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창의 어디서든, 음악 ① 신들의 나라 인도에서
황우창 작가가 ‘황우창의 어디서든 , 음악 ’ 연재를 시작한다. 황우창은 1990년대 말부터 월드뮤직 전문 작가와 DJ로 활동해왔으며 지금은 cpbc-fm <황우창의 음악정원>을 진행중이다. 지은 책으로 음악여행산문집 <나는 걸었고 음악이 남았네>가 있다. 앞으로 3주에 한번씩 세계 각지의 음악을 통해 역사와 문화를 탐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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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아요디야 지방 전통 무용 공연 장면. 농경 사회 구성원의 협력 방법을 춤으로 구현했으며, 무대 바깥에서 한 명이 노래하고 무대 위 무용수들이 합창하는 장면은 우리나라 전통 노동요를 연상시킬 만큼 꽤 닮았다. 황우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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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뉴델리의 밤은 들를 때마다 낯설다. 인천공항에서 오후에 여섯시간 반 정도 남쪽을 향해 비행을 마치고 나면, 세시간 반이라는 시차가 나는 인도는 어쨌든 장거리 비행에 살짝 지친 여행자에게 관대하고 편안한 곳은 아니다. 그게 첫 방문이든 두 번 이상 재차 방문이든.
세계에서 손꼽는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대한민국 여권을 소지하고 있어도, 인도에 입국할 때에는 사전에 비자를 발급받거나 최소한 현지 도착 비자를 얻어야 공항 밖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관광 목적으로 방문할지라도 예외는 없다. 일본이나 미국, 서유럽 등 어지간한 나라들을 무비자로 방문했던 여행자에게는 이 인도의 입국 절차가 새삼스레 까다롭고 번거롭게 여겨질 수도 있다. 자칫하면 인도라는 나라에 대한 첫인상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을 수 있음을 공항에서부터 경험하는 셈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하기로 한다. 수많은 작가들과 선배 여행자들이 이 나라에 대해 조언하지 않았던가. 인도에 대한 선입관을 버리라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독특한 매력이 존재하는 나라라고. 바라나시 갠지스 강에서 영혼을 울리는 감동을 받았다거나,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사방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신으로 섬기는 종교의 나라, 복잡한 역사만큼 사람마다 각자 독특한 정신세계를 이루고 사는 나라. 이곳은 성스러운 땅 인도이다.
그 기대를 안고 복잡한 입국 절차를 마치면, 거대한 최신식 공항인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을 빠져나가는 데만 해도 만만치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고 나면 안개인지 연기인지 구분하기조차 힘든 자욱한 미세먼지가 심신이 초췌해진 여행자를 맞이한다. 피로가 만만치 않다. 마음 같아서는 인도 특유의 영화, 볼리우드의 분위기처럼 여행의 첫날밤부터 흥겹고 신나게 보내고 싶건만, 이번 인도 방문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첫날은 심신의 안정이 최우선이다. 뉴델리에서 목적지 아요디야까지는 거리가 만만치 않다.
아유디야 또는 아요다로도 불리는 이 작은 도시는 여행자들이 주로 찾는 도시는 아니다. 흔히 인도 여행지로 추천을 받는 골든 트라이앵글, 즉 뉴델리와 아그라, 그리고 자이푸르를 잇는 지역에서도 한참 벗어나 있다. 그렇다고 뭄바이나 콜카타처럼 인도 역사에서 커다란 획을 긋는 주요 지명도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인도 북부 우타르 프라데시 주에 자리잡고 있는 이곳은, 칠백만을 훨씬 웃도는 대한민국 김해 김씨 또는 김해 허씨 사람들에게는 각별한 곳이기도 하다. 우리의 역사 가운데 가야국을 세운 김수로왕이 아내로 맞이했다는 인도인 왕비, 허왕후의 출신지로 알려진 곳이 바로 이 아요디야라는 곳이다.
김수로왕 인도인 부인 허왕후 출신지
불교의 역사와 성지에 관해 언급되는 사위성의 이야기 역시 이곳 아요디야와 꽤 밀접한데, 당시 코살라 왕국과 승만부인의 이야기 그리고 허왕후의 이야기가 모두 이 작은 도시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물론 인도 허왕후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 보기에는 사료가 매우 부족하고 아직 검증을 거쳐야 할 단계도 많지만, 한낱 설화로 보기에 그 이야기는 매우 체계적이고 구체적이다. 또한 진위를 이야기하기에는 대한민국 땅에서 조상들의 이야기를 받들고 살고 있는 칠백만 김해 김씨 종친에게 커다란 실례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 진위 여부를 가리는 게 아니라, 설화이든 역사적 사실이든 이 이야기가 이천 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이 흐르면서도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유대감을 선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전개는 월드뮤직 전문가인 글쓴이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하는 일이다. 이십 년 동안 월드뮤직을 듣고 그 속에 담겨 있는 세계 각지의 문화를 글과 방송으로 소개하는 글쓴이의 입장에서, 인도의 철학과 음악 전통,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도 북부 작은 도시와 대한민국 남부 도시에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허왕후 이야기는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하고도 남는 이야기이다.
지난 11월3일에 인도를 방문한 글쓴이는 무굴 제국의 황도 아그라를 거쳐 럭나우, 그리고 목적지 아요디야까지 사흘에 걸쳐 발걸음을 옮겼다. 여행의 시작은 인도 허왕후 기념비 건립 17주년 행사에 김해 김씨 종친회와 동행한다는 명분이었지만, 마침 이 여행 기간이 인도 사람들에게는 한 해 가장 큰 명절인 디왈리 축제 기간이라는 점도 글쓴이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인도 사람들의 생활과 그들의 문화를 체험하는 데에는 현지 여행만큼 좋은 게 없으니 이런 때야말로 여행의 적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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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아요디야 미슈라 왕손과 영부인 김해 김씨 종친 김정숙 여사가 인도 허왕후 기념 행사장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황우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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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처음 방문했을 때를 다시 기억해본다. 자욱한 미세먼지만큼이나 적응하기 힘들었던 시끄러운 경적 소리들, 규칙이라는 게 과연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차로들, 그리고 그 위를 활보하는 사람들과 열심히 달리는 릭샤 무리들. 그래서 인도 여행은 사람들 사이에 호불호가 꽤 갈리는 편이다. 그러나 ‘이번 한번만 더’라는 생각을 품고 방문을 하다 보면, 어느새 이 곳이 적응하기 힘든 여행지라는 생각에서, 나름 재미있고 흥미로운 곳이라는 생각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고 나면, 이들을 지탱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무질서 속 존재하는 규칙과 신호
삼억이 넘는 신들의 수가 괜히 생긴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마냥 무질서한 듯 보이던 차량들과 인도만의 독특한 운송 수단인 릭샤들, 그리고 사람들의 행렬 사이에 존재하는 규칙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견디기 힘들었던 자동차의 경적 소리들도, 앞 차를 위협하는 소음이 아니라 앞서가고 양보하겠다는 운전사들 사이의 충실한 신호로 들린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굉음 같은 음악 소리들도, 어떤 가락은 결혼식 축하연 전용이고 어떤 리듬은 남인도에서 올라온 전통 장단임을 조금씩 구분할 여유가 생긴다.
숨을 돌리고 허왕후 기념비 행사를 마치니 마을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에서 예전에 유행했던 인도 영화음악이 들린다. “쿠취 쿠취 호따 해.” 인도 국민 배우 샤룩 칸이 한참 젊었을 때 주연한 청춘 멜로 영화 <뭔가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의 주제가였다. 김해 김씨 종친이기도 한 영부인이 헌화를 위해 먼 타국의 행사장에 모습을 나타내기 훨씬 전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외지인들의 기념 행사를 일찌감치 커다란 축제로 즐기는 모습이다. 하긴 디왈리 축제 한가운데에서 펼쳐지는 타국 사람들의 문화는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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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 갠지스 강가에서 매일 밤 벌어지는 힌두교 전통 제식 장면. 손풍금 ‘하모니움’ 소리와 함께? 읊조리는 듯한 노랫가락은 이곳을 대표하는 주요 상징이다. 황우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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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왕후 기념비 주변에서 종친회 사람들이 분주하게 행사를 준비할 때에도, 축하 공연을 위해 출발 때부터 동행한 국악 연주 팀이 열심히 연습하고 있을 때에도, 아요디야 주민들은 잠시 연습이 멈출 때마다 커다란 박수를 쳐주곤 했다. 낯설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타지 사람들의 음악과 문화. 그들은 글쓴이가 월드뮤직을 소개할 때 항상 주장하는 과정을 몸소 체험하고 즐기는 중인 셈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본연의 정서인 희로애락에 호소하는 음악인 월드뮤직의 소통 과정을 글쓴이는 인도 아요디야에서 현지 주민들을 통해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비록 낯선 지역의 문화와 음악이라 할지라도 조금씩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정서를 공유하며 문화를 공유하는 순간. 어쩌면 현지인들은 우리의 장구와 그 연주 모습에서 자신들의 전통 타악기 ‘돌’을 보았을 것이고, 느리게 시작해 점점 장단이 빨라지는 우리의 산조를 들으면서 그들의 전통 음악 양식인 ‘라가’를 대입해 친숙하게 느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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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음악에 심취한 비틀스의 멤버 조지 해리슨이 바라나시를 방문했을 때, 인도 시타르 연주의 대가 라비 샹카르가 그를 위해 기꺼이 제공했다는 저택. 이곳에서 두 사람은 음악적 교류를 통해 서로 영감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황우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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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가 사랑했던 인도 악기 시타르
음악의 형식과 악기의 모습이 어떻게 유사한지 밝혀내는 일이야 학자들의 몫이라지만, 듣고 즐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낯선 것에서 친숙함을 발견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다. 그리고 그 작은 친숙함을 거쳐 음악 전체를 친근하게 느끼는 과정이야말로 서로 생각이 닮아가고 문화를 공유하는 과정이다. 비틀스의 히트곡 ‘Norwegian Woods(노르웨이식 목재가구)’ 등장하는 악기 소리도, 1965년 당시 영국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신비롭고 낯선 동양의 전통 악기로만 인식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세계 어디서도 그 악기가 인도의 전통 악기 시타르 소리임을 안다. 이 인도 전통 악기가 세계에 널리 알려지기까지는 비틀스의 멤버 조지 해리슨과 시타르 연주의 대가 라비 샹카, 그리고 인도 음악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커다란 노력을 한 바이올린 연주자 예후디 메뉴인 등등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다.
낯선 곳의 음악과 문화를 즐기기 위해서는 용기 내어 익숙해질 때까지 만나는 것이 최선이다. 낯선 것을 낯설다고 느끼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 노력을 통해 우리는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음악 속에서 관습과 역사, 정서를 읽어내고, 그 감상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우리가 월드뮤직을 듣는 이유이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 이제 인도에서, 독자들과 글쓴이의 음악 여정은 시작되었다.
황우창 음악평론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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