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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28 20:12 수정 : 2019.08.28 20:17

지난 20일 백령도 두무진 선대암 앞에서 바라본 풍경. 김선식 기자

커버스토리┃백령도·대청도

가장 일찍 가을 맞는 서해 서북단 백령·대청도 여행
욕망이 입 다무는 시간, 노동만큼 치열한 휴식
정부도 주목하는 여행·생태·문화의 보고 ‘섬’
백령·대청 10곳, 지난 6월 국가지질공원 지정

지난 20일 백령도 두무진 선대암 앞에서 바라본 풍경. 김선식 기자
‘스스로 섬이 되지 말고 섬들을 품은 바다가 되자’는 드라마 대사에 마음이 움직인 적이 있다. 그런데도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바다가 섬을 품는가, 섬이 바다를 품는가. 바다가 섬을 품은 건 육지에서 바라본 풍경이 아닌가. 서해 서북단 백령도 앞바다 암초 위에서 세상 편하게 드러누워 있는 점박이물범은 섬(암초)이 바다 생물들을 품고 있단 사실을 일깨운다. 수억년 세월을 견딘 기암괴석 절벽이 병풍처럼 이어진 해안에선 드넓고 푸른 바다도 들러리가 된다. 국내 섬은 무인도를 포함해 3000개가량이다.(통계마다 다르다) 그 많은 섬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정부는 8월8일을 ‘섬의 날’로 정하고, 지난 8일 첫 기념행사를 열었다. 여행·생태·문화의 보고인 섬의 무한한 잠재력을 발굴하겠단 취지다. 8월8일이란 날짜도 ‘무한대(∞)와 같은 섬의 가치’를 상징한다.

두무진 앞바다에 떼지어 있는 가마우지와 갈매기들. 김선식 기자
아침·저녁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이번 주, ESC는 가을에 흔쾌히 고독을 즐기기 위해 떠날 만한 섬들을 다녀왔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가을이 찾아올 서해 서북단 백령도와 대청도다. 배로 불과 20분 거리인 두 섬은 최근 여행지로서 몸값을 높이고 있다. 지난 6월28일 백령도·대청도에 있는 지질 명소 10곳이 환경부가 인증한 국가지질공원으로 결정됐다. 두 섬은 국내 지질공원 중 천연기념물이 가장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국토교통부와 인천시는 백령도에 소형 여객공항 건설을 추진 중이다. 국방부도 큰 틀에서 건설에 동의했다고 한다.

지난 21일 대청도 옥죽동 모래사막에서 본 모형 낙타 가족. 김선식 기자
인천항에서 배로 3~4시간 거리인 백령도와 대청도에 가면 대자연 앞에서 오래 바라보고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평온해지는 시간을 누릴 수 있다. ‘신이 만든 마지막 작품’이라 불리는 백령도 북서쪽 두무진에서 압도적인 풍채를 자랑하는 50m 높이 기암괴석 앞에 서면 키 작은 인간은 한없이 왜소해진다. 마음에 품은 만용이 이내 눈 녹듯 녹아내린다. 암초에 엎드려 인간들을 뚫어지라 바라보는 점박이물범을 만나면, 인간은 ‘완벽한 타인’이 된다. 멀고 작은 섬에 발 디딘 스스로가 낯설어지는 순간이다. 수억년 세월을 견딘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돌멩이가 닳고 닳아 콩알처럼 변해 자갈밭을 만든 콩돌해변에선 눈과 귀가 뜨인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해변을 샅샅이 살피며 예쁜 돌멩이를 만지작거리고, 콩 구르는 듯한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인다. 대청도 남서쪽 서풍받이 도보여행 길에선 날카로운 해안절벽 모서리에서 섬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섬 끝자락에 서 있는 나와 만나는 시간이다.

지난 21일 대청도 옥죽동에 있는 한 헬기장에서 본 해넘이와 방아깨비. 김선식 기자
해 질 무렵 농여해변 앞바다엔 두 개의 태양이 떠오른다. 낮게 깔린 구름과 수평선을 경계로 태양은 데칼코마니처럼 하늘과 바다에 황금 무늬를 입힌다. 구름을 뚫고 넘어가는 해넘이 풍경 앞엔 방아깨비 한 마리가 한 시간 째 미동도 않고 앉아 있다.

`말없이 어떤 풍경을 고즈넉이 바라보고만 있어도 욕망은 입을 다물어버리게 되는’ 시간, ‘우리들의 노동만큼이나 골똘한’ 또는 치열한 휴식이 이곳에 있다.

백령도·대청도(인천)/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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