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렉션을 준비하면서 그린 상상의 가지치기. 이렇게 옷과 음악과 무대의 연결고리를 이으며 하나의 쇼를 완성한다. 제너럴아이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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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최범석의 시선 25
얼마 안 남은 서울컬렉션을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지내고 있다. 6개월에 한 번, 일년에 두 번 있는 신작 발표회가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모르겠다. 여섯 달이 꼭 한 달처럼 느껴진다.
컬렉션을 준비하는, 길지 않은 이 순간만큼은 아주 집중을 잘해야 한다. 또 컬렉션은 옷만 만드는 게 아니기에 요즘은 오감을 전부 컬렉션 준비에 집중하려고 애쓴다. 연출도, 음악도, 구성도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에 있는 구상들을 현실화할 연출팀과 만나야 하고, 음악 역시 여러 가지로 들어 보면서 모은다. 그래서 요즘같은 때, 그 1년의 두 번은 어제 내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뭘 먹었는지도 기억 못할 정도로 정신없이 지낸다.
서울 컬렉션 준비로 오감 집중
힘든 건 나뿐만이 아니다. 쇼를 준비하는 스태프들도 새벽까지 일한다. 디자이너들에게 퇴근을 하라고 성화를 해도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으니 누군가 약속이 있다고 먼저 나가면 그 친구가 역적이 되는 분위기다. 그러니까 나는 이들에게 더 미안해지고 직원들 모두 퇴근하기 전까지는 먼저 퇴근할 수가 없다. 결국 새벽이 다 되어서야 혼자 있는 시간이 되는데, 그 시간이 디자인이 가장 잘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시간에 집중을 하다 보면 걱정은 되지만 컬렉션이 성공적일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이번 컬렉션의 연출 주제는 ‘양치기 소년’이다. 지난 컬렉션이 끝나고 문득 머리에 그려진 생각이다. 내 디자인은 이렇게 떠오른 생각을 낙서처럼 글로 풀어 가지치기를 하면서 진행된다. 2010년 17살의 양치기 소년은 어려서부터 혼자 지내기를 좋아했다. 그 소년의 이름은 너즐리인데 너즐리는 양과 놀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혼자 놀기를 좋아하고 성격은 이중성이 있다. 낮에 양을 치고 돌아오면 자기 방에 올라가 옷을 입고 거울을 보며 지낸다. 너즐리는 겹쳐 입기를 좋아하고, 머플러나 장갑 같은 액세서리도 좋아하는데, 무엇보다 모자를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밖에 나갈 때는 항상 모자를 쓴다. 너즐리의 비밀은 늑대와 아주 친한 아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검은 늑대와 친한 걸 알아챌까 봐 블랙은 입지 않는다. 그리고 너즐리는 어릴 때 헤어진 부모를 만나고자 늑대와 음모를 꾸민다. 동네를 혼란에 빠뜨린 다음 부모를 찾아나서 도시로 떠나는 게 소년의 꿈이다.
최범석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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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가 테마가 되고, 상상이 공부가 되고… 이런 내용이 낙서처럼 연습장을 채워 나간다. 아직 너즐리가 도시로 떠날지 부모를 만나게 될지는 모른다. 연출 방향이 확정되면 이 이야기의 결말도 정리가 되겠지. 지난 컬렉션은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재즈라는 음악 장르를 테마로 삼았는데, 이번에는 동화 쓰기처럼 전개한 낙서로부터 테마가 나왔다. 이렇게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컬렉션을 풀어가는 게 즐겁다. 이런 과정이 디자이너인 나에게는 공부가 된다. 상상이 공부가 되고 그 공부가 쌓여서 국외 컬렉션 준비에도 밑거름이 되리라 상상한다. “상상하지 못하는 것은 절대 이뤄지지 않는다”고 누군가 말했다지. 그래서 난 항상 상상을 한다. 근사한 옷, 멋진 컬렉션, 그리고 나의 밝은 미래에 대해서 …. 최범석 패션 디자이너·제너럴아이디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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