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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24 09:37 수정 : 2019.12.01 19:17

보광미니골프장을 찾은 윤소연·여순미씨. 박미향 기자

커버스토리┃속초

미니 골프장, 독립 서점 독특해
오징어난전 신선한 먹거리 가득
힙스터 성지로 떠오르는 ‘칠성조선소 살롱’
65년 만에 개방한 둘레길 ‘바다향기로’

보광미니골프장을 찾은 윤소연·여순미씨. 박미향 기자

여행의 참맛은 그곳에만 있는 것과 조우하는 것에 있다. 그곳에만 있는 것. 우리를 황홀한 경험에 몰아넣는다. 강원도 속초시에는 전국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명소가 넘쳐난다. 그중 몇 가지만 추려봤다.

아담하고 특이해서 좋아···보광미니골프장

“폼은 제일 좋아. 실력은 바닥이면서.” 핀잔이 농담이다. 지난 12일 속초시 동명동에 있는 ‘보광미니골프장’엔 50대 ‘아재’들의 흥이 넘쳤다. <걸리버 여행기> 속 ‘작은 사람들의 마을’에나 있을 법한 ‘미니골프장’. 탁구공만 한 공들이 날아다닌다. 4년 전부터 단골이었다는 김용택(53·인천)씨는 고향 친구 8명과 속초 여행을 계획하면서 이곳을 ‘꼭 가야 할 곳’으로 꼽았다. “골프를 잘 치는 이도 여기선 질수 있다. 다 재미다.” 그런가 하면 한쪽 홀에선 서른한살 동갑내기 친구 윤소연·여순미씨가 팔짝팔짝 뛰며 17홀을 돌고 있었다.

1963년 문 연 보광미니골프장은 속초 문화유산과 다를 바 없다. 옛날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숨 쉬고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전성기였던 1970~80년대 한복판으로 간 듯하다. 윤소연씨는 “홀과 매점이나 개수대 등은 유행하는 레트로(복고)풍이다. 세련돼 보인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시멘트 등을 직접 바르면서 만드셨다.” 부친 이춘택씨가 2006년께 작고한 후 이곳을 맡은 주인 이창배(63)씨 말이다. 그는 대학에서 민법과 지적 재산권 등을 30여년간 가르쳤던 이다. 하지만 부모님의 흔적이 촘촘히 박힌 이곳을 팔거나 방치할 수 없었다. 오는 이마다 붙잡고 아버지가 만든 게임 규칙을 설명하기 바쁘다. 게임은 단순하지만, 변수가 많다.

보광미니골프장. 박미향 기자

17홀마다 플러스(+), 마이너스(-) 표시와 숫자가 적혀있다. 홀마다 구멍의 개수, 경사도, 길이가 달라 변수가 생긴다. 한쪽엔 철재로 만든 신기한 기구도 있다. 18홀인 셈이다. 이 홀에선 역전이 가능하다. 아폴로라 부른다.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한 이듬해 만들었기 때문에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강원도 최초로 ‘골프’란 말을 사용한 곳이기도 하다. 이씨의 부친은 본래 속초중앙시장(지금 속초관광수산시장)에서 수입품을 파는 ‘아스라양행’을 운영했었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정권은 외제 판매를 금지했다. 생업을 접어야 했던 그가 선택한 게 이 미니골프장이다. 당시 1인당 20원이었던 비용은 지금 5000원이다.

서점 ‘완벽한 날들’. 박미향 기자

책의 향기가 유혹하네···완벽한 날들과 동아서점

서점 ‘완벽한 날들’은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의 책 <완벽한 날들>에서 이름을 따왔다. 호들갑 떨면서 대자연을 칭송하지 않는 산문집이다. 아름답다. 누구나 꿈꾸는 ‘완벽한 날들’이 이 서점에 있다. 주인 최윤복(36)씨는 “여기 온 분들이 시간을 보낸 후 ‘완벽한 날들’이기를 바란다”고 한다. 인권단체 ‘아시아문화연대’에서 활동했던 그는 고향 속초에 5년 전에 내려왔다. 가족 일을 잠시 도우려던 것이 그의 일상을 바꿨다. “하고 싶은 일은 이곳에서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독서 모임 등을 통해 지역민과 만나고, 지역 단체 등과 연계해 환경운동도 한다. “경쟁 논리가 작동하지 않는 진정한 연대”를 이뤄내고 싶은 게 그의 소망이다.

속초 출신 작가의 작품을 걸고, 인디 가수들을 초청해 공연도 한다. 어른들이 봐도 감동적인 그림책 전시나 북 토크도 했다. 작가 김규항, 시인 박준 등이 다녀갔다. 회원 가입을 하면 그가 고른 책을 매달 받아 볼 수 있다. 그 박스엔 고른 이유가 적힌 편지도 있다. 책장엔 여백이 많다. 판매만이 목적인 서점이 아니다. 베스트셀러도 거의 없다. 이보다 더 근사한 책 여행 장소는 없다.

동아서점. 박미향 기자

‘동아서점’도 특별한 공간이다. 이미 전국적으로 유명한 이 서점은 1956년께 문 열었다. 창업자는 김종록씨(2015년 작고)인데, 그는 당시 동아일보 속초 주재 기자였다. 그가 연 ‘동아문구사’가 출발이다. 책과 문구류를 함께 팔던 이곳은 1966년 ‘동아서점’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의 아들 김일수(67)씨가 1978년부터 운영했고, 지금은 손자인 김영건(32)씨가 가업을 잇고 있다. 설핏 보면 평범한 도시 서점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둘러 보다 보면 보물 같은 ‘취향 저격’ 책을 발견한다.

말랑말랑한 오징어 한 접시 하실래요?···오징어난전

14개의 포장마차가 줄지어 서 있다. 지난 11일, 이른 아침 9시. 개미 한 마리도 안 보이는데 포장마차 주인들은 분주하다. 이들이 문 연 시각은 새벽 5시. “새벽 5시쯤 오징어 배들이 들어오면 경매를 한다.” ‘4호 쌍둥이네’ 주인 신지선(41)씨의 설명이다. 이 포장마차촌을 ‘오징어난전’이라고 부른다. 수복기념탑공원 앞 어판장 앞에 있다. 전날 저녁에 연근해로 출어한 오징어잡이 배가 밤새 뱃불(집어등)을 밝혀 잡은 오징어가 주재료다. 별미는 몸길이 10㎝ 내외인 ‘총알 오징어’. 모양이 마치 총알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당일 잡은 오징어를 바로 잡아 주기에 신선하다. 물컹한 질감도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쫄깃하다. 플래카드에 배 이름 ‘일광호’, ‘한흥호’가 적인 포장마차가 이곳에서 나이가 가장 많다. 김혜자(65·한흥호)·박삼숙(62·일광호)씨가 함께 운영한다. 김혜자씨는 “오징어잡이 선주들이 배가 늘어 경쟁이 심해지자 수익을 내려고 만든 곳들”이라고 한다.

오징어난전에서 파는 오징어회. 박미향 기자

오징어난전에서 파는 오징어찜. 박미향 기자

전국에서 가장 ‘힙’한 곳···칠성조선소 살롱

변신은 무엇이든 아름답다. 배 수리 전문 조선소였던 칠성조선소가 카페, 전시 공간 등으로 옷을 갈아입고 ‘칠성조선소 살롱’이라는 문패를 걸자 전국에서 여행객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배가 들어오는 철길과 낡은 목선이 만든 이국적인 풍광에 매료됐다. 철길을 개조한 의자에 앉으면 푸른 청초호가 보이는데, 반한다. 변화의 주역은 38살 동갑내기 최윤성·백은정 부부다. 본래 이곳은 최씨의 조부 최칠봉씨가 1952년 문 연 원산조선소였다. 1970년대 최칠봉씨가 작고하자 그의 아들 최승호씨가 맡았고, 이젠 창업주의 손자인 윤성씨가 운영한다.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이들 부부에겐 큼지막한 철제와 커다란 건물, 탁 트인 땅은 다루기 쉬운 오브제였다. 미국에서 레저 선박 디자인도 공부한 최씨는 레저선박사업을 하려 했으나 2년 전 이 공간을 열었다. 지난 12일 만난 백은정씨는 “남편은 어린 시절 놀이터이기도 한 이 공간에 애착이 많다”며 “남길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하는 게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고 말한다. “조선소라는 느낌은 살리고 싶었다.” 곧 레저선박 디자인 공간이었던 창고도 단장해 새 얼굴을 내밀 예정이라고 한다.”

칠성조선소 살롱. 조선소 엣 흔적이 재미있다. 박미향 기자

‘외옹치항~외옹치해변~속초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바다향기로’. 박미향 기자

출렁이는 파도 동무 삼아···외옹치 바다향기로 둘레길

60년 넘게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던 곳이 지난해 처음 얼굴을 내밀었다. 지난 12일 오후 3시 속초시 대포동 ‘외옹치항~외옹치해안~속초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둘레길 ‘바다향기로’엔 여행객 수십명이 걷고 있었다. 이곳은 한국전쟁 후 65년간 민간인 출입이 금지됐던 곳이다. 총 1.74㎞에 이르는 바다향기로의 일부 구간엔 철책이 아직 남아있다. 목재 덱(데크) 길을 걷다 보면 기암괴석과 물보라를 머금은 파도가 옆구리를 툭툭 친다.

속초(강원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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