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9.19 09:39
수정 : 2019.09.19 20:57
|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
박세회의 사람 참 어려워
|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
“여기서 자고 가면 안 돼?” 몇 해 전 한 프리랜서가 광고회사 일을 맡았다가 들은 말이다. 그날 밤에 마지막 수정 요청이 들어올지도 모르니 언제든 수정안을 내놓을 수 있도록 자기네 회사 사무실에서 자고 가란 얘기였다. 프리랜서는 “사무실에 1인용 간이침대도 없는데 자고 가라고 했다”며 분노를 토했다. 그는 설명을 덧붙였다. “나한테 일을 준 사람이 친한 형이었어. 친하니까 자고 가라고 했던 거야. 반대로 나도 친한 형이니까 안 자고 가겠다고 당당하게 거절할 수 있었지. 만약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면 고민이 됐을 거야.” 프리랜서 세상은 미묘하다. 일은 친분이 있는 사람이 주는 경우가 많다. 친분이 있는 사람과 일을 하면 이런 황당한 요청을 받는 경우가 더러 생긴다. 가까운 이라도 프리랜서 마음에 상처를 준다.
영상물 작업 프리랜서였던 한 친구에게 이 얘기를 하자 그가 말했다. “나는 일을 의뢰한 방송사 피디가 애매모호하게 수정사항을 말해 곤란한 적 있었지. 모호한 수정 요청은 언제나 싫다.” 방송사 프로그램 중 상당수는 외주 제작하고 외주 제작사 인력의 다수는 프리랜서다. 안 그래도 모호한 제작 방향이 외주 단계를 거치면서 해석에 해석이 더해져 더욱 모호해진다. 결국, “섬세하면서도 박진감 넘치게” 같은 엉터리 지시 하나 때문에 프리랜서는 몇 날 밤을 새운다. 이 친구는 “낮에 잠깐 근처 찜질방 가서 눈 붙이는 게 수면의 전부였다”고 말한다. 그가 덧붙였다. “못 하겠다고 말하면 다음 날 내 업무를 다른 프리랜서가 하고 있겠지.” 그가 극한의 업무 환경을 참아낸 이유다. 어떤 업무 프로세스에서도 겪을 수 있는 상처지만, 소속이 없는 프리랜서는 서글픈 감정의 정도가 더 심할 수 있다. 지시한 일이 과연 사람답게 살면서 기한 내에 마칠 수 있는 일인지 먼저 검토하는 게 중요하다.
“점심 즈음에 봐요.” 각종 매체에 칼럼과 기사 등의 콘텐츠를 납품하는 한 프리랜서 에디터가 싫어하는 말이다. 점심 즈음은 대체 몇 시인가? 정확히 몇 시인지를 물으면 돌아오는 답도 답답하다. “제가 10시에 회의가 있어서요. 한 12시나 12시 반쯤? 우리 사무실에서 보는 거 괜찮죠?” 무책임한 말이다. 의뢰인의 30분은 중요하지만, 프리랜서의 30분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회의가 언제 끝날지 모르니 11시45분쯤 가서 갑님의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굴욕감을 맛본다.
프리랜서 작가인 또 다른 친구는 “한번 같이 해보자”는 말이 지긋지긋하게 싫다. “‘편성 다 잡혔으니 기획안 근사하게 짜보자’란 피디의 말에 창의력의 절정기인 30대 몇 주를 아이디어 짜느라 보냈는데, 막상 없던 일이 됐다는 소리를 들어도 불평 한마디 못한다.” 프리랜서 마음에 금이 간다. 프리랜서 시간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갑을 관계에서 오가는 말들만이 프리랜서를 아프게 하는 건 아니다. 얼마 전 프리랜서들이 모인 자리에서 들은 얘기다. “‘그래도 당신들은 자기 시간은 자기가 관리해서 좋겠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그 말이 제일 싫다.” 대부분의 사람은 프리랜서들이 아침에 일어나 여유롭게 커피 한잔하고, 카페로 노트북을 들고 가 서너 시간 일하고 들어오는 줄 안다. 그들의 얘기를 듣다 보니 직장인들보다 노동 강도가 훨씬 세다. 한 전직 에디터는 “프리랜서는 누가 말리지 않으면 주말도 잊고 종일 일한다”며 “그래서 프리랜서 초보자에게 하는 조언 중 하나가 주말에는 꼭 쉬고, 알람을 맞춰놓고서라도 50분 일하면 꼭 10분 쉬라는 얘기다”라고 말한다.
프리랜서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프리랜서라고 당신보다 ‘프리’하지는 않다는 걸 명심하자. 이제 ‘혼자 일하는 이’가 느는 세상 아닌가! 자신도 언젠가 프리랜서가 될 수 있다.
박세회(허프 포스트 뉴스에디터)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