰수 운동은 2015년 사회적 약자를 위한 거주공간 공급법을 만들기 위한 베를린 세입자 주민투표 청원운동에서 시작됐다. 이 청원운동을 시정부가 받아들여 신규 주택의 입주자 55%를 사회적 취약계층(실업수당을 받거나, 연금을 받는 저소득층)에 배정하고, 주택 개보수를 하려면 세입자의 의견을 먼저 물어야 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베를린에서는 시당국과 세입자 등이 함께 2년마다 기준 임대료를 정하는데, 2019년 1㎡당 기준 임대료는 6.72유로지만, 주택 부족으로 시가 임대료는 9~11유로에 이른다. 그만큼 2010년대 크게 오른 임대료는 핵심적 사회 문제다.
베를린 시정부가 10월22일 발표한 ‘5년 임대료 동결안’은 ‘임대료 뚜껑’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부글부글 끓어 치솟아 감당되지 않는 임대료를 우선 뚜껑으로 덮어놓는다는 뜻이다. 동결안을 위반한 임대업자는 50만유로(6억4천만원)의 징벌적 벌금을 물어야 하는데, 2015년 발효된 임대료 제동안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반성에서 나왔다. 주택을 개보수하면 예외조항을 통해 제동안을 피해갈 수 있는데, 이번 동결안은 2014년 이전에 지어진 모든 주택에 예외 없이 적용된다. 임대료 편법 인상을 막겠다는 시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것이다.
동결안 추진은 한 사민당 정치인이 2018년에 한 법학지에서 공법에서 임대료 동결이 가능하다는 논문을 발견하면서부터 구체화됐다. 2006년 개정된 연방법에 따라 주택 정책은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방정부 관할이 되었다. 이로써 임대료 상한을 지방정부 당국이 정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고, 이를 근거로 두 달 뒤 동결안이 발의됐다.
동결안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경제계는 물론 시 소속 주택회사들과 주택조합들도 “수지가 맞지 않는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도이체보넨 몰수 활동가 호프만은 “이런 법 제정이 가능한 것은 베를린 인구 85%가 세입자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2018년 독일의 평균 세입자 비율 57.9%에 견줘 베를린은 세입자, 사회취약층 비율이 매우 높다. 반면 주택의 고급화는 다른 도시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주변부로 확장된 젠트리피케이션
한때 그냥 ‘가난하지만 섹시했던’ 베를린은 이제 세계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도시가 됐다. 젊은 창업가들이 몰리고 세계적 아티스트들이 활동한다. 임대료가 폭등했지만 여전히 런던, 파리 등에 비하면 임대료가 낮다. 인구의 40%가 연금이나 실업수당 수령자일 만큼 베를린은 가난한 도시였다. 독일 세입자보호법에 근거해 세입자는 생활비에 비해 주거비가 너무 높을 경우 구청에 주거 보조비를 신청할 수 있다. 독일에서 87만가구, 베를린에서 3만5천가구가 이 혜택을 보고 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유럽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은 유럽 대도시의 집값 폭등을 부추겼다. 낮은 이자로 대출을 받은 임대회사 등이 부동산 투기에 나서며 집값은 올라가고, 취약층은 도심에서 변두리로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세입자보호법이 엄격한 독일에서 2000년대 초까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보통 임대계약은 무기한이 원칙인데, 세입자가 원할 경우에만 해지가 가능하다. 더구나 해마다 시정부가 시세보다 낮은 임대료 기준표를 작성해 임대료를 안정시켰다. 세입자를 보호하는 법들도 강력해 투기를 막는 방패막이가 되었다.
2000년대 말까지 고급주택화(젠트리피케이션)는 베를린의 중심 지역인 미테, 프렌츨라워베르크 등 이른바 뜨는 동네에 한정되어 있었다. 분단 당시 서베를린이 동독 영토 안에 있는 섬으로 격리돼 있으면서 다른 서독 주들의 지원을 받아온 터라 통일 뒤에도 경제 부흥은 어려워 보였다. 더구나 2003년 당시 500억유로로 베를린 시정부의 부채 문제가 심각했다. 2002년 사민당, 녹색당 연정으로 베를린 시정부가 바뀌면서 사회주택 민영화가 시작됐다. 부채 탕감을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2011년까지 베를린 시정부 소유 주택 중 3분의 1이 매각돼 현재는 29만3천호만 남았다. 세입자가 직접 조합원이 돼 임대료가 비교적 저렴한 주택조합 주택도 18만8천호가 있다.
자본의 힘은 강력했다. 저금리 정책으로 자본이 베를린의 빈집들로 몰리자 부동산 가격이 뛰고 여러 편법이 날뛰기 시작했다. 보통 임대료는 마음대로 인상할 수 없도록 세입자보호법으로 정해져 있지만 예외조항은 있었다. 세입자가 나간 뒤에나 주택을 개보수하면 임대료를 올릴 수 있었다. 민영화된 옛 시 소속 주택들을 소유한 임대회사 등은 이 예외조항을 이용했다. 주택을 일부 개보수하면서 그 비용을 임대료 인상에 적용해 가난한 세입자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다. 수십년 같은 동네에 살던 이웃들이 외곽으로 이사 가는 일이 비일비재해지자, 세입자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크로이츠베르크의 코티운트코(Kotti & Co)가 대표적 사례다. 이 지역은 동·서독 분단 시절부터 좌파 운동가, 예술가, 터키 이주민이 모여 사는 자유분방한 분위기로 유명했다. 그런데 이 동네가 2010년 무렵부터 급격히 고급주택화되기 시작됐다. 세입자보호법에 어두운 이주민들이 밀려나는 1순위였다. 주택 개보수로 세입자들이 쫓겨나는 사례가 많아지자 주민들이 아예 오두막을 짓고 매일 두세명이 지켰다. 세입자들이 어려움을 나누고, 정보를 공유한 것이다. 2014년에 개봉된 다큐멘터리 <세입자의 반란>은 2011년부터 시작된 눈물겨운 세입자연대 운동을 기록했다. 세입자들이 정치적 연대로 공청회를 열고 국민청원을 시작하자, 시정부와 의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2013년 베를린 시의회에서 3년 안에 임대료 15% 이상 인상 금지법, 2014년 5월 휴가주택임대 금지법이 통과됐다. 2015년 발효된 임대료 제동은 임대료 기준표보다 10% 넘는 인상을 금지했다. 같은 해 임대주택 공공성 확대를 위한 주민투표 청원 운동에는 5만명이 서명했다. 이때 베를린 시정부가 시민의 요구를 받아들여 새로운 법 조항을 만들면서 청원운동은 찬반투표를 시작도 하기 전에 뜻을 이뤘다. 이 힘을 ‘도이체보넨 몰수 운동’ 등이 이어갔다. 지난 4월6일 열린 ‘미친 임대료’(Mietenwahnsinn) 시위에는 베를린 세입자연합, 노숙인 단체 등 100여개 단체에서 4만명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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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체보넨 몰수 운동’이 만든 임대료 폭등에 반대하고, 임대회사 주택 몰수를 주장하는 스티커, 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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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는 사회주택 확보로 해결
아파트 8채를 임대하고 있는 마르틴 슈미트는 “베를린 시정부가 예전에 팔았던 7800호 주택을 판매 시가의 갑절 이상의 가격으로 재구입하는 지출을 하고 있다. 그런 돈으로 이미 지어진 건물을 구입할 게 아니라 새 건물을 짓는 게 시급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안드레이 홀름 훔볼트대학교 사회학과 전임강사는 “임대료 동결을 통해 기존 세입자들을 밀어내는 현상이 줄어들 것이다. 임대인 중 25%만 동결안을 지켜도 저렴한 주택 공급이 두 배로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한편 함부르크 시정부는 공공 재정을 지원해 신규주택의 3분의 1을 사회주택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주택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이처럼 부족한 주택 공급이 우선이고, 임대료 동결안은 임시방편이란 의견도 있다. 신규주택 건설을 유도하기 위해 베를린 시정부도 2014년부터 지어진 주택에 대해선 임대료 동결안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 보수당인 기민련과 자민당은 베를린 임대료 동결안에 반발하며 연방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을 냈다. 판결이 나올 때까지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동결안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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