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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25 06:00 수정 : 2019.10.25 20:46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돋이를 자랑하는 듄45. 나미브 사막 안에 있으며, 곡선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사진 황우창

[책&생각] 황우창의 어디서든, 음악
⑭ 음악도 잠시 숨을 고르는 곳, 나미비아

신이 만든 거대한 예술 작품을 인간의 음악으로
형상화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지도 모르겠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라단조 ‘샤콘’이라면 혹시라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돋이를 자랑하는 듄45. 나미브 사막 안에 있으며, 곡선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사진 황우창

명색이 ‘어디서든 음악’이라는 제목을 달고 연재를 하지만, 세상 곳곳을 돌다 보면 순간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장소들이 종종 등장한다. 침묵조차 하나의 음악이 되는 곳. 신이 빚어낸 위대한 작품 앞에서, 음의 고저와 장단으로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만든 예술이 무용지물이 되는 곳. 글쓴이에게 그런 곳이 몇 군데 있다. 이를테면 에토샤 국립공원 입구에 있는 오카우쿠에요 물웅덩이의 장관이라든지, 나미브 사막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듄45나 데드블레이가 그렇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마치 방금 보았던 양 눈앞에 더욱 선명하다. 기억은 시간 속에 색이 바래고 희미해질 법도 한데.

아프리카 남부에 위치한 나미비아는 국가로서 역사가 매우 짧다. 그러나 이 나라 안에 있는 명소들은 어쩌면 태초의 모습을 지금까지 간직한 몇 안 되는 소중한 곳들이다. 오죽했으면 나라 이름조차 이 사막의 이름을 따서 지었을까.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이 나미브 사막의 명소 네 군데를 들러보기 위해, 나미비아의 수도 빈트후크에서 남서쪽 사막 지대를 향해 한나절을 달렸던 것을. 초원 지대에서 사막으로 서서히 변해갈 때, 수천만년 전 화산 용암이 불쑥 융기하는 바람에 이상하다 못해 비현실적으로 단층이 휘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목적지는 세스림 국립공원이다. 듄45와 데드블레이, 그리고 세스림 캐니언과 엘림 듄이 모두 모여 있는 이곳까지는 거의 여섯 시간 정도를 투자해야 한다.

네 시간 정도 달리다 보면, 마을이라고 부르기에도 머쓱한 조그마한 휴식처가 중간에 등장한다. 이름조차 고독함이 잔뜩 묻어 있다. 솔리테어. 차량에서 내려 건조한 공기를 마시다 보면 훅 하니 치고 들어오는 뜨거운 바람이 본격적으로 사막 안에 들어와 있음을 알린다. 잠시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면, 어딘가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분명 처음 와 본 곳임에도 말이다. 일행 중 한 분이 조심스레 글쓴이에게 질문을 한다. “황 선생, 황량한 사막 한복판에 카페 하나 등장하는 그 영화 이름이 뭐였죠? 여자 목소리가 묘하게 등장하는 주제가도 등장하는 영화.” 아마 <바그다드 카페>를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렇다면 노래는 제베타 스틸이 부른 주제곡 ‘콜링 유’일 것이다. 나미브 사막을 가다가 만나는 조그마한 마을 솔리테어는, 마치 영화 <바그다드 카페>에 등장하는 그 카페 주변과 매우 닮았다. 그래서 아마도 낯설지 않았나 보다. 하루 종일 바흐 평균율 다장조 프렐류드만 연습하던 카페 주인을 생각하니, 바흐 평균율도 나쁘지 않다. 잘 어울린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닮은 마을

하지만 음악은 여기까지다. 서서히 초목들의 가지들과 초록색 잎사귀들도 눈에 띄게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등장하는 모래언덕들의 색깔이 점점 붉게 물든다. 해돋이를 보겠다고 일찌감치 출발했건만, 이미 날은 훤히 밝아서 듄45의 언덕 꼭대기에서 보기는 이미 틀린 것 같다. 대신 붉은 모래언덕들이 햇살을 받으면서 서서히 핑크빛, 그리고 이어서 황금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어 다시 한번 진한 붉은색으로 모래언덕들의 색이 통째로 변해간다. 기사 겸 가이드를 맡고 있는 나미비아 현지인 친구가 으쓱대며 한마디 거든다. “나미브 사막의 모래는 철과 보크사이트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세월이 흘러 저렇게 붉은색으로 변해버렸어요. 그리고 하루 종일, 일년 내내 시시각각으로 모래언덕 색깔이 변하죠. 해 뜨기 직전부터 해가 진 직후까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돋이를 볼 수 있다는 듄45를 지나면, 나미브 사막 안쪽으로 더욱 깊게 들어간다. 모래 위를 그나마 안전하게 달릴 수 있다는 사륜구동 지프로 갈아탄 지 오래. 소서스블레이라고 불리는 안쪽은 이 지프조차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약 1킬로미터 정도는 모래 위를 직접 걸어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천년 이상 그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다는 지구 위의 외계로 간다. 데드블레이라는 곳이다. 수백만년 전까지 바다였지만 뜬금없이 솟아나는 바람에 사막 한가운데에 하얗게 석회와 소금을 머금고 있는 곳이란다. 이쯤 되니 머릿속이 하얗다. 귀에 꽂은 이어폰과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자꾸 시야를 가린다. 과감하게 침묵을 선택했더니 귀에서 낯익은 선율들이 환청으로 들리기 시작한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7번 2악장이다. 아마도 강렬하게 뇌리에 남은 영화, 타르셈 싱의 <더 폴> 탓이리라. 우리나라에서는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던 영화에서, 도입부에 알렉산드로스 왕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무대로 이 데드블레이가 등장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컴퓨터그래픽 처리를 한 것 같은데… 그런 곳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붉은색 모래언덕과 새파란 하늘이 묘한 대비를 이루는 초현실적인 자연. 그리고 그 실체를 확인한 순간, 영화 속 장면과 어우러지는 주제가 ‘베토벤 7번 2악장’이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저 아름답고 비현실적인 공간을 침묵 속에서 감상을 하려는데 환청이라니. 오랫동안, 강렬한 햇살 아래에서 선글라스를 벗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환상의 색채와 모양을 오랫동안 눈에 담고 싶어서이다. 아니나 다를까, 일행 중 한두명 역시 함께 선글라스를 벗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색에 민감한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세상의 또 다른 끝에서 사람들은 태초의 아름다움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 사진? 그곳에서 사진이란 자신의 기억력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문명의 이기일 뿐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곳을 사진으로 담아도, 돌아오면 그때의 그 느낌은 분명 아니다. 사진을 통해 또 다른 예술 창작을 하는 행위와는 결이 약간 다르다. 글쓴이가 어지간하면 ‘셀카’를 찍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 눈으로 바라보는 저 아름다운 광경 속에서, 내가 거울을 바라보고 있지 않는 이상 사진 속에 내 얼굴이 등장하는 것만큼 이상한 일이 없다. 옆에서 또 다른 일행들이 우르르 모여 나 여기 왔다 가요 하고 ‘인증 사진’을 왁자지껄 찍는 모습이 영 탐탁지가 않다. 하지만 어쩌랴. 사람마다 즐기는 방법과 취향이 모두 다른 것을. 그저 조용히 나만의 방식으로 이 아름다운 신의 선물을 즐긴다.

나미비아 수도 빈트후크와 북쪽 에토샤 사이에 자리잡은 핑거클립. 용암지대가 융기하면서 비현실적인 크기의 바위가 사막 지대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사진 황우창

바흐의 샤콘이라면 어떨까

우리나라에서 나미비아로 여행을 갈 때, 보통 빅토리아폭포 3개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묶는 경우가 많다. 잠베지강을 따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짐바브웨, 보츠와나, 그리고 잠비아에서 빅토리아폭포 투어를 진행한 뒤, 요하네스버그 또는 케이프타운을 중심으로 하는 남아공 투어를 마치고 나미비아로 이동하는 식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요하네스버그를 생략한다든지, 또는 이동 순서를 비행 구간에 따라 바꾸는 경우도 가능하다. 물론 육로로 이동하는 때는 경로 선택의 폭이 넓지만 구간이 매우 길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다 도로 사정이 매우 열악할 수도 있다. 한 예로, 나미비아의 수도 빈트후크에서 서쪽 세스림이나 북쪽 에토샤 국립공원을 선택해 이동할 경우, 세스림과 에토샤를 잇는 구간 도로가 없다는 게 함정이다. 즉 에토샤에서 세스림으로 이동한다면 왔다 지나간 길을 다시 거꾸로 나와야 한다. 빈트후크를 다시 한번 들어가 하룻밤을 묵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배낭여행자라면 이동 경로를 고려할 때 매우 신중해야 하며, 마음먹은 것과는 달리 에토샤와 빈트후크 사이에 있는 힘바족 마을이나 핑거클립을 일정상 하나둘쯤은 포기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도 발생할 것이다. 물론 나미브 사막에 무게중심을 둔다면 에토샤조차 포기하고, 대신 왼쪽 스와코프문트(스바코프문트)로 이동해 편안하고 안락한 나미비아의 또 다른 모습을 즐길 수도 있다. 이것은 모두 오로지 여행자가 무엇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달렸다.

나미비아 북부 에토샤 국립공원 내 오카우쿠에요의 해넘이 광경. 주변에 ‘정숙’이라는 안내판이 곳곳에 붙어 있다. 사진 황우창

말이야 쉽지만, 사실 에토샤를 포기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파리 게임 드라이브야 그렇다 치더라도, 국립공원 입구에 자리 잡은 오카우쿠에요 해넘이의 장관을 실제로 만나기 전까지는 그 아름다움을 상상할 수가 없다. 나미비아를 여행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이 에토샤의 물웅덩이를 보기 위해 날아왔다는 사람들도 꽤 많다. 만일 글쓴이가 다시 한번 나미비아를 방문하게 된다면, 에토샤 국립공원 오카우쿠에요의 해넘이를 보기 위해서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곳이야말로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곳이다. 어디서든 음악이라지만, 때로는 신이 만든 거대한 예술 작품을 인간의 음악으로 형상화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어쩌면 유일하게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필적할 만한 음악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라단조, ‘샤콘’이라면. 해넘이의 장관이 모두 지나고 어둠이 깔린 뒤, 물웅덩이에서 목을 축이기 위해 어디선가 나타난 코끼리 두 마리, 그리고 반대편에 기린 두 마리가 보인다. 그리고 귓가에 들리는 샤콘의 멜로디는, 어쩌면 유일하게 인간이 제안할 수 있는 소리의 예술이 아닐까. 헨리크 셰링이든, 힐러리 한이든, 존 홀러웨이든, 그 누구의 연주라도 좋다. 글쓴이의 선택은 올레크 카간이다. 이렇게 또 한번, 대자연 앞에서 글쓴이는 어디서든 음악을 듣고 느낀다. <끝>

음악평론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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