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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08 06:01 수정 : 2019.11.08 20:37

[책&생각] 이숙인의 앞선 여자

일러스트 장선환

조선시대 딸들의 성장 과정이 기록으로 남겨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사회적 편견을 넘어 여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기록이라는 행위의 지속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숙희 20년’의 기록은 강보에 싸인 조그만 생명체가 두 딸의 엄마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다.

이숙희(李淑禧, 1547~?)는 조부 이문건의 유배지 성주에서 서른 아버지와 스물둘 어머니의 맏이로 태어난다. 아버지는 심신이 미약하고, 어머니 또한 총명이나 현명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부모는 혼인과 동시에 할아버지가 계신 성주에 살림을 차리는데, 그로부터 1년 후에 숙희가 태어난다. 숙희는 잦은 병치레로 어른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가운데, 두 살 터울의 여동생 숙복과 남동생 숙길을 얻는다. 동생들을 돌보는 일로 밥값을 하던 우리네 맏이들과는 달리 숙희에게는 동생들을 돌본다는 개념이 없다. 같이 놀아줄 뿐이고 돌봄의 노동은 노비들의 몫이었다.

숙희의 양육과 교육은 조부모의 몫이었다. 다섯 살 숙희는 매일 조부의 처소를 맴도는데, 조부는 일기 속 날씨처럼 숙희의 동정을 매일 기록해갔다. 숙희와 놀았다, 숙희가 낮잠을 잔다, 숙희가 노래를 부른다, 숙희가 새 옷을 입었다, 숙희가 울어 마음이 아프다는 등. 할아버지는 영특한 숙희가 사람들을 흡족하게 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 숙희를 그 어미가 자주 때려 울리자 이문건 부부는 속상해서 어쩔 줄 모른다. 아이에 대해선 부모가 우선이라는 인식 때문인지 양반가의 법도 때문인지, 조부모의 화풀이는 매맞는 숙희를 흉내 내며 키득거린 여비 옥춘에게 돌아간다. 숙희 자매가 이질에 걸려 사경을 헤매자 간병에 필사적으로 매달린 조부모의 헌신으로 숙희만 살아남는다. 세 살을 넘기지 못한 여동생 숙복을 위해 조부모는 그 묘지를 정성스레 조성하고 3년 동안 기일 제사를 지내 준다. 만 2년을 살다 간 손녀로부터 애틋한 정을 거두지 못한 조부모. 혹 숙희가 몸져누우면 무녀를 불러 와 쾌차를 비는 굿판을 벌이기도 한다.

여섯 살이 된 숙희가 공부를 하겠다고 하자 할아버지는 기특해서 어쩔 줄 몰라 한다. 할아버지가 써 준 언문 1장으로 시작한 공부는 열 살이 되고 혼인을 하고서도 계속되었다. 교재를 정해 매일 한 편씩 익히는데, <삼강행실도>를 읽고 <소학>을 읽으며 <천자문>을 익히는 숙희의 학구열은 낱낱의 기록으로 저장되었다. 공부 외에 집안일을 즐겨하지 않는 여자 숙희를 할아버지는 개의치 않았다. 봉제사 접빈객의 노동에 묻혀 죽도록 일만 하고 배움과 지식에서 차단되었다고 하는 조선 여성과는 다른 모습이다. 한번은 조부에게 글을 배우러 오던 청년이 언문을 잘하던 숙희에게 말을 걸어온 적이 있었는데, 청년은 물론 중간에서 다리를 놓은 여비 그리고 숙희 모두 경을 친다. 여식을 잘 길러 좋은 혼처를 정해 주려는 부모의 마음에 대못을 박은 사건이었다.

열다섯 살 숙희는 서울의 판관댁 아들 정섭과 혼인을 하는데, 풍습대로 처변(妻邊)에 눌러 살게 된다. 어린 부부를 노심초사 살피는 조부모. 정섭은 서울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떼를 쓰고, 숙희는 서방(書房)에 가는 걸 껄끄러워한다. 그러던 어느날 숙희가 할아버지를 보고 부끄러워하자 합방의 신호로 알고 노부부는 안도한다. 여덟 살 아래의 여동생 숙녀를 늘 달고 다녔던 숙희가 이제 딸 희정까지 대동하고 할아버지의 처소에 나타난다. 숙녀는 임진왜란 때 동래성 함락으로 자결한 부사 송상현의 부인이다. 혼인하고도 공부를 계속하던 숙희는 남동생을 가르치거나 할아버지 몫의 답장을 대신 쓰는 일을 하고, 애기 엄마지만 생일 선물로는 늘 문방구를 받는다.

조부 이문건은 서울의 가옥을 손자가 아닌 손녀 숙희 부부에게 물려준다. 둘째 딸을 낳은 숙희가 시집으로 거처를 옮겨간 듯 조부모의 시야에서 사라지는데, 몇 달 후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차례로 세상을 떠난다. 딸로 태어난 한 생명체가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해가는 숙희를 통해 오늘날 자의반 타의반 손주 육아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조부모들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묻게 된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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