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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9 20:02 수정 : 2019.12.10 02:06

연재ㅣ왕용샘의 ‘학교도서관에서 생긴 일’

2015년 순천남산중 도서부 ‘그린나래’ 학생들이 조례호수공원에서 플리마켓을 열었습니다. 각자 집에서 안 보는 책 200권을 모아 판 돈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네팔의 학생들에게 보냈습니다.

세상엔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어머니가 나이 들어가는 모습처럼, 뉴스에 나오는 끔찍한 이야기처럼, 아이들이 교원 평가에 저를 ‘백운고 존잘(최고 잘생긴 얼굴)’이라고 해주는 것처럼 말이지요.

세상에는 사회적 담론이 필요한, 믿기 힘든 이야기가 있지요. 강경수 작가의 <거짓말 같은 이야기>라는 그림책에는 가난과 기아에 시달리는 아이티의 르네, 키르기스스탄의 하산, 인도에 사는 파니어, 우간다의 키잠부 등이 등장합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대한민국 국적의 솔이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거짓말처럼 생각하지만 모든 게 사실임을 알고 충격에 빠집니다. “…거짓말이지?”

4년 전, 중학교 학생들을 앞에 두고 이 책을 읽어준 적이 있습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등장한 친구들을, 아이들은 보면서도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지요. 평소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참혹한 현실을 직접 목도하면서, 몇마디의 문장을 소리로 들으며 진실에 직면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친구들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솔이’처럼 ‘거짓말이지?’라는 표정이었지요.

“진실을 직면한 것입니다. 선생님 또한 충격적입니다. 각자의 감상을 간단하게 적어봅시다. 그렇지만 ‘이 친구들이 어렵게 사니, 우리는 행복함을 느껴야 해’ 따위의 비교를 통한 우위의 감정은 가지지 않기로 합시다. 직면한 진실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그런 지점도 함께 생각해봅시다.”

학생들은 어려워하면서도 커다란 진실에 압도당해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책무감을 느낀 듯했습니다. 저는 말을 조금 더 보탰습니다.

“여러분, 놀라운 사실 하나 알려드릴게요. ‘솔이’를 제외한 책 속 등장인물들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어요. 침묵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이미 짓눌려버린 친구들의 마음도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책 속에 등장하는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를 여러 사람에게 공유하면서 성금을 모아봤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책에서 시작한 이야기, 책으로 해결해보자는 결론을 맺었지요.

각자 집에서 안 보는 책을 모으기로 했어요. 200권 넘게 모였습니다. 제 차에 책, 홍보물, 돗자리를 싣고 순천 조례호수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주말이라 사람이 제법 많았지요. 돗자리를 펴고 책을 정리해서 자율가격제로 팔았습니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부끄러워하더군요. 제가 먼저 큰 소리로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안녕하세요! 순천남산중학교 도서부 ‘그린나래’의 지도교사 황왕용입니다. 오늘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을 맞이해 많은 고민을 하다가, 여러분께 책을 선물로 드리고 작은 정성을 모으고자 왔습니다. 그리고 모인 정성은 네팔에 사는 친구들에게 보내려고 합니다. 저희가 보던 책을 모아서 가지고 나왔습니다. 필요한 만큼 책을 고르시고, 500원이든 1만원이든 이 통에 자율적으로 돈을 넣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시민들이 반응을 보이자 아이들도 자신감이 생겼나 봅니다. 30분 뒤에는 10명이 넘는 친구들이 넓은 호수공원을 돌아다니며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과 우리가 읽었던 책 내용을 이야기하고 취지를 설명하더군요. 그날 얼마만큼의 돈이 모였느냐고요? 놀라지 마십시오. 24만4300원이나 모였지요. 그 돈은 고스란히 자선단체를 통해 네팔의 친구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이날 한 친구는 “사람들이 우리의 행동에 관심을 가져주는 일이 신기했다. 우리가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현실에서 해낸 것 같다”고 소감을 남겼습니다. 그 아이들이 지금은 성인이 되었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연락도 하고,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면 거짓말처럼 성장한 모습에 깜짝 놀라곤 합니다.

황왕용 ㅣ 광양백운고 교사, <학교도서관 활용 수업: 중·고등>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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