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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조르즈성.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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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여행의 시작은 리스보아
위풍당당 대항해 역사가 있는 도시
굽이굽이 마술 같은 알파마 골목 투어
수많은 전망대에서 본 도시는 황홀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도 있어
에그타르트의 고향이기도 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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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조르즈성.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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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수도는 리스보아다. 영어식 표기명인 리스본으로 알려진 도시다. 현지에서 “리스본, 멋지다!”라고 하면 포르투갈 사람들은 토라진다. 한때 스페인과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지만, 자존감만은 굳건히 지켜온 이들이다. 이베리아반도 끝자락에 있는 포르투갈 여행의 출발지는 대부분 리스보아다. 서울을 빼놓고 한국 여행을 말할 수없는 것처럼. 마치 중세시대를 재현한 듯한 리스보아의 풍경은 그저 ‘여행의 서막’이다. 시작이 좋으면 끝도 좋다.
햇빛이 녹아든 강바람이 조제 1세 동상을 휘감는다. 강인지 바다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폭이 넓은 테주강은 리스보아의 젖줄이자 이베리아반도에서 가장 긴 강이다. 1000㎞가 넘는 강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거쳐 대서양으로 빠져나간다. 이 강 앞에 있는 코메르시우광장엔 조제 1세의 동상이 있다.
한때 세계의 바다를 호령했던 대항해시대(15~18세기) 포르투갈의 위용이 이러했을까! 엔히크 왕자(1394~1460)가 시작한 모험의 대장정은 인도, 브라질, 아프리카 등지까지 뻗어 나갔다. 항구마다 진기한 보물을 싣고 온 배가 북적였다. 도시는 활달하고 생기가 넘쳤다. 하지만 1755년 커다란 재앙이 닥친다. 지금도 재난영화의 모티브로 차용되는 사건이다. 순식간에 대지진이 덮친 것이다. 현지 기록물을 살피면 누구는 미사에 참석하고, 누구는 결혼하는 등 평범한 찰나가 삽시간에 지옥으로 변했다고 한다. 이어 화재와 지진해일(쓰나미)까지 닥쳐 도시는 폐허가 된다. 이후 정치가 폼발 후작(1699~1782)이 재건에 나서면서 도시는 살아난다.
16세기 잠시 스페인 왕족이 지배했던 포르투갈. 지금도 한-일 관계를 묻는 포르투갈인에게 “당신네와 스페인의 관계”라고 말하면 금방 고개를 끄덕이며 ‘친절 모드’로 바뀐다. 비슷한 역사를 품은 나라 사람들끼리는 통하는 게 있는 법이다. 심지어 이들의 전통음악 파두를 설명하는 키워드가 ‘한’이다. 2011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파두는 우리네 노래 아리랑과 닮았다. 1950년대 파두 가수 아말리아 호드리게스(1920~1999)에 의해 러시아, 일본 등을 포함한 전세계에 알려졌다. 리스보아에는 파두 식당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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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보아 거리를 다니는 트램.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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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객이라면 코메르시우광장은 필수 코스다. 관광안내소가 있기 때문이다. 낚시, 야생조류 관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안내서, 지도, 버스나 트램(전차) 노선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리스보아카드(교통비, 입장료 등의 할인 카드. 20유로)도 이곳에서 구매할 수 있다.
지난 5월3일(현지시각). 광장의 햇볕은 따갑지 않았다. 하지만 온순하지도 않았다. 그저 무심하게 비추는 볕은 곁에 있는 아우구스타거리 여행을 권한다. 이 거리엔 다양한 잡화점, 신기한 소품 숍, 작은 식당들이 빼곡하다. 유독 코르크 잡화점이 눈에 띈다. 우리가 흔히 와인 병마개로 알고 있는 그 코르크다. 코르크 나무로 만든 지갑, 모자, 가방, 냄비 받침대 등을 판다. 독특한 질감에 반하고 만다. 포르투갈은 세계 코르크 생산 1위 국가다.
코메르시우광장과 아우구스타거리만 해도 평지다. 리스보아는 <왕좌의 게임>의 칠왕국처럼 7개의 언덕으로 구성된 도시다. 언덕은 실국수 같은 골목들을 촉수처럼 거느리고 있다. 힘겹게 오르면 오를수록 더 많은 리스보아를 경험한다. 발이 아플수록 눈이 황홀하다. 그중 대표적인 지역이 알파마다. 미로 같아 자칫 길을 잃을 수도 있다. ‘밍가이드’의 김민경 가이드의 안내로 시작한 알파마 여행의 시작은 모라리아거리를 지나 ‘모라리아, 베르수 두 파두’(파두의 발상지 모라리아)가 새겨진 석조 상징물에서부터였다. 김씨는 골목 안 집 담벼락에 새겨진 얼굴 사진을 가리켰다. “사진이 벽에 있어 신기하죠.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예요. 파두의 거장이죠.” 알파마 지역은 전망대 천국이다. 그라사 전망대, 포르타스두솔(태양의 문) 전망대 등 어디를 올라도 도시의 얼굴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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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렝에 있는 벨렝탑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여행객.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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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따라 수십개의 계단을 오르고 올랐다. 원색의 벽화가 기차 밖 풍경처럼 스쳐 갔다. 수직상승하다 보면 힘겹기 마련이다. 레스토랑 ‘칸티뉴 두 아지즈’에서 걸음을 멈췄다. 차무스(고기 넣은 세모 모양의 튀긴 만두)를 먹으며 한숨을 돌렸다. 좁은 건물에도 대서양 은혜를 입은 바람이 불었다. 동네 청년에게 물었다. “이 식당 맛있다. 자주 오나?” “응.” “주인과 같은 아프리카 고향이라서?” “응. 알파마 식당은 다 맛있다. 그중 이 집이 최고다.” 그의 ‘엄지 척’이 수긍이 가면서도 40분 넘게 가파른 골목을 오르고 오르면 맛없는 음식이 있을까 싶었다. 리스보아 여행에 가장 중요한 준비물이 등산화인 이유다.
오르다 보면 상조르즈성에 닿을 수 있다. 도시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이 성은 노을 질 때 사랑을 속삭이는 커플이 많다. 같은 날 찾은 이곳에서 여행객을 반긴 이는 친절한 안내원도 경비원도 아니었다. 도도하게 걷는 공작 한 마리가 사람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이 날개를 펴고 쫓아오는 인간들을 비웃는 듯 도망갔다. 737번 버스와 12, 28번 트램이 간다. 28번 트램에 몸을 실으면 리스보아 관광 명소 어디든 갈 수 있다. 1901년 세워진 산타주스타 리프트도 그중 하나다. 최고의 전망을 선사한다고 알려져 유명하다. 45m의 리프트는 파리의 에펠탑을 설계한 귀스타브 에펠의 제자 라울 메스니에르 드 퐁사르의 작품이다. 두 대의 승강기로 움직이는데, 대략 20여명이 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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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메르시우 광장.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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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7일, 밤 9시. 드르륵드르륵. 1시간 이상 줄 서 올라간 전망대. 이용료는 왕복 5.15유로. 밤바람은 온화했지만, 사방에 쳐진 철창살 때문에 도무지 도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운데 한층 더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는데, 안내원은 “1.15유로 더 내야 한다”는 말만 한다. 거기에 올라야 알파마 지역 전망대에서 감동했던 도시의 전경을 볼 수 있으리라.
실망감이 솔솔 피어오를 때쯤 이 타워의 놀라운 비밀을 알았다. 줄 선 사람들을 생각하면 승강기를 계속 운행할 거 같은데, 멈춰 있는 시간이 제법 됐다. 알고 봤더니 공공서비스인 이 리프트는 운행 기사의 휴식 시간을 보장하고 있었다. 몇 번 운행하고 직원은 쉰다. 운행을 멈춘다. 수익보다는 사람이 먼저다. 이 타워 맞은편엔 20~30대가 열광할 옷, 소품, 액세서리 가게들이 즐비한데, 이 거리의 이름은 바이샤. 1925년 문 연 수제장갑 가게 루바리아 울리세스가 단연 돋보인다. 손을 섬세하게 재서 맞춤 장갑을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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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렝 지역에 있는 제로니무스수도원.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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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가쁘게 리스보아 도심 투어를 하고 나면 낮은 곳으로 가고 싶다. 이때 갈 만한 곳이 벨렝과 엘엑스(LX)팩토리다. 벨렝의 중심엔 제로니무스수도원과 벨렝탑 등이 있다. 아치형 장식이 돋보이는 제로니무스수도원은 포르투갈의 마누엘 양식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어둑한 성당 등을 둘러보다 보면 제단 앞에 두 개의 관을 발견한다. 그중 하나가 위대한 탐험가 바스쿠 다 가마다.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 뱃길을 개척한 그는 위대한 개척자로 추앙받고 있다. 하지만 이곳 여행에서 백미는 ‘파스테이스 드 벨렝’이다. 에그타르트(밀가루, 달걀 등을 섞어 만든 파이)의 원조가 이 집으로 알려져 있다. 포르투갈에선 에그타르트를 나타라고 부른다. 사람의 체온만큼 따스한 이 집 나타는 달걀노른자의 순수한 맛의 절정이다. 절대 잊을 수 없는 맛이다. 엘엑스 팩토리는 19세기 쓰러져 가던 방직공장을 힙하고 예술적인 분위기로 바꾼 곳이다. 서점 레르 데바가르(Ler Devagar)는 천장에 자전거 모형이 달렸는데, 일명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불린다. 카페, 식당, 전시장 등 뭐 하나 허술한 데가 없다.
도시의 밤은 별만큼 많은 불빛과 함께 깊어간다. 테주강의 한 줌의 바람이 내일 여행의 꿈을 키운다.
리스보아(포르투갈)/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포르투갈 유럽 남부 이베리아반도 서쪽에 있는 나라. 대항해시대(15~18세기) 때 전 세계 바다를 호령하는 부강한 나라였지만, 이후 다른 유럽 국가와는 발전의 궤를 달리하면서 영향력이 약해졌다. 하지만 최근 한국인을 포함한 여러 나라 사람들이 ‘꼭 가볼 만한 여행지’로 손에 꼽는 등 주목받고 있다.
리스보아(포르투갈)/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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