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5.15 02:09
수정 : 2007.05.15 02:38
|
로보트 태권V
|
[19돌 창간특집] 극장 애니메이션 ‘봄날’
<로보트 태권 V> 76만명, <천년여우 여우비> 46만명, <빼꼼의 머그잔 여행> 12만명. 모두 134만명이다. 한국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올해 처음으로 한해 관객 100만명을 넘어섰다. 1976년작을 복원한 <로보트 태권 V>를 빼더라도 신작 두 작품 관객만 60만명에 육박해 지난해 38만명, 2005년 11만명, 2004년 22만명을 훨씬 뛰어넘는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의 꽃’이지만, 국내 작품은 그동안 한해 한두 편도 나오기도 힘들었다. 야심찬 작품들이 번번이 실패해 투자가 얼어붙고 제작자의 목을 죄는 악순환이 이어져 왔다. 올해 상반기에만 모은 관객 100만명은 그 막힌 숨통이 트일 거란 희망을 품게하는 상징적인 수치다.
이유 있는 성공=1976년작을 복원한 <로보트 태권 V>의 위력은 컸다. 한국컨텐츠진흥원 자료를 보면, 1위 자리를 12년 동안 고수했던 <돌아온 영웅 홍길동>(1995년·55만명)을 가뿐히 제치고 극장용 애니메이션 관객 동원 신기록을 경신했다. 30·40대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어린이들에게는 새로운 콘텐츠로 받아들여졌다는 게 제작사인 영화사 신씨네 쪽 분석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제작 역량을 쌓아온 영화사의 기획력과 영화진흥위원회 등이 복원한 애니메이션 고전이 만나 이룬 결실이다.
인력 축적·대형제작사 합류도
태권V 여우비 빼꼼 흥행질주
올 상반기 134만명 끌어 모아
|
애니메이션 흥행 순위
|
<로보트 태권 V>보다 1주일 늦게 개봉한 이성강 감독의 <천년여우 여우비>는 두달 동안 극장에 걸려 있었다. 작품성을 인정받은 이 애니메이션은 안정된 배급 덕에 입소문을 탈 시간을 벌었다. <천년여우 여우비>의 이혜원 프로듀서는 “씨제이엔터테인먼트 같은 큰 회사가 배급을 맡은 첫 한국 창작 애니메이션”이라고 말했다. <마리이야기>로 2002년 안시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대상을 탄 이성강 감독의 이름값도 한몫했다.
<빼꼼의 머그잔 여행>은 주요 관객층을 3~8살 미취학 어린이로 세분화해 잡은 실험이었다. 그 연령대를 겨냥한 장편 극장 애니메이션은 이제까지 없었다. 임아론 감독 등 제작진은 장편을 내놓기 전에 텔레비전용, 인터넷용 단편을 만들어 어린이들의 반응과 취향을 관찰해 시나리오에 반영했고, 이런 전략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빼꼼…>은 상영관 수는 적지만 확실한 관객층을 파고들며 보통 1~2주 만에 극장에서 내리는 다른 영화들과 달리 두 달 가까이 상영중이다.
악순환 고리 끊나?= 투자·배급 영역에서 아직까지 애니메이션을 둘러싸고 있는 한파가 걷힌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 세 작품의 성공이 운좋은 이변만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무엇보다 그만큼 인력이 축적됐다. 1990년대 중반부터 애니메이션 교육 전문 기관들이 생기기 시작해 2005년까지 대학에 개설된 애니메이션 관련 학과만 171개다. 덕분에 작가군이 두텁게 형성됐고, ‘하청 감독에서 창작자’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허술한 기획력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약점으로 늘 손꼽혔다. 그런데 2년 전부터 대형 영화제작사들이 애니메이션 제작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충무로의 기획력이 애니메이션 쪽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엠케이픽쳐스는 대형 영화제작사 가운데 처음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사 오돌또기와 함께 2년 전부터 <마당을 나온 암탉>을 만들고 있다. 정금자 엠케이픽쳐스 마케팅 실장은 “<마당을 나온 암탉>은 60만부 이상 꾸준히 팔려 널리 알려진 동화”라며 “가족 영화 시장의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에 작품만 제대로 나온다면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싸이더스에프엔에이치도 팡고엔터토이먼트와 함께 1년 전부터 클레이애니메이션 <럭키 서울>을 제작하고 있다. 한창완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는 “기획력과 배급, 해외합작 방법까지 축적한 영화제작사와 결합한다면 시장을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까지 넓혀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영철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팀장은 “한·미 합작품인 <파이스토리>는 지난해 브라질 110개 극장에서 개봉했고 유럽 쪽에서도 반응이 좋았다”며 “특히 3D 입체 애니메이션 기술력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밖에 웬만한 환타지물은 특수효과로 실사 영화가 만들어낼 수 있는 상황에서 애니메이션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시나리오 개발과 성인·청소년층으로 관객을 넓혀가야 하는 숙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상영관을 못 잡거나 교차 상영되기 일쑤인데 안정적으로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창구도 필요한 실정이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