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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11 10:47 수정 : 2019.10.15 10:39

[책&생각] 이숙인의 앞선 여자

일러스트 장선환
춘비(春非, ?~1551년 9월8일)는 사족 이문건가의 여비(女婢)다. 가족이 괴산의 처가 쪽에 살고 있는데다 아내 김씨를 밀착 배행하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이문건의 처가 쪽에서 넘어 온 비다. 사극에서 노비들은 그저 충직하거나 말이 없다. 기록에서 노비들은 소유주의 물목에 불과할 뿐 그들의 목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게으르다고, 심부름을 엉터리로 했다고 매를 맞으면 나름의 변명과 항변이 있을 것이나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나마 이문건가의 노비들은 상전(上典)의 ‘기록벽’ 덕분에 살다 간 흔적이나마 남길 수 있었다. 상전 이문건은 집안 노비들이 수행한 일과 그 동태를 자세히 기록했는데, 인간적 관심보다 동산(動産)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가운데 발병하여 고통과 신음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춘비 두 달’의 기록은 신분의 틈새에서 새어나오는 작은 불빛과도 같은, 인간 유대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춘비가 상전의 일기에 처음 등장한 것은 10대 후반의 나이였다. 그는 서울 저동과 양주 노원(현 서울시 노원구)을 오가며 상전 부부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데, 당시 이문건은 노원에서 어머니 시묘 살이를 하고 있었다. 춘비의 억센 기질은 나이가 들수록 심해져 매를 달고 산다. 한번은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 또래인 상전 아들에게 매를 맞고는 ‘독을 뿜어대며 아프다며 큰 소리로 울부짖고 마구 악’을 쓰며 마당에 드러누웠다가 다음날 더 심한 매질을 당한다. 남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선 주체할 수 없는 설움과 통곡이 멈추지 않아 뺨을 맞기도 한다. 그녀가, 그녀의 조상이 어떻게 노비가 되었는지 알 바 없고, 오로지 순종과 충직을 강요당하지만 너무 짜증나면 배 째라 들이박고, 핏줄들의 소식에 감정이 요동치는, 춘비도 인간이었다.

춘비는 유배형에 처해진 상전을 따라 경상도 성주로 거처를 옮기는데, 그녀의 나이 서른 내외였다. 성질은 여전하여 다른 집의 남노(男奴) 들과 싸움질을 그치지 않아 상전의 지시로 자주 몽둥이찜질을 당한다. 오죽했으면 상전 손자의 젖어미 선발에서 배제되는데, 젖먹이 아이가 있지만 성질이 험악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젖어미로 배정된 동료 비가 그만두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투입되었다. 그러나 유모로서의 역할보다 자신의 잠에 급급하여 아이의 얼굴을 누르고, 그녀의 코고는 소리에 도리어 아이가 놀라서 우느라 잠을 자지 못하자 거기서도 쫓겨난다. 그로부터 6개월 후 춘비의 몸에 종기가 나기 시작하는데, 그녀의 나이 35살 전후에 불과했다.

젖먹이를 둔 춘비는 아랫입술에 종기가 나더니 다음날 가슴으로 번지면서 사지가 쑤시기 시작한다. 의술에 밝은 상전 이문건은 인동초를 처방한다. 발병 3일째가 되자 얼굴과 목구멍, 두 젖과 왼쪽 다리와 정강이에까지 종기가 퍼져 뼈가 쑤시고 열이 나서 물만 겨우 들이키는 상황이 된다. 습열(濕熱)로 진단한 상전은 오령산(五苓散)을 주어 달여 먹게 하는데, 다음날 병이 더 악화되자 직접 와서 살피고는 자신의 진단이 잘못된 것임을 질책하지만 이미 늦었다. 발병한 지 7일째 상전은 괴산에 있는 남편 방실(方實)를 불러 춘비의 병을 구완하게 하고 관아 소속의 의생(醫生)을 불러와 침을 놓게 한다. 발병한 지 10일 째, 춘비는 온 몸에 창(瘡)이 퍼져 움직이지 못하고 밥을 넘길 수 없어 죽물로 연명한다. 이로부터 10일 동안은 종기가 소강사태로 접어들어 나아지나 싶더니 다시 아래턱에 종기가 나기 시작한다.

상전은 의원을 불러와 침으로 종기를 터트리게 하는데 신통치 않자 다시 다른 의원을 불러 와 춘비를 치료하게 한다. 다시 열흘 후 춘비는 젖가슴의 종기가 터지더니 겨드랑이에 다시 종기가 나고 허벅지에도 종기가 다시 솟아 심한 통증으로 울부짖으며 음식을 먹지 못한다. 와중에 어미랑 함께 앓던 젖먹이 아들 검동(?同)이 죽었다. 종기로 뒤덮인 춘비의 몸은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 춘비는 소고기를 먹고 싶다고 한다. 곪은 종기는 터지고 새로 솟는 종기는 열을 뿜어내는데, 피골이 상접한 춘비는 서서히 죽어간다. 춘비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며 마지막까지 살려보려고 여러 의원을 불러들이는 이문건, 상전된 의무감만이 아님을 알겠다. 결국 춘비(春非)는 종기의 독이 등으로 번져서, 울부짖다가 발병한 지 두 달 만에 숨을 거둔다.

계급사회에서 주인의 은혜는 더 큰 탐욕을 보장하고, 노예의 충직은 불만과 반란을 잠재우는 장치에 불과하다. 이 장치를 걷어내면 주인도 노예도 인간 근원의 고통과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형제와 자식의 수많은 죽음을 목도한 이문건이 춘비의 고통에 실시간 반응한 것은 인간 종(種)의 동일성에 대한 무의식적 자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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