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황우창의 어디서든, 음악
③ 이베리아반도의 유대인
가사와 제목은 우리가 흔히 스페인어라고 부르는 카스티야어이지만, 정작 이 구구절절한 가사를 쓰고 음악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유대인이었다. 디아스포라는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강제로 이베리아반도를 떠나 또다시 유랑해야 했고, 만든 사람은 떠나고 없는 이베리아반도에서 이 노래만 덩그러니 남아 후대에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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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세비야에 있는 알카사르 궁 입구. 원래는 무어인들의 군사기지였는데, 이사벨라 여왕이 그 아름다움에 반해 철거하지 않고 원형을 유지해 휴양지로 사용했다. 기독교 문화권에 남아 있는 아름다운 이슬람 문화유산 중 하나. 황우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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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을 마무리할 즈음, 한겨레신문사 산하 테마여행팀에서 문의가 왔다. 올해 상반기 테마여행 가운데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음악 탐방 여행이 4월에 기획되어 있단다. 목소리만 들어도 반가운 테마여행팀 팀장님이 글쓴이에게 동행 가능 여부를 물어본다.
쇼팽의 나라 폴란드. 그리고 피아노와 발레의 나라 우크라이나. 키예프야말로 발레의 메카이자 러시아 피아니즘 계보에 커다란 획을 긋는 도시이고, 민족주의 작곡가 무소륵스키가 <전람회의 그림>에서 ‘키예프의 큰 대문’이라는 부제로 모음곡의 일부를 구성했던 지명이며….
잠깐. 고전음악 가득한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라니.
기독교, 이슬람과 공존한 이베리아 유대인
다시 폴란드부터. 로마 가톨릭 국가이자 십자군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나라. 유럽 종교의 유산을 북쪽 발트 삼국으로 전수한 나라. 제정 러시아와 나치 독일, 그리고 스웨덴과 무력으로 겨루어봤던 나라. 이번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생각해본다. 동방 정교회 국가로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문화의 가교. 제정 러시아 이후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되었다가 다시 독립하면서 격동의 근대사를 보냈던 나라. 이 두 나라에서 심정적 공통점을 글쓴이는 발견한다. 순간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이 두 나라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유럽 전역의 역사적 흐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쇼팽을 다시 들어보자. 무소륵스키를 다시 들어보자. 이들의 음악을 고전 음악으로만 규정하기에는 그 속에 담긴 담론이 크다. 고전 음악이든 월드뮤직이든 장르는 관계없다. 좋은 음악 속에는 그들만의 역사와 전통이 담겨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 담긴 정서를 공감한다. 벌써 가슴이 뛰고 마음은 그곳으로 가 있다. 바르샤바로, 키예프로. 기왕이면 오데사의 계단도.
지난 회 연재에서, 글쓴이는 문화와 문화가 교차하는 지역을 선호한다고 언급했다. 2월14일에 떠나는 문화 탐방 여행 요르단의 페트라가 그렇고, 유럽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오랫동안 공존한 이베리아반도도 좋은 예가 될 것이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여행 역시 문화가 교차하는 지역을 경험하는 흥미로운 문화 체험이 될 것이다. 이 두 나라는 로마 가톨릭 문화와 동방 정교회가 공존하고, 유럽 문화와 아시아 문화가 서로 교류하던 완충 지대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런 지역들은 다른 어떤 지역들보다도 풍성한 문화와 유산을 물려받은 곳이다. 물론 때로는 무력 충돌이라는 역사나 비극의 서사를 물려받기도 했지만. 우리는 당시 사람들이 남긴 기록을 때로는 구전으로, 때로는 글로 확인할 수 있다. 그 가운데에는 전설, 민담이나 설화로 남아 있는 것들도 있고, 일부는 민요나 그와 비슷한 음악 형태로 남아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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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가수 마리아 살가도가 부른 ‘안녕 내 사랑’을 비롯해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월드뮤직 대표곡들을 엄선해 모아놓은 편집 음반. 황우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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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국가는 남아프리카 공유재산
이베리아반도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15세기 말엽부터 전해 내려오는 ‘Adio Querido’(아디오 케리도: 안녕 내 사랑) 같은 민요는, 1492년이라는 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1492년은 보통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해로 알려져 있지만, 이베리아반도에서는 이사벨라 여왕이 ‘레콩키스타’, 즉 국토 수복 운동을 완성한 해이기도 하다. 카스티야 왕조가 이슬람계 나스르 왕조를 이베리아반도에서 몰아내면서, 기독교 국가이자 유럽 국가의 정통성을 회복한 해로 역사는 기록한다. 그러나 당시 이베리아반도에 거주하던 유대계 유목민들은 1492년에 정착지를 강제로 떠나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야 하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구구절절하게 담아냈다.
가사와 제목은 우리가 흔히 스페인어라고 부르는 카스티야어이지만, 정작 이 구구절절한 가사를 쓰고 음악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유대인이었다. 디아스포라는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강제로 이베리아반도를 떠나 또다시 유랑해야 했고, 만든 사람은 떠나고 없는 이베리아반도에서 이 노래만 덩그러니 남아 후대에 전해졌다. 유대인들이 아니라 카스티야 후손들에게. 만일 ‘안녕 내 사랑’이라는 이베리아반도의 민요 속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노래를 그저 스페인 민요 정도로만 이해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정서를 영원히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할 것이다.
글쓴이는 이베리아반도에서 이런 민요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에 주목하고자 한다.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 그리고 여기에 유대계 유목민들이 공존하며 살 수 있었던 이베리아반도만의 오랜 전통과 특징 때문이다. 유럽 사람들과 아프리카 북부 무어인들이 눈독을 들였던 유럽 끝자락 반도. 기독교 문화권 사람들이 이슬람 문화권 사람들로부터 끝내 지켜내려 했던 지역이 바로 이베리아반도였다. 이처럼 월드뮤직은 우리가 음악이라고 부르는 것들 가운데 역사적 사실 또는 역사에 기반을 둔 관습을 꽤 많이 담고 있는 지역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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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케이프타운에 있는 커스텐보슈 식물원은 원래 영국인들이 식민지 개척 차원에서 제국주의의 위대함을 자랑하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이제 입구에서 관광객을 맞이하는 첫번째 조형물은 넬슨 만델라의 동상이다. 황우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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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는 그 자체가 거대 교차점
이 역사적 유산을 염두에 두고, 지역 음악이라는 개념에 지리적 특성을 적용해보자. 코르시카나 크레타섬같이 작은 섬 하나로 국한시킬 수도 있고, 때로는 알프스 같은 산악지역 전역으로 넓힐 수도 있다. 아프리카 남부 전역을 직선으로 그어진 국경선을 무시하면서 넓게 살펴볼 수도 있다.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가로 알려진 ‘Nkosi Sikelel’i Africa’(은코시 시켈렐리 아프리카: 신이여 아프리카를 축복하소서)는 인종차별 정책이 종식되기 훨씬 이전부터 남아공을 구성하는 모든 이들이 단결할 때마다 부르던 노래였다. 코사와 줄루처럼 토착 원주민들 가운데에는 옆 나라 나미비아나 모잠비크, 레소토 등에 상당수 거주하고 있는 부족도 많다. 즉 이들은 언어와 문화 모두 공유하지만 여권 색깔만 다르다. 하지만 유독 남아공 사람들은 불의에 항거할 때마다 이 노래를 모두 함께 불렀다. 1977년 스티븐 비코 살해사건 때, 원주민들은 물론이고 네덜란드에서 넘어온 보어인들이나 영국계 사람들도 모두 모여 이 노래를 함께 불렀다. 이후 아파르트헤이트를 넘어 남아공 사람들이 결국 승리와 자유를 쟁취하면서, 이 민요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노래가 되었다. 이 사실은 월드뮤직이 현대사를 반영하는 노래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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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국민 가수 메르세데스 소사가 안데스 문화권의 정신적 대부 아타우알파 유팡키의 노래들을 엄선해 녹음한 음반. 황우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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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음악이라는 개념의 규모를 넓히다 보면, 심지어 우리는 라틴 아메리카처럼 대륙 자체에 이 개념을 적용할 수도 있다. 라틴 아메리카는 대륙 자체가 토착 문화와 유럽 문화가 만나는 거대한 교차점이다. 월드뮤직 애호가들 사이에 회자되는 칠레의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의 일대기에서 우리는 격변하는 칠레의 현대사를 읽을 수 있고, 아르헨티나의 국민가수 메르세데스 소사를 통해 아르헨티나 현대사의 모순과 슬픔을 체험할 수 있다. 또한 아타우알파 유팡키를 통해 안데스 문화의 역사와 전통이 어떻게 현대사에 접목되었는지를 엿볼 수도 있다. 이렇게 음악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를 읽는 순간, 우리는 호세 마르티와 시몬 볼리바르의 위대한 정신에 다가가기도 하고, ‘La Cucaracha’(라 쿠카라차) 같은 유쾌한 가락 속에 ‘바퀴벌레’라는 해괴한 제목의 속뜻, 그리고 멕시코 사람들이 불의에 대항한 역사를 읽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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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 있는 쇼팽의 무덤. 공동묘지 페르 라셰즈에는 쇼팽을 포함해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 에디트 피아프와 짐 모리슨 등 대중음악 가수들도 영면한 곳으로 유명하다. 황우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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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은 폴란드와 프랑스 둘 다 사랑했다
이와는 달리, 오랜 세월 동안 크고 작은 국가들로 이합집산을 경험한 유럽 사람들은 그들만의 문화에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유럽 사람이라는 공통 정서를 공유하기도 한다. 포르투갈 전통 가창 장르 파두를 대표하는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노래에서 상징하는 ‘검은 돛배’는, 브리튼섬의 신화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나 독일인 바그너가 작곡한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언급되는 삶과 죽음의 상징과 닿아 있다. 배를 타고 멀리 떠난 그리운 사람이 살아 돌아오면 흰 돛을, 죽어서 돌아오면 검은 돛을 달고 오라는 이야기를 통해 유럽 사람들은 서로 다른 언어와 역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문화와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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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파두의 최고봉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대표곡 ‘Barco Negro’(바르쿠 네그루: 검은 돛배)가 수록되어 있는 음반. 황우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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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글쓴이는 문득 궁금해진다. 쇼팽은 조국 폴란드를 더 사랑했을까, 제2의 고향 프랑스를 더 사랑했을까. 글쓴이는 두 나라 모두라고 굳게 믿는다. 폴란드 사람이든 프랑스 사람이든 누구나 쇼팽을 사랑했던 것처럼. 쇼팽의 시신이 안치된 프랑스 파리의 공동묘지 페르 라셰즈에서도, 심장만 따로 옮겨져 안치된 폴란드에서도. ‘키예프의 큰 대문’을 사랑하는 사람이 꼭 우크라이나 사람이어야 한다는 법이 없듯이.
황우창 음악평론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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