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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24 09:24 수정 : 2019.05.04 11:53

[토요판] 최태섭의 어른의 게임
③ 시드 마이어의 문명 Ⅵ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그것이 ‘시간낭비’라는 입장이다. 게임을 하는 것이 발생시키는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로게이머의 등장 이후 게임을 잘하는 것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신기원이 열렸다. 최근에는 1인 게임 방송이 이 게임플레이 경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얼마 전 세계적인 게임 퍼블리셔인 이에이(EA)는 자사의 신작 배틀 로열 게임인 <에이펙스 레전드>를 플레이하는 대가로 북미의 게임스트리머인 닌자(Ninja)에게 100만달러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광고 전문가들은 이에이가 비용 대비 매우 높은 효용의 광고 효과를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은 매우 소수다. 그중에서 유효한 수준의 돈을 버는 사람을 추리면 수는 더욱더 적어진다. 결국 우리는 임요환을 핑계 삼아 게임을 하고 싶을, 혹은 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게임계에는 ‘3대 시간여행 게임’이라는 전설이 존재한다. 시간여행을 주제로 한 게임이 아니라 플레이어에게 시간여행을 체험하게 해주는 게임이라는 것인데, 저녁 7시에 게임을 시작해서 정신을 차려보니 8시가 되었는데 알고 보니 다음날 아침이었다는 식이다. 이는 느린 템포로 진행되면서 고려할 것이 많은 전략 게임들에서 자주 출몰한다. 이 3대에 무엇이 포함되는지는 종종 논쟁이 벌어지지만 반드시 빠지지 않는 게임이 바로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다. 1991년 게임제작자 시드 마이어에 의해 탄생해 2016년에 6번째 시리즈를 내놓았다.

이 게임은 석기시대의 수렵 채집부터 시작해 가까운 미래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문명’을 발전시키는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도시를 건설하고 농사를 짓는 것에서부터 정치체계, 기술, 종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게임에 존재하는 다른 문명들과의 경쟁 속에서 이루어진다. 실제 문명이 발전해온 시간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지만, 플레이어에게는 “문명하셨습니다”(문명 Ⅴ가 출시되었을 때 생겨난 유행어로 “운명하셨습니다”의 패러디)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시간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언제나 모순투성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노인들이 아무리 시간의 소중함을 역설해도, 새로 태어난 젊은이들은 여전히 지루함 속에서 시간을 낭비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심지어 제때 낭비하지 못한 시간은 언젠가 반드시 돌아온다. ‘일만 하고 놀지 않은 잭은 바보가 된다’(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는 영미권의 유명한 속담이 최초로 등장한 것이 이미 1659년의 일이다. 그렇다면 이 낭비 역시 인간들의 삶의 시간의 일부로 자리잡고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닐까?

나에게도 ‘딴짓 게이지’라는 것이 있다. 이것과 생산성의 관계는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았으나, 이것 없이 일에 몰두한다고 해서 생산성이 늘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증명되었다. 따라서 즐겁고 죄책감 없이 딴짓을 하는 것이 적어도 정신건강과 머리숱에는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결국 ‘시간낭비’라는 말은 게임과 시간의 관계에 대한 가장 정확한 말이다. 아니 차라리 이렇게 말해야 한다. 게임은 시간을 즐겁고 훌륭하게 낭비하도록 해주는 매체라고 말이다. 아,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한국인들은 게임에 있어서 세계 최고로 효율과 생산성을 중시하는 이들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종특’일까,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남긴 초조함의 산물일까. 거참.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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