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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12 06:02 수정 : 2019.07.12 19:56

일러스트 장선환

[책과 생각] 이숙인의 앞선 여자

일러스트 장선환

생명 가진 모든 것은 반드시 죽기 마련이지만, 때가 아닌 죽음은 남은 자들을 슬프게 한다. 이런 죽음들은 죽은 자의 것이기보다 산 자의 몫이 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죽음은 산 자를 부끄럽게 하고, 어떤 죽음은 산자를 분노케 하며 또 어떤 죽음은 세상을 일어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죽음은 생물학적인 소멸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200년 전 한 여성의 죽음에 주목하는 것은 지금도 그런 죽음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1821년 영천 사람 박씨는 겨우 스무 살의 나이에 과부라는 고단한 삶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죽은 남편을 대신하여 늙고 가난한 시부모를 부양하는데, 남의 곡식을 찧어주는 품팔이를 해서 끼니를 조달했다. 이웃에는 돈은 많으나 무례하기 짝이 없는 김조술이라는 자가 살았는데, 박씨에게 집적대며 희롱을 일삼았다. 한번은 절구질하는 박씨를 향해 오줌을 갈기자 놀란 이웃여자들이 다투어 가려주고 막아주었다. 술에 취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며 비굴하게 구는 바람에 문제를 삼지 않고 넘어갔다.

어느날 박씨의 시아버지가 멀리 출타를 하게 되었는데, 정보를 입수한 김조술이 밤에 박씨 집으로 가 안을 기웃거렸다. 그로 인해 개가 짖자 시어머니는 송아지 한 마리를 도둑이 데려갈까 걱정 된다며 박씨에게 나가서 살펴보라고 한다. 박씨가 헛간과 사랑을 살피고 들어가려는데, 김조술이 바깥에서 문을 흔들며 “낭자! 나요 나. 내 목소리 모르시오? 어찌 내 마음을 그리도 모르시오. 빨리 문을 여시오!”라고 했다. 이에 분노한 박씨가 크게 꾸짖었다.

외출에서 돌아온 시아버지, 이 사실을 알고 작두를 뽑아 김조술을 찾아가 크게 따졌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려 관아에 가서 고소를 하자 관에서는 장정들을 보내 김조술을 긴급 체포했다. 관아의 옥에 갇힌 김조술, 돈으로 아전들을 매수하며 추잡한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박씨는 원래 음란한 여자로 이미 여러 남자들과 간통했고, 지금도 임신 중이다. 나와도 사통하는 사이라 그날 밤 다시 꾀어내려고 한 것인데, 음란한 여자와 좀 놀려고 한 게 무슨 죄가 되나?” 여기에 놀아난 고을 수령, 김조술을 풀어준다.

분노한 박씨와 시아버지가 다시 관아로 찾았지만 오히려 쫓겨난다. 큰 결심을 한 박씨, 시아버지가 외출한 틈을 타 10리 길의 관아를 다시 찾았다. 옷을 풀어 임신한 몸이 아님을 증명해 보였으나 수령은 오히려 무례한 말로 박씨를 모욕한다. 결국 박씨는 억울함을 안고 관아의 빈방을 찾아 들어가 스스로 목을 찔러 삶을 끝냈다. 소문을 듣고 달려온 시아버지는 수령에게 며느리가 죽은 상황을 설명하라고 요구하고, 수령은 박씨가 자신의 음란함을 후회하며 준비해온 약을 마시고 죽었다고 말한다. 김조술도 돈을 풀어 더 많은 거짓 증언을 만드는데, 이로써 죽은 박씨는 확고부동한 음부(淫婦)가 되었다. 며느리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시아버지는 중앙에서 파견된 순찰사에게 사정을 갖추어 다시 고소장을 낸다. 조사는 재개되었지만 수령의 작당으로 김조술은 다시 풀려나고 그에게 뇌물을 받은 자들은 ‘원래 그런 여자를 꾄 김조술은 죄가 없다’며 계속 떠벌리고 다닌다.

이 사건을 지켜보던 만석(萬石)이 굳게 결심한 듯 한양으로 향하는데, 그는 박씨가 시집올 때 따라 온 노(奴)였다. 김조술 집의 여비와 혼인하여 자식까지 두었던 그, 김조술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 간악함에 치를 떨었다. 왕이 거둥하는 길에 엎드려 이 원통함을 호소했고, 사건은 바로 형조(刑曹)로 하달되어 도(道)·군(郡)을 거쳐 재조사가 이루어졌다. 박씨가 죽은 지 7개월만이었다. 김조술의 만행과 거짓 증언들이 낱낱이 드러나고, 옥사를 잘못한 수령의 죄가 밝혀지면서 각자의 몫에 부합하는 응징이 이루어졌다. 박씨를 직접 죽인 것은 아니라는 이유로 유배에 처해진 김조술은 들끓는 민심과 만석의 투지로 결국 사형에 처해졌다. 박씨 부인의 사건은 성해응의 <연경재집>에 자세하게 나와있다.

가련한 처지의 박씨를 희롱하고 능멸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김조술, ‘정의란 무엇인가’를 던져 놓고 간 그의 죽음도 전혀 의미가 없진 않았던 셈이다. 이듬해 나라에서는 박씨에게 ‘열녀’라는 칭호를 내렸는데, 당시로선 그를 위로할 최상의 언어였다. 산 자들에게 희망을 준 만석에게도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졌는데, 살아서는 부역을 면제해주고 죽으면 정문(旌門)을 내려주기로 했다.

이 역사적 사례를 통해 다시 우리 주변을 돌아보자. 200년 전 피해자 박씨가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자기파괴적으로 피해사실을 증명해야만 하는가. 성범죄 피해자의 명예는 죽어야만 회복되는 것인가. 죽어도 회복되지 않은 명예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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