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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3 20:18 수정 : 2019.12.24 13:54

연재ㅣ우리 아이 마음 키우기

2년 전, 초등학생 309명을 대상으로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해 설문했다. 원래 목적은 우리 학교 아이들이 받고 싶어 하는 선물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였다. 결과를 열어보니, 받고 싶어 하는 선물은 아이 개인별로 무척 다양했다. 반면 받고 싶지 않은 선물에 관해서는 공통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다. 크리스마스에 받고 싶지 않은 선물만 주지 않아도 아이들 표현으로 ‘개폭망’(완전 폭삭 망함)은 피할 수 있다.

1~6학년 학생들이 전반적으로 받고 싶지 않은 선물 1위는 ‘책’이었다. 71명의 학생이 책 선물을 받고 싶지 않다고 응답했다. 부모가 보기에 예쁜 그림이 가득하고 즐거운 이야기가 있는 것일지언정, 성탄절 선물로 책은 숙제 같아서 싫고 부담된다는 게 이유였다.

두 번째로 받고 싶지 않은 선물은 ‘학용품’이었다. 43명이 학용품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적 있는데 너무 싫었다는 응답을 했다. 공부하라는 압박처럼 느껴져 싫었다는 이유를 밝혔다.

이 밖에 공통적으로 받고 싶어 하지 않는 선물이 더 있는데, 저학년과 고학년 학생들이 차이를 보였다. 저학년은 ‘어린이 장난감’을 받고 싶지 않다고 응답했다. 처음에는 어린이 장난감이라는 답변이 이해되지 않았다. 초등학생들에게 어린이 장난감이 왜 거부의 대상이 되었을까? 핵심은 장난감이 아닌 ‘어린이’에 있었다.

1, 2학년 학생의 경우, 엄마 아빠가 유치원 동생들이나 좋아할 법한 ‘어린이’ 장난감을 선물로 줬다는 것이다. 어른이 보기에 초등 저학년은 어린이지만, 그들에게 어린이는 유치원 동생들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을 아직까지 유치원 수준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선물을 통해 확인하고는 실망감을 느낀다.

초등 1, 2학년 자녀 또는 손주들에게 유치원 시절 좋아했던 취향을 생각하고 선물해 준다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예전에 인형을 좋아했는데, 지금도 좋으냐고 물어보는 센스가 필요하다.

5, 6학년 학생들이 싫어하는 크리스마스 선물은 ‘먹는 것’과 ‘생활용품’이었다. 먹는 것이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것으로 선물을 끝낸다는 표현이었다. 생활용품이란 어차피 언젠가 필요하게 될 장갑, 목도리, 신발 등이었다. 가족과 외식하는 시간도 좋고 생활용품 받는 것도 좋지만, 그들이 크리스마스에 정말 원하는 건 자신만을 위한 특별한 무언가였다.

고학년 사춘기에 접어든 학생들은 받고 싶지 않은 선물에 대해 이렇게 응답했다. ‘엄마 아빠가 별로 고민하지 않고 산 선물.’

아이들은 선물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실감한다. 누군가 나에게 준 선물이 별 고민 없이 준비됐다는 느낌은 자신의 존재감에 큰 영향을 준다. 물론 양육자 입장에서는 가격 등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 세상에 누군가 산타 할아버지처럼 추운 겨울에 시원찮은 사슴 썰매를 타고서라도, 저 멀리서 반드시 나에게 선물을 주고야 말겠다고 다짐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이 자녀의 자존감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존중’받는지 ‘취급’받는지는, 선물을 주는 이의 설레는 ‘고민’에 달려 있다.

김선호 서울 유석초등학교 교사, <초등 자존감의 힘> 저자

김선호 서울 유석초등학교 교사, <초등 자존감의 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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