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마음 키우기
영철이는 수행평가 준비를 미루는 습관이 있다. 엄마는 열흘 전부터 공부해야 한다고 압박하지만, 영철이는 태평할 정도로 반응이 없다. 사흘 정도 남았을 때 서서히 준비하기 시작한다. 하루나 이틀 밤을 벼락치기 하듯 공부한다. 영희는 수행평가 공부를 최소 보름 전부터 시작한다. 범위가 많다고 느끼면 한 달 전부터 준비할 때도 있다. 영희의 다이어리에는 늘 그날 공부할 사항들이 적혀 있다. 영철이와 영희 중 누구의 수행평가 점수가 상위권일까? 꾸준하게 준비한 영희의 성적이 당연히 상위권일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둘 다 성적이 좋다. 이유는 간단하다. 둘 다 공부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어떤 방식으로든 일단 공부하면 성적이 상위권으로 나온다. 벼락치기든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하든, 일단 시험을 준비하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 그 행위의 결과는 좋은 성적으로 나타난다. 영철이와 영희, 공부하는 방식이 너무 달라 공통점이 없을 것 같지만, 둘 다 적어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자극이 있었다. 단지 자극의 시기만 달랐을 뿐이다. 영철이는 마감이 임박해서야 긴장감이 돌고 뭔가 해볼 만하다는 동기유발이 된다. 영희는 몰아치는 긴장감보다는 천천히 갑옷을 챙겨 입듯 비장함을 느끼는 자극이 동기가 된다. 자존감도 수행평가 준비와 비슷하다. 어떤 방식으로든 공부해야 시험 성적이 잘 나오듯, 자존감도 일단 스스로 도전해보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는 경험을 해봐야 ‘자존감 성적표’가 좋게 나온다. 몰아서 도전해도 되고, 조금씩 꾸준히 도전해도 된다. 도전과 실패, 다시 일어섬, 또는 도전과 성공 그리고 맛보게 되는 성취감, 이런 과정들이 자존감의 필수조건이다. 내 자녀는 무엇에서, 어떻게 도전하고 싶은 자극을 느끼는지 찾아야 한다. 안타깝지만 많은 아이가 이렇게 말한다. “그건 너무 어려울 것 같아요. 쉬운 건 없어요?” 자존감은 쉽게 얻을 수 없다. 도전이라는 두려움을 마주해야 한다. 자존감을 획득하는 자극 요소는, 도전하고 싶은 무언가를 제시해주는 데 있다. 도전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축구공을 차는 아이에게 적당한 크기의 골대를 보여주는 것이 자극이다. 천천히 차도 되고, 빨리 차도 된다. 저 골대에 공을 넣으면 점수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만 알려주자. 그것이 자극이 된다. 젓가락질이 서툰 아이에게 콩을 열 개만 집어 옮기면 좋아하는 과자를 먹을 수 있다는 말 한마디가 자극이 된다. 도전은 몇 발짝 앞에 도착하는 목표를 구체적으로 안내해주는 작은 자극에 있다. 많은 학부모가 자녀의 자존감이 낮아질까 걱정한다. 마음 여린 우리 경수가 상처받고 우울해지지는 않을지, 그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지지는 않을지 염려한다. 자존감에 치명적인 것은, 아무것도 도전해볼 만한 것이 주어지지 않는 안전해 보이는 환경이다. 안전한 상황은 자녀의 무의식에 이런 말을 남긴다. “넌 자극을 받으면 견디지 못하는 아이야.” 그러면 아이는 딱 그만큼의 자존감만 가지게 된다. 상처받을까 염려하기보다 아이에게 아무런 자극이 없을까를 두려워해야 한다. 자존감은 자극에서 출발한다. 김선호 서울 유석초등학교 교사, <초등 자존감의 힘>
김선호 서울 유석초등학교 교사, <초등 자존감의 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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