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2.12 18:44
수정 : 2007.12.12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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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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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신칼럼
자녀가 따로 사는 경우 부모가 돈이 많아야 자녀들이 자주 온다는 최근의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다. 세계에서 유독 우리나라만 부모 소득과 자녀들의 방문 횟수가 밀접한 관계가 있단다. 소득이 1% 높아지면 자녀와의 대면접촉이 두 배로 늘어난다는 조사 자료까지 더해지면 충격은 착잡함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1980년대에 상영된 <성공시대>라는 한국영화에는 매일 아침 만원권 지폐를 보고 인사를 올리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얼마 전 한 성공학 강사는 공개강좌를 통해 벤츠를 타고 지나는 사람에겐 교통 경찰이 거수경례를 올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성공한 부자들이 그런 식으로 대접받아야 사람들이 성공에 대한 굳은 각오를 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가들을 불필요하게 부정적으로 보지 말라는 역설화법일 수도 있지만 가슴에 쿵하고 돌 하나가 떨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랫동안 유럽에서 살다 온 어떤 이는 한때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말을 보면서 그 천박한 부의 인식에 경악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에서 성공에 대한 의미는 곧바로 부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목적한 바를 이룸’이라는 성공의 사전적 정의를 대입하여 현재를 돌아보면 대다수 국민이 목적하는 바는 자본의 축적으로 귀결되고 만다. 자녀를 한번 더 보자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세태 진단에 이르면 성공이 곧 돈이라는 등식은 절대적인 명제가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것처럼 모든 인간의 목적하는 바가 반드시 자본의 축적과 연결될 수는 없다. 성공학 강사가 부자에 대한 존경심을 강요하듯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성공이 곧 돈이라는 인식을 강제하는 ‘거대한 힘’들이 너무 많다고 나는 생각한다. ‘국민 여러분, 성공하세요’라고 쓰인 이명박 후보의 선거 펼침막도 그런 거대한 힘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특정 후보의 선거 캠페인을 문제 삼자는 게 아니라 이 후보 캠페인에 등장하는 성공이라는 개념이 곧바로 자본의 축적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렇다는 말이다. 오늘부터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기간이므로 어제까지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말하자면 이 후보는 대통령 후보로서 확고부동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 말은 국민성공 시대의 개막을 내건 이 후보의 공약들이 실제로 집행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이 후보가 말하는 성공의 의미를 따져 물을 권리가 있다. 모든 국민이 돈을 많이 벌거나 일정한 사회적 지위 등을 갖지 못하는 순간 실패한 인생이 되는 것이라면 나는 그러한 국민성공 시대의 개념에 동의하기 어렵다. 때로는 해야 할 일보다 하지 말아야 할 항목을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그 실체를 더 극명하게 알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성공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보다 무엇을 하지 않으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에 관해 묻고 싶다.
어느 시인의 한탄처럼 남들이 100년 걸린 일을 30년 걸린 나라가 정상일 수는 없다. 놀라운 외형적 성취를 이루었다 해도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인간의 삶은 압축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인 에머슨은 성공을 이렇게 표현했다.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일방적인 성공의 개념을 강요하는 모든 거대한 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돈이 있어야 자녀들을 자주 볼 수 있다는 기막힌 현실에서 절절하게 떠오르는 단상들이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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