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황우창의 어디서든, 음악 ④코르시카 , 음악 속에서 질곡의 역사를 읽다
이들의 음악에는 힘이 있으면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감성이 있다. 그것을 한의 정서로 부르든 그리움의 정서로 부르든 , 인간 본연의 정서에 호소하는 음악임에는 틀림이 없다 . 때로는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돌이켜볼 때 한편의 서사시와 같이 장엄할 때도 있다 .
한겨울이 살짝 지난 2월 첫날, 여행자의 마음은 벌써 햇살 따스한 봄날로 날아가 있다. 그립지만 조금만 참자. 보랏빛 라벤더가 코끝을 자극하는 들판과 살랑거리는 바람, 그리고 멀리 바다가 보였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새파란 바다가 좋을 것 같다. 그런 곳이 있다. 봄날 지중해의 바다. 유럽의 휴양도시 니스와 칸이 있는 남프랑스 해안. 새파란 바다 색깔 때문에 동네 별명도 ‘푸른색 해안’(Côte d'Azur) 아니던가.
봄날의 남프랑스가 그립다
|
칸 항구의 요트들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
그곳 사람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프로방스(Provence)라고 부른다. 파란 바다색과 함께, 보라색은 프로방스를 상징하는 색깔이다. 끝없이 펼쳐진 라벤더 밭을 상상하다 보면 코끝으로 그 향기가 전해 내려오는 것 같다. 향기로 따지자면 라벤더뿐이랴. 꽃향기와 과일 향기 풍부한 와인도 프로방스를 대표한다. 남서쪽 론강을 따라가다 보면 강가에는 유명한 와이너리가 즐비하고, 아비뇽 유수로 유명한 도시조차도 교황이 마셨다는 샤토뇌프뒤파프라는 와인 이름과 연관이 깊다. 굳이 론강 유역이 아니더라도, 프로방스에는 해안가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 방돌처럼 그들만의 독특한 와인을 생산하는 곳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와인 생산지가 많다는 이야기는 프로방스의 지형 특성을 감지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건기가 확실하고, 때로는 척박한 땅도 있지만 이곳 프로방스 사람들은 그 자연에 순응하면서 억척스럽게 살아갔을 것이다. 영화 <마농의 샘>에 등장하는 이브 몽탕이나 제라르 드파르디외처럼.
|
아비뇽 교황청. 게티이미지뱅크
|
와인과 미술, 영화 그리고 문학
굳이 와인이 아니더라도, 관심사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프로방스 지방은 그 다양한 모습을 여행자에게 선사한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위주로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는 왼쪽으로는 몽펠리에 바로 직전 카마르그나 베르동, 그리고 약간 위로 올라가 바로니 프로방살 등 자연공원들을 추천한다. 물론 지중해의 낭만을 즐기고 싶은 여행자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휴양 도시, 니스와 칸이 좋다. 파리를 비롯해 프랑스 북부 지방 사람들이 여름 휴가철이면 몰려들어 북적대는 도시들이다. 만일 미술을 비롯한 문화 기행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피카소와 샤갈, 그리고 장 콕토의 기념관을 둘러봐도 좋겠다. 세잔과 고흐 역시 이 프로방스 지방을 사랑한 사람들인데, 빨래하는 여인들을 모델로 한 고흐의 명화 속에서도 우리는 프로방스를 경험할 수 있다. 음악을 좋아한다면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들이 페스티벌 공연에서 명연주를 남긴 엑상프로방스를 추천한다. 이쯤 되면 프랑스 남부 지방의 매력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영국 작가 피터 메일은 이 지역만의 매력에 흠뻑 빠진 사람 중 한명이다. 오죽하면 작정하고 프로방스로 이주해 눌러앉아 살면서 <나의 프로방스>
같은 글을 남겼을까. 이맘때쯤 프로방스 현지에 불어닥친다는 혹한의 바람 미스트랄조차도 남프랑스의 아름다움을 가리지는 못할 것이다.
|
아를 랑글루아 다리. 게티이미지뱅크
|
그러나 안타깝게도 글쓴이의 기억 속 프로방스는 라벤더의 보라색도 지중해의 파란색도 아닌 회색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것도 대부분 1월의 회색빛이다. 미스트랄을 살짝 비껴간 우중충한 거리와 하늘. 여행자로서가 아니라 업무 출장으로 방문해야만 했던 기억 탓이다. 칸을 떠날 때쯤이면 심신은 너덜너덜해진다. 그때마다 글쓴이는 칸 성당 전망대를 오르곤 했다. 지중해의 수평선을 바라면서 몇번이고 다짐한다. 다음에는 참된 여행자로서,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이곳을 다시 오리라. 기왕이면 저 수평선도 반드시 넘어가보리라. 비행기로 10분, 배로 약 한시간 거리에 있는 코르시카. 그곳은 비록 프로방스가 아니지만, 코르시카야말로 남프랑스의 매력, 지중해의 끝없는 아름다움을 모두 담고 있으니까. 코르시카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그들만의 음악, 무반주 다성 합창이 존재하는 곳이다.
|
샤갈미술관 입구. 황우창 제공
|
유럽 속 낯선 땅 코르시카
프랑스 사람들은 ‘코르스’(Corse)라는 이름으로 부르지만, 현지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활 터전을 ‘코르시카’(Corsica)라고 부른다. 관습이나 정서 역시 프랑스보다는 이탈리아 북부 사람들과 더 가깝다.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정교하게 섞였다고 해야 할까. 실제로 코르시카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은 ‘프랑스 사람’이 아니라 ‘코르시카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코르시카에도 프랑스는 물론 유럽 사람들이 인정하는 국기와 국가가 있다. 코르시카 국기에는 까만 곱슬머리에 흰 머리띠를 두른 젊은 청년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 이 청년의 모습은 분명히 전형적인 유럽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 흡사 오셀로를 연상시키는 무어인을 닮았고, 강인하면서도 정이 많은 젊은이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코르시카가 독립국가로 인정받은 적은 역사상 단 한번도 없었다. 역사가들은 코르시카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한줄로 요약한다. “코르시카는 자주 정복되었지만, 그들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
코르시카 남성 무반주 합창의 전통을 가장 잘 계승했다고 평가받는 ‘아 필레타’의 대표 음반 <수난곡>(Passione). 황우창 제공
|
실제로 코르시카 사람들을 만나보면 ‘프랑스 사람’이 아니라 ‘코르시카 사람’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하면서, 드넓은 지중해의 푸른 바다처럼 소박하고 순수한 마음을 지닌 따스한 모습을 종종 보여주곤 한다. 비록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침략과 수탈을 당한 어두운 역사를 지닌 사람들이지만, 코르시카 사람들은 항상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산다. 여기에 남부 유럽 국가나 민족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낙천성이 그들에게는 있다. 덕분에 이들의 음악에는 힘이 있으면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감성이 있다. 그것을 한의 정서로 부르든 그리움의 정서로 부르든, 인간 본연의 정서에 호소하는 음악임에는 틀림이 없다. 때로는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돌이켜볼 때 한편의 서사시와 같이 장엄할 때도 있다.
|
2008년 내한 공연 당시 ‘아 필레타’의 멤버들 전원이 음반에 남겨준 친필 사인?들. 황우창 제공
|
코르시카의 역사는 침략과 저항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뿐만 아니다. 이들의 역사에 등장하는 이름만 해도 그리스, 카르타고, 켈트, 로마 등이 있다. 종교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코르시카 역사 속에는 켈트 문화의 흔적도 있고, 무어인을 통해 받아들여야만 했던 이슬람 문명의 형식도, 그리고 이탈리아를 통해 받아들인 가톨릭 문화의 음악 형식도 존재한다. 이런 문화들의 자양분을 골고루 받아들인 코르시카 음악은 종교음악과 세속음악이라는 두개의 큰 줄기로 나뉘게 된다. 그리고 그 두 양식은 ‘무반주 다성 합창’으로 귀결된다.
교회 음악 차용한 민요
무반주 다성 합창은 바다라는 대자연에 순응하고 때로는 맞서 싸워야 하는 코르시카 사람들이, 협동심과 단결력을 얻어내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여성보다, 배를 타는 남성들이 함께 모여 출항 직전 ‘오늘도 무사히’를 합창으로 기원한다. 일을 나가는 뱃사람들이 딱히 악기 반주를 할 이유는 없었으리라. 이것이 바로 코르시카 합창이 남성 무반주로 발전하게 된 환경적 요인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코르시카 사람들은 기왕이면 좀 더 체계적이고 정돈된 형태로 노래하기를 원했다. 그들의 선택은 바로 그들이 믿는 로마 가톨릭의 신에게 바치는 종교음악 형식이었다. 그래서 코르시카에서는 민요임에도 ‘미제레레’ ‘키리에’ ‘글로리아’ 등등 유럽 교회음악의 제목이 차용된다. 얼핏 들으면 꽤 투박한 교회음악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이건 엄연히 코르시카 사람들의 전통음악이자 민요이다. 물론 ‘바기엘라’ ‘라멘투’ ‘마드리갈’ 등 교회음악 형식을 따르지 않는 세속음악의 순전한 형태도 있다.
고전음악 속 종교음악이 보통 4성부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코르시카 합창 음악은 3성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일 높은 음역부터 내려가면서 ‘세콘다’ ‘테르자’ ‘바쉬’로 불리는데, 여기에 코르시카 사람들은 특정한 이름을 붙이지 않고 모든 음역을 넘나들면서 자유롭게 노래하는 독주자를 한명 추가한다. 보체 디 코르시카, 아 필레타, 칸타 우 포풀루 코르수 등이 모두 이 형식에 따르고 있다.
|
코르시카 남성 무반주 합창의 정점 ‘보체 디 코르시카’의 대표 음반 <폴리포니스>. 음반 제목은 다성 합창들이라는 뜻이다.? 황우창 제공
|
물론 코르시카에도 남성 무반주 합창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기타 반주에 구성지게 홀로 노래를 부르는 마리스 니콜라이 같은 여성 가수도 있고, 이 무브리니처럼 코르시카 음악을 대중화해서 국제적으로 널리 알린 가수들도 있다. 하지만 코르시카 음악의 진수는 역시 남성 무반주 합창이다. 그 깊은 울림은 수평선 너머 회색빛 칸에도 다다른다. 그리고 코르시카를 그리워하는 여행자의 마음을 지금도 흔들어놓곤 한다.
음악평론가, 작가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