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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생이 한 손에는 컵라면, 다른 손에는 탄산음료를 들고 학원으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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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학원가 리터니들의 ‘방학 잔혹사’
여름방학이면 조기유학생 ‘리턴’
대입 재외국민 전형 SAT가 좌우
대치동 8주특강에 수천명 몰려와
중학생이 만성 위염…“부모님은 몰라요”
학원 이동하는 짬에 ‘10분 점심’
편의점 메뉴가 주식 “한 달 6㎏ 빠져”
“자취방 가는 버스에서 펑펑 울어”
우울증 17살 “팔에 칼 댄 적도”
“수면유도제 먹어야 잠 와”
“외로움 지쳐” 완전 리턴한 19살
집팔아 등떠밀려 간 유학보다
대치동 여름방학이 더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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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생이 한 손에는 컵라면, 다른 손에는 탄산음료를 들고 학원으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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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여름이 되면 유난히 앳된 얼굴의 자취생들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를 배회한다. 국외 조기유학을 떠났다가 방학 특강을 듣기 위해 잠시 한국을 찾은 학생들이다. 이런 학생들을 대치동에서는 ‘리터니’ 또는 ‘일시귀국생’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최종 진학 목표는 국외 대학이 아니라 한국 대학의 재외국민 전형이다. 국외 체류 3년 이상이면 자격이 생기는 이 전형에서는 에스에이티(SAT·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 점수가 등락을 좌우한다. 이들을 위한 단기 속성과정이 생긴 것은 2010년 무렵이라고 학원가에선 말한다.
<한겨레>는 지난 두 달 동안 리터니들을 직접 만나 일상을 따라가 봤다. 형편에 따라 어떤 중학생은 고시원에, 어떤 초등학생은 호텔에서 생활한다. 편의점에서 홀로 끼니를 때우고 어두운 자취방으로 귀가하는 이들의 모습은 이곳에서 흔한 풍경이다. 변질한 입시제도와 불법 사교육 시장, 학부모의 욕망이라는 트라이앵글이 리터니를 양산하는 엔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3회에 걸쳐 그 실태를 파헤친다.
승완(가명·14)이는 두달차 자취생이다. 지난달 서울 강남구 대치동 원룸에 입주했다. 3년 전 중국의 한 국제학교에 유학 간 승완이는 중학교에 들어간 지난해부터 여름방학마다 대치동 학원가를 찾는다. 올해는 방학식도 치르기 전에 서둘러 입국했다. 학원 여름특강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다. 집도 친구도 없는 낯선 도시의 한복판에서 자취하게 된 것도 모두 학원 때문이다. 이곳에서 승완이는 혼자 일어나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잠든다.
7평짜리 원룸서 자취, 평균 수면 5시간
새벽 6시30분, 7평짜리 원룸에 돌고래 소리 같은 고음이 울려 퍼졌다. 잠에서 깬 승완이가 벌떡 고개를 들었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새벽 1시 넘겨 잠들었으니 5시간쯤 잔 셈이다.
승완이의 알람은 4옥타브를 넘나드는 ‘초고음’으로 유튜브에서 명성을 얻은 러시아 가수 ‘아쟁 총각’의 노래다. 깨워줄 사람이 따로 없다 보니 늦잠을 피하기 위해 택한 차선책이다. 실제로 이 노래를 알람으로 맞춘 뒤부터 알람 소리를 못 듣고 자는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피로까지 달아날 리는 없다. ‘이대로 5분만 더 눈 감고 있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을 때쯤 “방 안에서 큰 소리는 내지 말아 달라”던 관리인 아저씨의 꾸지람 같은 잔소리가 기억났다. 며칠 전 옆방 세입자의 통화하는 소리가 그대로 들렸던 것도 떠올랐다. 깊은 한숨을 내쉰 승완이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알람을 껐다.
아직 어스름한 시각에 일어난 건 전날 못다 한 학원 숙제 때문이다. “원래 자던 것처럼 자면 숙제를 끝낼 수가 없어요. 한국에 온 뒤로 거의 날마다 이런 식이에요.” 승완이는 불을 켠 뒤 기계적으로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려 나갔다. 말수도 없고 글쓰기도 싫어하는 승완이에게 매일 숙제로 써 가야 하는 500단어짜리 영어 에세이는 익숙해지지 않는 골칫거리다. 문장 하나 쓰고 단어 수 확인하기를 몇 차례. 남은 분량을 꾸역꾸역 채우자 8시가 넘었다.
오후에 가는 수학 학원 숙제가 남았지만 일단 급한 불은 끈 셈이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으니 시계는 8시45분을 가리켰다. 전날 밤 마신 에너지드링크 빈 병들과 방바닥을 뒹구는 잡다한 쓰레기가 눈에 밟혔지만 일단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학원까지는 걸어서 15분. 이미 지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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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에 자취 생활을 하는 리터니들의 끼니는 부실할 수밖에 없다. 점심과 저녁을 모두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햄버거로 때운다는 승완(가명)이의 식사.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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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음식, 위염…한달 만에 6㎏ 빠져
에스에이티(SAT·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 학원 강의실에서 승완이의 고정석은 맨 앞자리다. 거의 매일 지각하다 보니 남들이 제일 꺼리는 자리에 앉게 됐다. 승완이는 학원에서 선생님이 묻는 말에 대답하는 것 외에는 입을 열지 않는다. ‘리터니’라는 것 외에는 공통점도 접점도 없는 학생들은 쉽사리 친해지지 못한다. 쉬는 시간에는 각자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느라 바쁘고, 점심도 따로 먹는다.
승완이가 맨 앞자리를 택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화장실 가기가 제일 편해서다. 이날은 자리에 앉은 지 5분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한손으로 구역질을 막고 반대편 손을 들자 선생님이 익숙하다는 듯 갔다 오라고 손짓했다. 곧장 화장실로 뛰어가 아침에 먹은 샌드위치를 게워냈다. 한달 새 벌써 두번째다.
승완이는 만성 위염을 앓고 있다. 중국에서도 가끔 소화가 잘 안 됐지만 여름방학이 시작된 뒤로 더 심해졌다.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그마저도 5~10분 만에 급하게 먹을 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입에 달고 사는 에너지드링크도 도움이 되진 않는다.
“그래도 편의점에서 햄버거 고를 때가 제일 행복해요.” 승완이는 이날도 오후 1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원 옆 건물 편의점으로 직행했다. 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는 수학 학원은 1시30분에 시작한다. 온전히 ‘밥’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이 채 되지 않는 셈인데, 그 안에 남은 숙제도 마저 해야 한다. 시간에 쫓기는 승완이의 식사는 편의점 제품 중에서도 빨리 먹을 수 있는 것들로 채워진다. 불고기버거와 컵라면, 바나나우유가 단골 메뉴다.
비만으로 가는 지름길 같지만 한달 만에 오히려 6㎏이 빠졌다. 175㎝인 승완이의 현재 몸무게는 49㎏이다. 한창 성장기에 되레 몸무게가 줄어든 건 승완이로서도 처음 있는 일이다. 숙제가 많을 때는 끼니를 거르거나 급하게 먹는 게 습관이 되면서 살이 급격히 빠졌다. 부모님은 이 사실을 모른다. “굳이 말하기 귀찮잖아요.” 이날 점심에도 승완이는 컵라면을 반쯤 남겼다. 허겁지겁 버스에 탔을 때는 이미 1시30분. 또 지각이다.
“집 가는 버스에서 남몰래 펑펑 운다”
승완이의 전쟁 같은 하루는 밤 10시, 숙소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을 때까지 계속된다. 아직 할 일은 남아 있다. 엄마에게 전화해 귀가를 알려야 하고, 자취방에 도착해서는 학원 숙제도 해야 한다. 통화는 오래 하지 않는다. “얼마 전 일주일만 더 일찍 중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가 싸웠어요. 엄마가 절대 안 된대요. 그 다음부터는 엄마랑 말하고 싶지 않아졌어요.”
승완이에게 ‘한국’은 ‘학원’과 동의어라고 했다. 중국에서도 학원에 다녔지만 학원이 전부는 아니었다. 적어도 저녁을 같이 먹을 친구가 있었고, 밤늦게 귀가해도 불이 켜져 있는 집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학원 외의 일상이 없다. “에스에이티 점수가 안 나오면 인생 망하는 거다” “요즘은 다 전략적으로 외국 나가기 때문에 경쟁자가 더 많다”는 학원 선생님들의 훈계를 종일 듣다가 불 꺼진 방으로 귀가하는 하루의 반복이다. 승완이는 “그게 너무 숨 막혀서 자취방 가는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펑펑 운 적도 많다”고 털어놨다.
자정쯤까지 숙제하고 나면 승완이는 불을 끄고 넷플릭스를 켠다. 다음날 피곤할 걸 알면서도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 “온종일 학원 숙제만 하다가 자면 너무 억울하잖아요.” 밤늦게까지 에너지드링크를 마신 통에 잠이 오지 않는 이유도 있다. 최근에 정주행을 시작한 드라마 <나르코스> 한 편을 다 보고 나면 새벽 1시가 훌쩍 넘는다. 승완이의 평균 취침 시간이다. 승완이는 “너무 피곤해서 꿈도 꾸지 않고 잘 때가 많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승완의 진짜 ‘꿈’은 바뀌었다. 처음 중국으로 유학을 갈 때만 해도 한국이 그리울 줄 알았다. 헤어진 친구들과 대학 가서 만나자는 얘기도 했다. 지금은 아니다. 지난 20일 중국행 비행기를 탄 승완이는 “이젠 한국이 너무 싫어졌다. 한국을 떠나는 게 꿈”이라며 “다음 방학 때 또 와야 할 걸 생각하면 벌써 끔찍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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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배달 음식을 먹는다는 서준(가명)이의 냉장고에는 물병뿐이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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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패턴 흐트러져 약 먹어야 잠 와”
자취 생활이 길어진 리터니들은 단순 스트레스 이상의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다. 서준(가명·17)이도 그중 한 명이다. 올해 영국 사립학교를 그만두고 대입 준비를 위해 귀국한 서준이는 압구정동의 유명한 에스에이티 학원 근처 원룸을 얻었다. 학원에서는 “에스에이티 점수 1500점은 나와야 연고대를 노릴 수 있다. 빨리 혼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학원에서 한 얘기가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혼자라는 해방감에 술도 마셔보고, 종일 게임도 해봤지만 잠시였다.‘혼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종일 말 한마디 안 하고 공부만 하다 보니 성적이 자연스레 올랐다. 학원과 자취방만 쳇바퀴처럼 돌면서 공부에 대한 압박감은 커져갔다.
서준이는 “자취하면서 불면증이 심해졌다. 최근에는 수면유도제에도 내성이 생겨서 다섯 알은 먹어야 잠이 온다”고 털어놨다. 혼자 생활하다 보니 수면패턴이 흐트러졌지만 그걸 바로잡아줄 사람은 없다. 어느 날은 새벽 6시에 일어났다가 그다음 날은 정오에 깬다. 그런 날에는 새벽 4~5시까지 뜬눈으로 지새운다. “어두운 방에서 혼자 누워 있으면 온갖 생각이 다 나요. 특히 ‘이번 시험도 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잠이 확 깨죠.” 억지로 수면유도제를 먹고 잠들면 이튿날은 종일 멍하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우울증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 서준이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우울증이) 심해진다. 하루는 과일 깎는 칼을 팔에 댄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한동안 팔에 붕대를 감고 다녀야 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혼자 사는 것의 가장 큰 문제점이 그거예요. 전화할 때만 ‘괜찮다’고 하면 다들 진짜 괜찮은 줄 알아요.”
그렇게 괜찮은 척하는 사이 성격도 변했다. 말수가 많고 활발하던 서준이는 이제 친구를 만나도 조용한 편이다. 패밀리 레스토랑에 혼자 가는 게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혼밥’이 편해졌지만 그보다 배달 음식을 즐긴다. ‘배달의 민족’에서 서준이는 월 20회 이상 주문하면 주어지는 ‘천생연분’ 등급이다. 서준이는 “사람들 없는 곳이 더 편하다. 저녁은 거의 매일 배달 음식을 먹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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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터니들이 많이 찾는 것으로 알려진 고시원 내부 복도 모습.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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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 나 혼자 병원 갔을 때 가장 서러워”
승재(가명·19)는 자신을 ‘실패작’ 리터니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중학교 1학년을 마친 승재는 3년 동안 베트남의 국제학교에 다녔다. “저는 가기 싫었어요. 그런데 엄마가 유학 비용 마련한다고 집을 팔아버렸어요.”
유학 생활도 힘들었지만 더 고된 건 대치동에서 보낸 여름방학이었다. 에스에이티 학원 주변의 학사, 하숙집부터 경기도 친척 집까지 안 가본 데가 없었다. 새벽 6시30분 기상 점호를 하는 ‘군대식’ 학사도, 눈칫밥을 먹어야 했던 하숙 생활도 승재에게는 모두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다.
점차 외로움에 무뎌졌다는 승재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승재는 “아픈데 혼자 병원 갔을 때는 정말 서러웠다”고 했다. “한번은 몸살이 났는데 일주일 정도 아팠어요. 학사에 살 때였는데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었죠. 결국 병원에 혼자 가서 링거 맞고 학원에 결석한다고 직접 전화했어요.”
승재가 “더는 못하겠다”고 백기 아닌 백기를 든 건 고등학교 1학년 때다. 부모님은 “재외국민특별전형 3년 특례 기준을 맞춰야 한다”며 말렸다. 3년을 채우고 난 다음 다시 한번 말을 꺼냈다. 이때는 “집 팔아가며 공부시켰는데 아깝게 왜 이러냐”는 엄마의 말도 승재를 설득하지는 못했다. 고등학교 3학년부터는 한국 학교를 다녔고, 결국 엄마가 원하는 수준의 대학에 가지 못했다. 자신을 ‘실패작’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승재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외로웠던 기억밖에 없어서 솔직히 말하면 한국 올 때 ‘탈출’하는 심정이었다”며 “다시 생각해도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성장기의 건강을 희생해가며, 모든 관계를 절연당한 채 외로움에 시달리는 리터니들. 이들은 미래에 어떤 성인이 될까. 이들이 좋은 학교를 나와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대치동에서는 매미 울음소리마저 맹렬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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