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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2.20 22:10 수정 : 2008.02.20 22:16

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해도 직장에 들어가면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패션 디자인 콘테스트 리얼리티쇼인 〈프로젝트 런웨이〉. 온스타일 제공

[매거진 Esc] 최범석의 시선 24

이번 학기부터 학교에 강의를 나간다. 처음 하는 정규 강의인데다 체계적으로 배운 것이 없어서 좀 부담스럽다. 그래서 선배들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우리 회사 디자이너들을 가르칠 때처럼 그냥 내가 하던 방식으로 해보라고 한다. 그러니까 더 어려워진다. 그리고 준비를 하면서 나 역시 배우는 것들이 많다.

디자인 회사들이
신입을 잘 안 뽑는 이유

나는 그냥 내가 일하며 배운 것들, 그러니까 학교가 아니라 사회에서 배운 것들, 그래서 바로 실무에 들어갈 수 있는 내용들을 가르치고 싶다. 사실 많은 디자이너들이 4년제 대학에서 전공을 하고 회사에 들어가면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게 순리처럼 돼버렸다. 그건 문제다. 프로가 되기 위해 4년이나 2년을 학교에 다니고 교수나 친구들과 매일같이 그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텐데 회사에 들어가면 작업지시서 하나를 못 꾸며서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 가르쳐 놓아서 일 할 만하면 다른 회사로 새 둥지를 트는 경우가 아주 많다. 그러니까 디자인 회사들은 신입을 잘 뽑으려고 하지 않는다.

대학에서 운동을 하던 선수들은 졸업을 하면서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 선수단에 입단한다. 뛰어난 학생들은 일찌감치 스카웃 제의를 받기도 한다. 패션디자인계도 파리나 뉴욕의 디자인 학교에서 상위권에 있는 학생들은 이런 제안을 받는다. 그런데 한국 패션 디자인계에서는 스카우트라는 건 있을 수 없다. 현장에서 바로 뛸 수 있는 체계로 교육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내 홈피나 메일로 진로상담들을 해온다. 하지만 난 답을 해줄 수가 없다. 어떤 성향인지, 어떤 버릇이 있는지, 주변 환경이 어떤지 등을 전혀 모른 상태로 상담을 해주는 건 점쟁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건 정보나 지식이 아니라 태도에 관해서다. 얼마 전 특강에 가서도 디자이너가 되기 전에 나보다 나은 사람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경쟁하라는 말을 했다. 며칠 전에 디자이너 정욱준씨에게 전화를 걸어 파리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온 것을 축하했다. “이번에 갭 컬렉션 매거진에 형 옷들이 중간쯤 나왔어. 이 자리에 한국 디자이너가 나온 건 처음일걸? 형이 너무 자랑스럽다. 나도 열심히 해야겠는걸.” 나의 축하에 형은 해외 컬렉션을 준비하는 것에 대한 조언과 격려를 아주 꼼꼼하고 든든하게 해줬다.


‘파리 컬렉션’에서 정욱준씨가 받은 질시

최범석의 시선
욱준이 형 같은 훌륭한 디자이너들이 먼저 치고 나가는 게 나 같은 후배들에게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형이 파리 컬렉션에 나갈 때 현지 언론들이 일본 사람인 줄 알고 홍보를 해줬다는 둥, 한국인인지 알 수 없게 이름을 준제이로 바꾼 게 먹혔다는 둥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이런 태도는 결국 제 살 깎아먹기다. 패션 디자인계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나의 이야기들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현역들이나 미래의 디자이너나 주변의 실력 있는 동료들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거기 산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산을 넘어갈 수 있는 용기와 힘도 생기는 거니까 말이다.

최범석 패션 디자이너·제너럴 아이디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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