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쉼표토크 ③ 이동우와 재즈]
더 행복해질 거라는 그말 듣고…
8년 전 가수 웅산이 노래 권유
“돈·행사 말했으면 안 믿었겠죠
행복한 삶 이야기에 도전 결심”
“나, 눈을 감고 사랑을 본 사람”
‘희망 아이콘’ 환호에 억지웃음도 지었지만
재즈 뮤지션 비극적 삶 통해 재즈 참맛 느껴
비장애인 위주 방송 넘어
유튜브 등 콘텐츠 선보일 계획
당신의 오늘은 어떤가요? 몸과 마음의 지침을 당연하다 여기지는 않나요? ‘월간 쉼표토크’는 매달 첫주 월요일, 저마다의 방식으로 휴식과 위로를 찾는 문화예술인들을 소개합니다. 화려한 모습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평범한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귀 기울여 보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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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겸 재즈 보컬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이동우가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한 연습실에서 ‘왓 어 원더풀 월드’를 부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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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어느 날, 서울 홍대의 한 음악 연습실.
검은색 셔츠에 흰색 바지를 입은 그가 마이크 앞에 섰다. 한쪽 손을 주머니에 넣고 ‘무심한 듯 시크하게’ 입을 뗀다.
“아이 시 트리스 오브 그린~ 레드 로지스 투~아이 시 뎀 블룸 포 미 앤 유~ 앤 아이 싱크 투 마이셀프~ 왓 어 원더풀 월드~”(푸른 나무가 보여, 붉은 장미도. 그들이 당신과 나를 위해 만발했어.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를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중저음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두 평 남짓한 연습실이 금세 로맨틱한 무대로 바뀐다.
“세상이 사랑으로 가득차길” 바라며 온 마음을 재즈에 맡기고 있는 그, 바로 이동우다.
눈앞에서 그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니, 행복감이 밀려오면서도 마음 한켠이 저릿해진다.
그는 왜 재즈였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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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음반 <스마일>을 발매하고 서울 삼성동에서 공연하던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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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한번 해볼래요?”
2011년 어느 날.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프로그램 <한낮의 가요 선물 이동우, 신의석입니다>에 초대 손님으로 나온 재즈 가수 웅산이 문득 이런 제안을 했다. 초면에 친분도 없던 그가 “목소리가 재즈에 잘 어울린다”며 “마음만 먹으면 도와주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내가 재즈를 한다고?” 두세달 동안 가슴을 눌렀던 고민은 웅산의 이 한마디에 눈 녹듯 사라졌다. “오빠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예요.” 지난달 홍대 앞 연습실에서 만난 이동우는 “돈을 벌 수 있다, 행사를 뛸 수 있다 이런 얘기를 했으면 신뢰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은 행복해질 것이라는 꿈나라 같은 이야기에 한번 도전해보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재즈를 듣기는 했지만 잘 알지 못했던 그를 웅산은 부드럽게 때로는 혹독하게,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하며 가르쳤다. 재즈 가수의 도전은 발성, 호흡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것부터 시작됐다. 고음이 매력적인지 저음이 좋은지, 이동우만의 발성이 잘 묻어나는 노래는 무엇인지, 그의 음역대로 연습할 수 있는 곡은 뭔지 등등 기초부터 시작했다. ‘이동우의 재즈’ 찾기 훈련은 “1년 반 동안 웅산과 함께” 이어졌다.
하지만 음악을 이해하는 데 급급했던 그에게 재즈는 마음으로 파고들지 않았다. 그가 재즈를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된 데는 재즈 뮤지션들의 삶이 하나하나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인종차별주의자들에 시달린 빌리 홀리데이, 정신질환과 약물로 뼛속까지 녹아내린 버드 파월 등 그들의 인생이 마치 자신의 거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역사 속에 빛나는 ‘재즈 영웅’들의 인생은 하나같이 참담하고 비극적이에요. 그 부분이 저에게 가까이 다가왔어요.” 그들이 비극적 인생을 딛고 일어서 마침내 성공했기 때문에? 아니다. “제겐 슬픔, 고독 이런 건 딛고 일어서는 게 아니라 다독이며 계속 안고 가야하는 거예요. 어떻게 잘 가져갈까를 고민하는 거죠. 제가 말한 뮤지션들은 결국은 모든 비통함을 음악으로 다독거리며 사는 삶이었던 거죠. 재즈를 부르고 연주하며 잠시 그 슬픔을 잊는 것일 뿐.”
‘내게 슬픔은 계속 안고 가야 하는 것’이란 말은 그의 인생을 요약하는 한마디다. 그도 재즈 뮤지션 같은 인생을 살았다. 1993년 <에스비에스>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해 틴틴파이브 멤버로 활약하며 인기를 얻었던 그는 2004년 망막색소변성증 판정을 받고 점차 시력을 잃었다. 선천적 장애도 힘든데 후천적 장애야 오죽할까, 당연히 처음에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겼나 원망도 했고요. 술도 많이 마시고 괴로워도 했죠.” 아내가 뇌종양 수술을 받게 되자 그는 스스로 슬픔을 딛고 일어서야겠다고 결심했다. 첫 정규 재즈 솔로 음반 <스마일: 터닝 투 재즈> 발매를 시작으로 재즈 가수로서 자리매김하고, 연극과 영화에도 출연하고 라디오 진행까지 맡았다. ‘불편함’에 지지 않고 뛰는 그를 두고 사람들은 “희망의 아이콘” “도전의 상징”이라고 말하며 환호했다.
하지만 재즈 뮤지션들의 삶을 통해 재즈를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난 뒤에야 마음이 진짜 편해졌다고 한다. “그동안은 저도 가식이었던 거죠. 희망의 아이콘이라고 하니 그런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일부러 계속 웃기만 했어요. 정말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고 혹은 정말 그런 존재가 된 줄 알고 착각했죠. 그게 진짜 나의 모습은 아니었던 거죠.” 그는 “이젠 노래를 부르면 온 세상에 사랑이 가득 차 보인다”고 말했다. 웅산의 말처럼 행복해졌냐고 물으니 “만족스러운 것 같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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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는 재즈뿐 아니라, 드럼, 피아노 등 다양한 악기도 연주한다. 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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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눈을 감고 사랑을 본 사람”이라고 자신을 설명했다. 눈이 보일 때는 볼 수 없던 진실한 것들을 실명 이후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20년간 다녀서 익숙한 목욕탕이 유일하게 동행 없이 혼자 갈 수 있는 곳이에요. 앞이 안 보이게 된 뒤 어느날 목욕탕 휴게실에 갔더니 다들 돈 이야기만 하고 있는 거예요. 토할 것 같아서 3분을 못 버티고 그 자리에서 나왔어요. 돈도 중요하지만 집착하는 정도가 너무 심한 것 같았어요. 꽃, 나무, 사랑 이야기를 하면 왜 안 되는 걸까요?” 그는 “보일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보이지 않게 되면서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는 차별 등 사회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처음 재즈 음반을 내고 저를 인터뷰 한 방송사 뉴스에 이런 자막이 나가더라고요. ‘시각 장애인 가수 이동우’. 그걸 보고 박장대소 했어요. 골다공증 배우, 당뇨병 록 가수라고 하지 않잖아요?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하고 남녀를 구분 짓고 좌우를 나누면서 어떻게 통합을 애기할까요? 당장은 아니지만, 그런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동우는 한창 방송에서 잘나가던 때 불운을 겪으며 티브이 프로그램 등 일선에서 ‘본의 아니게’ 물러나게 됐다. 그는 “물리적인 한계를 가진 사람이 대중매체 특히 지상파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인 걸 잘 안다. 하지만 차근차근 준비해서 그 선입견을 깨면서 티브이가 비장이앤들만의 영역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우선은 유튜브를 통해 하고 싶은 콘텐츠를 마음껏 하려고” 준비 중이다. 재즈 가수로도 더 성장하고 있다. 10월에 제주 올레 축제에서 국외 뮤지션들과 콜라보 무대를 꾸미고, 재즈 공연도 꾸준히 연다. “재즈를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클럽 같은 것도 만들고 싶어요.”
그에게 전화를 걸면 영화 <록키> 주제곡이 흐른다. “나한테 전화를 건 사람이 잠시라도 힘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함께 “실명 이후 내게 연락하는 걸 조심스러워하는 이들에게 ‘나는 괜찮다, 힘내고 있다’며 부담을 줄여주고 싶은” 마음을 담은 선곡이라고 했다. “행동반경이 줄어든 게 답답하고 좋아하던 책도 많이 못 읽는 게 아쉽지만 어렵게 한발 한발 가는 인생에 사랑이 꽉 차 있다는 게 무척 소중하고 감사합니다.” “희망과 절망은 항상 동행한다”는 이동우는 재즈의 선율만큼 아름다운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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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재즈를 권한 웅산과 함께.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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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홍대 앞 연습실
음악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앤 아이 싱크 투 마이셀프 왓 어 원더풀 월드~ 예스 아이 싱크 투 마이셀프 왓 어 원더풀 월드~ 오 예!”(그리고 내가 생각하기를 얼마나 멋진 인생인가. 그래, 내가 생각하길 얼마나 멋진 인생인가. 오 그래!)
연습실의 공기가 감미롭다. 행복이 잔잔하게 흐른다.
누가 그를 보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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